선운사 동백·석정의 벚꽃…고창 일곱빛깔 봄꽃 여행[함영훈의 멋·맛·쉼]

춘삼월 붉은 열정..눈물처럼 지는 동백

4월엔 연분홍 벚꽃길 따라 화려한 축제

고창 청정 습지·고인돌·갯벌도 세계유산

 

고창읍성 대숲 사이로 따사로운 햇살이 스며들고 있다.[함영훈 기자]

 

고창 운곡 람사르습지[고창군 제공]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

가수 송창식은 춘삼월 가장 붉은 열정을 쏟아내다 소리없이 툭 떨어지는 고창 선운사 동백의 순정을 노래했다. 선운사 가는 길, 녹아내린 봄물이 깊어져 푸른 계곡물 흐르는 소리는 활기찬데 말이다.

봄맞이에 붉거나 푸르게 나대던 마음은 선운사 동백꽃을 배경 삼아 지장보살전 앞 툇마루에 앉으면, 어느새 평온함으로 바뀐다.

고창 운곡 람사르습지 탐방로는 자연의 공간을 덜 침해하기 위해 좁게 만들었다.

 

동백·벚꽃·철쭉으로 이어지는 고창의 봄꽃 향연

봄은 꽃이다. 고창은 선운사의 동백말고도, 람사르습지의 야생화, 석정 일대의 벚꽃, 고창읍성의 철쭉이 장식한다.

봄을 알리는 대표 축제인 고창벚꽃축제가 내달 4~6일 석정지구 일원에서 열린다. 축제 슬로건인 ‘기다렸나, 봄’은 지난 겨울 폭설과 한파, 어려운 상황 속에서 간절히 기다린 봄이 끝내 오고야 말았다는 희망과 기원을 담았다.

축제장을 둘러싼 1㎞ 가량의 벚꽃 터널과 축제장 가는 길에 펼쳐진 2㎞ 벚꽃길이 “우리 꽃길만 걷자”고 유혹한다. 축제 땐, 감성적인 벚꽃 로드와 피크닉 쉼터, 다채로운 먹거리의 푸드트럭 등이 조성되고, 아간 경관조명과 다양한 포토존 운영되면서 고창의 밤 역시 빛날 것이다.

고창 벚꽃축제 야경[한국관광공사 제공]

 

4월 하순 만개할 고창읍성 철쭉[한국관광공사 제공]

고창은 꽃 보다 아름답다. 자연관광, 인문여행 자원 모두 풍부해 ‘세계유산 7관왕’의 명예가 빛난다.

인구 5만 도시 고창, 유네스코 기록은 7관왕

서울도, 파리도, 로마도, 카이로도, 이스탄불도, 마드리드도, 북경도, 제주도도, 안동도 갖지못한, 인구 5만 도시 고창의 유네스코 7관왕 기록을 깨는 도시가 앞으로 나올까 싶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대한민국 고인돌 중에서도 고창의 고인돌은 가장 규모가 크고 많으며, ‘이것이 뭣이 중헌지 모를 때 고추를 널어 말렸다’던 탁자형, 즉 북방형도 남부지방 고창에 있다.

북방식 고인돌이 남부지방 고창에도 있다.

시인인 강복남 해설사는 “고창 매산 기슭을 따라 무려 500여기가 있으며, 굄돌이 땅속에 들어가 있고 지하 돌방(석실)이 만들어진 것 중 바둑판식도 있고, 개석식도 있다”며 “남방식 고인돌 외에도 북방식이라는 탁자형 고인돌 등 한민족과 문화과 풍속을 공유한, 여러 나라에서 발견되는 모든 종류의 고인돌이 고창에 있다”고 설명했다.

한민족의 고인돌은 ‘단군전’ 동전을 발행했던 카자흐스탄 적석총과 고인돌, 튀르키예 괴베클리테페, 영국 스톤헨지로 이어진다. 누가 먼저인지 따지는 건 부질없다.

도대체 왜 고창엔 ‘고인돌 올림픽’ 하듯, 여러 형태의 고인돌이 골고루 포진해 있는지, 수 천년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고인돌 뿐 아니라 고창 갯벌 역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유산구역에 포함된 고창 갯벌은 습지보호구역 10.4㎢와 고창군 주변갯벌 30.2㎢를 포함한다. 만돌마을을 비롯해 도시민과 도시의 청년,어린이 등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이 유난히 많은 곳이 고창 갯벌이다.

고창 갯벌 체험[상하농원 제공]

 

인류무형유산 판소리·농악의 진수도 이곳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판소리 중에서 고창은 근세 판소리의 중시조라 불리는 신재효(1812~1884)와 현대 판소리의 최고 명인으로 불리는 김소희(1917~1995) 선생을 배출했다.

신재효 선생의 8년 후배로 많은 명창들을 길러낸 이날치(1820~1892) 선생은 이웃 담양에서 태어나 고창의 명창들과 함께 소리를 연구했고, 김소희 명창이 이날치의 계보를 이었다. 최근 한국관광공사 지구촌 홍보영상으로 세계적 인기를 얻은 ‘범 내려온다’의 21세기형 국악밴드가 스스로 이날치라 이름지었다.

농악 역시 고창이 가진 인류무형유산이다. 고창농악은 다른 지역 농악에 비해 개개인의 임무가 매우 분명하고, 가장 조직적인 30~40명 규모의 K-오케스트라이다. 이 타악-관악 오케스트라 구성원은 군총 또는 치배라 하는데, 기수(영기,농기,단지), 취수(나발,새납), 악기수(쇠,징,장구,통북,소고), 잡색(12명) 등으로 구성된다.

고창 농악

 

고창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도 지정

고창의 계곡과 바다의 환상적인 조화 속에 펼쳐진 서해안권 공원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다. 병바위, 선운산, 소요산, 심원갯벌, 명사십리, 구시포 등은 부안 변산반도·채석강 등과 합쳐져 유네스코에 이름을 올렸다.

기암괴석이 병풍 처럼 호위하는 가운데 동백꽃 연정을 품는 선운산 여행은 ‘고창 형, 길 위의 인문학’ 필수 코스이다.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은 훗날 진흥왕이 된 삼맥종이 수도하던 진흥굴 이야기로 유명하다.

고창 병바위

반암리 병바위는 ‘마을 잔치때 대취한 신선이 소반을 걷어차 술병이 거꾸로 꽂힌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신선이 대취하신 것을 보니 필부필부처럼 멋대로 살고 싶은데, 우아하고 근엄하며, 모두를 보살펴야만 하는, 신선이라는 극한직업이 힘겨웠던 모양이다.

높이 35m 병바위 주변엔 소반바위, 전좌바위(두락암)와 함께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경관이 형성돼 있다. 2021년말 국가명승이 됐다.

전좌는 전(煎) 꼬치를 말한다. 지질학적으로는 절벽형인 병바위, 소반바위, 전좌바위가 하나의 화산암 덩어리에서 분리됐다. 여러 암석 종류가 혼재돼 있던 병바위는 단단한 유문암이 더디게, 화산재로 만들어진 응회암이 빠르게 풍화돼 지금의 모습을 보인다. 바위가 벌집 형태로 패이는, 완주 해골바위 같은 타포니 현상도 나타나 신비감을 더해준다.

기록유산·생물권보전지역도 현존

전봉준 녹두장군의 고향인 고창은 동학기록물 덕에 유네스코 기록유산의 본산이 됐다.

녹두장군은 개항기 전북 고창군 무장 지역에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심해 사회적·경제적 불평등과 수탈에 맞서 동학혁명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고창 지역은 지역의 시위가 전국적인 규모로 확장되는 중심이었으며, 전봉준 장군 등은 그 개혁투쟁의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고창의 운곡 람사르습지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고창 운곡습지생태길엔 800종 이상의 식물, 곤충, 조류는 물론 수달, 황새, 삵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들도 서식하고 있다.

봄은 습지 생물들이 활동을 시작하는 계절로, 청초한 숲의 호흡이 인간의 흉금을 씻어낸다. 연못, 둠벙, 조류관찰대, 소망의종을 도는 동안, 탐방안내소의 숲 해설사가 생물들의 속삭임을 전해준다.

자연을 호흡하기 위해 습지위로 미로같은 나무데크길을 놓았지만,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 한 사람만 갈수 있도록 좁게 만들었다. DMZ(비무장지대) 혹은 제주 곶자왈을 닮은 생태 풍경이 여행자의 모습을 돋보이게 하니, MZ(밀레니얼+Z)세대의 정담코스, 데이트코스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여행을 마치고 나면 국내 최고의 품질로 평가받는 고창 풍천장어가 여행자의 원기를 충전해준다.

고창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

 

‘장담그기’ 새 인류무형유산 되며 고창 주목

고창 만의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 12월 한국의 장 담그기가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국내 발효문화 명소 중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고창 역시 주목받는다.

풍천장어는 장류의 메카인 고창형 소스를 발라 구워도 좋고, 있는 그대로에 소금만 뿌린 소금구이도 좋다. 고창 장어는 한국관광공사의 ‘대한민국 음식 33선’ 국가대표에 꼽혔다.

조선 최악 임금 인조가 걸어놓은 공중법당을 스스로 추락시켰다는 영험한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 대숲으로 스며드는 봄 햇살이 따사로운 고창읍성 이야기를 듣고, 고창 구시포로 달려가 석양을 감상한다. 동백·벚꽃으로 시작해 붉은 노을로 매조지하는 봄 여행이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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