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정책·이사회 구조 변화 요구 확산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들이 주요 상장사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주주제안을 내놓고 있다.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은 물론 이사회 개편과 경영진 교체 등 지배구조 개선 요구도 잇따르는 분위기다.
상법 개정 등으로 인해 주요 주주들이 기업 의사결정 구조에 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올해 주총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을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팰리서캐피탈,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등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들은 주요 상장사를 대상으로 주주환원 정책 강화와 독립이사 제도 도입 등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서를 발송했다.
영국계 행동주의 펀드 팰리서캐피탈은 최근 LG화학 이사회에 주주가치 제고안을 요구했다. 이들은 ▷기업가치 제고계획에 순자산가치(NAV) 할인율 분기별 검토 및 공시 ▷경영진 보상 계획에 주식연계보상 도입 ▷핵심성과지표(KPI)에 NAV 할인율·자기자본이익률(ROE) 반영 ▷LG에너지솔루션 지분 유동화 규모 확대 ▷자사주 매입 및 소각 실행 ▷선임독립이사 제도 도입 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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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토종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 또한 구체화되고 있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DB손해보험과 코웨이에 각각 감사위원이 되는 독립이사 후보를 추천하며 이들을 선임할 것을 주주제안했다. 코웨이에 대해서는 방준혁 사내이사의 이사회 의장직 사임과 함께 독립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게끔 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상법 개정 등 일련의 흐름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존의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가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로 확장되면서 그동안 경영진의 자율적 판단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던 자사주 매입·소각이나 계열사 합병 등 주요 의사결정들이 이제는 소액주주 이익 침해 여부를 따지는 법적 공방의 대상이 됐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주 이익 보호와 공정한 대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행동주의 펀드들의 활동 공간도 넓어졌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변화는 기업가치를 높여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노리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업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영진이 회사의 이익뿐만 아니라 주주들의 권익까지 직접 책임져야 한다는 법적 기조가 확립되면서 경영권인수(바이아웃) 이후 투자금 회수(엑시트)를 꾀하는 운용사(GP)들도 예전보다 커진 압박과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대주주와 PEF가 합을 맞춰 경영을 효율화하면 됐지만, 이젠 대주주 이익에 치우친 의사결정은 배임으로 여겨질 수 있다”면서 “소액주주 소송 리스크로 번질 수 있어 퇴로가 막힐 위험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기업 투자 전 실사 과정에서 달라진 분위기도 감지된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인수 단계부터 소액주주 보호 장치를 넣고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부담이 따르는 건 사실”이라며 “투자 포트폴리오 기업들에 대한 거버넌스 점검이 중요 과제가 됐다”고 했다.
특히 올해 주총은 운용사들과 기업들 사이에 긴장감이 예년과는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는다. 오는 7월 감사위원 선임 관련 3%룰 확대와 9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 지배구조 규제가 단계적으로 손질된다. 때문에 이번 주총은 대주주가 이사회를 재정비할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라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3월 주총은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가 기업가치 제고라는 순기능으로 발현될지 아니면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만 키울지 판가름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주총 결과에 따라 향후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편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