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비즈] K-라이스벨트, 아프리카 식량 안보와 자립의 씨앗


한 톨의 종자가 한 나라의 식탁을 바꿀 수 있을까. 한국 농업의 역사는 ‘그렇다’고 답한다. 반세기 전만 해도 국민의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국가의 중대 사안이던 대한민국은 농촌진흥청의 다수확 벼 품종 개발과 재배 기술 확립으로 쌀 자급의 길을 마련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온 경험의 DNA는 이제 아프리카 대륙에서 또 다른 기적을 잉태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쌀은 옥수수에 이어 주요 식량작물로 꼽힌다. 그러나 취약한 생산 기반과 고질적인 관개시설 부족, 병해충 발생에 따른 낮은 수량성으로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근본적인 식량안보는 일회성 지원을 넘어, 현지 환경에 최적화된 우수 종자를 생산·보급할 수 있도록 자립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에 농촌진흥청은 한-아프리카 농식품기술협력협의체(KAFACI)를 통해 2016년부터 아프리카 현지 맞춤형 벼 품종 개발을 묵묵히 지원해 왔다. 통일형 벼 품종과 약배양 기술 등 우수한 벼 유전자원을 현지 기후에 맞춰 개량한 데 이어 벼 육종가 양성으로 각국의 연구 역량도 내실 있게 키웠다. 세네갈에 성공적으로 등록·보급한 다수확 품종 ‘이스리(ISRIZ) 6, 7’은 한국의 농업기술이 현지 환경에서 피운 대표적인 결실이기도 하다.

이 같은 성공적인 기반을 토대로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은 우량종자를 아프리카 전역에 신속하게 보급하기 위한 ‘K-라이스벨트’ 사업에 착수했다. 쌀 생산 기반이 취약한 나라에 고품질 다수확 벼 종자를 생산·보급하고, 생산단지 조성, 재배 기술 전수, 농업인 교육을 지원하는 한국형 농업 공적개발원조(ODA)의 좋은 사례라 할 만 하다.

걸음마를 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현장의 성과는 거센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착수한 지 3년 만에 아프리카 7개국의 벼 종자 누적 생산량이 1만t을 넘어섰다. 현지 관행 재배 대비 평균 수량도 두 배 이상 껑충 뛰었다. 가나와 우간다 등 참여국에서는 생산량과 소득이 함께 늘고, 농민조합이 종자 생산부터 보급까지 스스로 이끄는 협업 체계도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단순한 증산을 넘어, 종자 생산부터 수확을 소득으로 연결하는 자립의 기반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제 K-라이스벨트는 다음 단계로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종자 생산과 보급 안정화에서 나아가 생산, 가공, 유통을 잇는 농업 가치사슬 전반으로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 물관리와 농기계 활용 기술은 현지 여건에 맞게 고도화하고, 수확 후 관리와 유통까지 연결한다면 농촌 공동체의 소득 기반도 더 단단해질 수 있다.

우리 농산업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종자 생산단지와 재배 현장에는 트랙터, 이앙기 등 농기계와 관련 기자재가 필요하다. 현지 맞춤형 기술 실증과 인력 양성추진으로 협력 대상국의 영농 현대화에 이어 우리 농산업의 해외 진출까지 선순환을 이룬다. 원조를 넘어 상생으로 가는 길이다.

K-라이스벨트는 협력 대상국이 생산한 종자로 안정적인 재배와 지역사회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자립형 농업 생태계를 지향한다. 한 톨의 종자는 작지만, 그 안에 내일의 식량과 산업, 그리고 협력의 가능성까지 담겨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농촌진흥청은 아프리카 식량안보에서 나아가 농업기술협력을 대한민국 농업의 새로운 성장 경로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김상경 농촌진흥청 차장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