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N 민수봉 행장 왜 조기 퇴진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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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1일 BBCN행장으로 취임한 날 민수봉 행장(오른쪽에서 세번째)과 케빈 김 뱅콥 회장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그로부터 3개월여만에 한미은행으로 옮긴 바니 리 수석전무. 민 행장은 8개월 보름,260일만에 퇴진했다.

미주 한인사회 최대 은행 BBCN이 심상치 않다. 거버넌스(지배구조)와 매니지먼트(경영진) 사이에 종잡을 수 없는 난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계약기간이 16개월이나 남아 있는 경영진의 사령탑 민수봉 행장이 15일 은퇴라는 명분으로 전격 퇴진한 것은 최근 1~2개월 사이에 포착되던 내부 조직의 미묘한 움직임에 따른 드라마틱한 결말이다.

지주사인 BBCN뱅콥은 한달전인 지난해 12월 중순 뱅크오브 아메리카와 HSBC 등 비한인 금융권의 실력파 뱅커로 꼽히던 박자영씨를 수석전무((Senior Executive Vice President·SEVP)로 영입했다. 기존 김규성 수석전무와 동급의 역할로, 민 행장을 뒷받침하는 경영진의 서열 2위를 투톱체제로 만들었다. 감독국및 투자자 관계에 절대적인 영어가 약한 민 행장에게 날개를 달아준 모양새였다. 하지만 속내는 전혀 아니었다. 박자영 수석전무 영입과정에서 민 행장은 철저하게 배제돼 있었던 걸로 알려졌다.자신의 핵심참모를 영입하는 사실을 몰랐다는 얘기다.

사실 민 행장은 지난해 5월 취임 당시만해도 뱅콥 이사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듯했다. ‘빅뱅크’로 도약하려는 BBCN의 비전을 이끌기에 적합한가에 대한 논란이 있긴 했지만 개의치 않고 의욕적인 행보를 보였다. 시카고 포스터은행과 시애틀 PI뱅크를 인수합병한 후속조치를 노구를 이끌고 몸소 비행기 출장을 다니며 처리하는 가하면 한미은행으로 옮긴 바니 리 수석전무에 이은 중견간부들의 잇따른 이탈로 생긴 운영 공백을 큰 잡음없이 메꿔냈다.

민 행장이 최고경영자(CEO)로서 실질적인 권한과 영향력이 과연 어느 정도인가라는 의구심이 들었던 시기가 바니 리 수석전무 등이 빠져나간 지난 8월초부터라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행장 위치에서 무게있는 정책결정의 모습을 보이기 보다는 사소한 업무에 시간을 쏟는 장면에 대한 목격담이 심심찮게 나돌았다.

BBCN과 거래관계에 있는 한 인사는 “어느날 행장실에 찾아가 면담하는 도중 말단 마케팅 직원이 들어와 코리아타운 옥외광고 디자인에 관해 의논하는 모습을 보고 좀 이상스러웠다. 60억달러가 넘는 자산을 가진 나스닥 상장은행의 CEO라기엔 지나치게 한가해 보여 그의 행내 역할이 의심스러웠다”라고 전했다. 그와 유사한 에피소드가 몇차례 더 전해지면서 민 행장을 영입한 뱅콥 이사진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나서 일찌감치 ‘식물 행장’으로 만들어 조기에 퇴진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한인사회 금융권에 파다하게 퍼졌다. 그 ‘소기의 목적’이란 다름아닌 옛 중앙은행 출신 이사진과 대립각을 세웠던 옛 나라은행 출신 중견간부들을 떠나게 만든 구조조정이다. 중앙은행과 나라은행이 통합된 BBCN의 뱅콥 이사진을 장악한 중앙출신 이사들은 나라은행 출신의 리더로 꼽힌 바니 리 수석전무의 이탈을 촉진하는 지렛대로써 민 행장의 영입을 추진했다는 혐의를 받아왔다. 민 행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내년(2014년) 까지만 하고 그만둘 거야”라는 말을 가까운 지인들에게 부쩍 자주하면서 그같은 ‘조기퇴진 전략설’은 설득력있게 퍼져나갔다.

이번 은퇴 발표가 전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민 행장이 2015년 3월말까지인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한다고 해도 올해말, 적어도 올 상반기까지는 현직을 지킬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지나치게 빨리 퇴진했기 때문이다. 민 행장 스스로도 어차피 빠르면 올 5~6월쯤 사임할 생각을 굳히고 있던 참이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지난 13일 한인은행장 협의회 모임에서도 민 행장은 다른 행장들에게 “5월까지는 자리를 맡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그렇다면 민 행장 스스로 불과 이틀만에 심경에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되는 일이다. 결국 14일 하룻 동안 BBCN 내부에서 모종의 핵폭탄급 사건이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것이 이사진과 민 행장 간의 갈등에 따른 충돌이었는지, 이사진 내에서 민 행장을 지지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 사이에 일어난 파워게임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BBCN 사정에 밝은 금융계 인사는 “이사회와 민 행장 간의 갈등 보다 더 민감한 뭔가가 있다. 자세히 말하기 곤란하다”고 말해 그같은 추정에 실마리를 제공했다.이와 관련, BBCN 뱅콥의 한 내부인사는 “어쩔 수 없는 힘 때문에 그렇게(은퇴발표를 말함) 됐다. 더이상 말할 수 없다”라며 함구했다. 결국 민 행장의 조기 퇴진은 ‘민감한 그 무엇’과 ‘어쩔 수 없는 힘’에 따른 결과라는 점에서 전적으로 스스로의 결정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황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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