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좋은 친구들’ 지성, “튀고 싶었으면 이 영화 안 했죠”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화려한 장미과는 아니다. 소박하지만 자꾸 눈이 가는 들꽃에 가깝다. 배우 지성이, 그의 필모그래피가 그렇다. ‘연기 잘하는 배우’의 통과 의례와도 같은 ‘파격’ 행보는 없었다. 연기 변신에 대한 강박으로 스스로를 다그치기보다, 그때 그때 마음 가는 작품과 역할에 충실했다. 그에겐 모든 캐릭터가 “절대적으로 다른 삶”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자신만의 ‘정공법’으로 지성은 대중들에게 ‘안정감 있는 배우’, ‘믿고 보는 지성 드라마’라는 신뢰를 쌓아갔다.

그가 ‘나의 PS파트너’(2012) 이후 약 2년 만에 ‘좋은 친구들’로 스크린을 찾았다. 적당한 허세와 속물적인 면을 지닌 인철(주지훈 분), 익살스럽지만 심약한 민수(이광수 분)와 비교하면 지성이 연기하는 ‘현태’는 이번에도 그다지 ‘튀지 않는다’. 두 친구의 감정이 폭주할 때도 그는 상대적으로 평온하다. 그러다 품에 감춰둔 칼을 내비치 듯 서늘한 속내를 드러낼 때, 비로소 지성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지성을 만났다. 화면보다 훨씬 작은 얼굴에 날렵한 몸매, 유난히 반짝이는 눈빛이 30대 중반 나이가 무색한 소년처럼 느껴졌다. 이날 약 한 시간의 인터뷰 시간은 매 초, 매 분이 그가 작품과 배역에 얼마나 깊이 빠져 있었는 지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비로소 지성이 신뢰가는 배우로 자리잡은 이유가 짐작이 갔다.

▶“감독님이 편지 한 통을 주셨는데…”=‘좋은 친구들’은 “뻔할 수 있는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지성을 사로잡았다. “범죄 드라마가 범인을 쫓는 것보다 세 사람의 관계에 집중한다는 점이 신선했죠. 이 영화가 범인을 쫓는 이야기로 흘러갔다면 솔직히 망한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지성의 말처럼 ‘좋은 친구들’은 자극적인 소재 대신 일상에서 충분히 벌어질 법한 이야기를 담으면서도, 세 친구의 갈등 구조 만으로도 충분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지성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 이도윤 감독(‘좋은 친구들’ 연출)에게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감독님이 주신 편지엔 질문만 있고 답이 없었어요. ‘현태가 왜 청각 장애가 있는 여자와 결혼했을까’, ‘어린시절 친구를 오해했던 미안함, 자신도 살기 위해 친구를 버릴 뻔했던 죄책감 등이 성장기 현태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등. 감독님의 의도대로 자연스럽게 제가 현태를 만들어가고 있었죠.”

극중 현태는 어머니가 의문의 사고로 죽은 뒤, 두 친구를 의심하게 되는 상황에서도 많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현태에 대한 설명이나 감정 드러내는 신이 많지 않아서 답답함은 예상했어요. 이 영화에서 제가 맡은 임무가 그런 것 같았죠. 극에서 중심을 잡는 역할. 그것보다는 영화가 나오고 보니 스스로 (연기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속상했어요.”

▶“혼자 튀고 싶었다면 이 영화를 안 했겠죠”=2013년 ‘KBS 연기대상’ 최우수상에 빛나는 16년차 배우에게 “내 연기가 부족해서 속상하다”는 말을 들으니 신선했다. 상대적으로 온화한 ‘현태’ 캐릭터 탓을 슬쩍 해봤는데 어림 없다. “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으면 이 영화를 아예 안했을 거예요. 이렇게 좋은 영화에서 내가 할 정도가 정해져있는 거고, ‘오버’하지 않으면서 보여줄 수 있는 걸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죠.” 오히려 그는 주지훈, 이광수에게 실례가 되지 않길 바랐다. 본인의 분량이 없는 날에도 촬영장에 가서 두 사람의 연기를 지켜보며 자신의 몫을 준비했다.

지성이라는 배우가 놀라웠던 대목은, 자신의 배역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남다르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그는 캐릭터를 만들고 영상에 담은 감독보다 ‘현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현태’가 시나리오 속 인물이 아닌, 잘 아는 주변 인물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현태는 과거 두 친구에 대한 미안함, 트라우마 때문에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도 친구들을 끌어안으려 했다고 생각해요. 현태가 ‘119 구조대원’이라는 직업을 택하고, 장애인 여성과 결혼한 것 등도 성장기 기억과 무관하지 않겠죠. 촬영 직전까지도 현태에 대한 생각이 정리가 안 됐는데, 현장에서 현태로 살다보니 엔딩신을 찍는 날에야 느낌이 오더라고요.(웃음)”


▶“‘로코’만 할 수도 있었지만… 매 맞고 싶었어요”=지성은 부드럽고 선한 인상 때문에 손해 보는 면이 있다. 그의 얼굴을 마주하면 ‘로맨틱 가이’부터 떠올리게 되니 말이다. 사실 그의 행보를 되짚어보면 특정 이미지에 갇히지 않기 위해 조용히 분투해온 시간이었다. 그의 말처럼 ‘장기를 살려 로맨틱 코미디에만 집중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뉴하트’(2007), ‘보스를 지켜라’(2011) 등 트렌디한 드라마 사이에 ‘김수로’(2010), ‘대풍수’(2012)와 같은 사극 도전이 있었다. 스크린에선 코미디 ‘휘파람 공주’(2002)를 시작으로 사극 스릴러 ‘혈의 누’(2005), ‘19금’ 로맨틱코미디 ‘나의 PS 파트너’(2012)를 거쳐 묵직한 범죄드라마 ‘좋은 친구들’로 돌아왔다.

“한 10년 간은 일부러 많이 돌아간 것 같아요. 주위에서 로맨틱코미디가 잘 어울린다고 하면 그쪽으로 ‘전문성’을 키울 수도 있었을텐데, 그보단 다양하게 매를 맞고 싶었어요. 제 장점은 스스로 부족한 점을 잘 알고 잘 인정한다는 점이거든요. 약점 잡힐 것을 피해서 연기하기보다는 부딪히는 편이죠.”

익숙한 캐릭터에 안주하지도 않지만, 연기 변신에 무리하게 욕심내지도 않는다. “어떻게 보면 제 에너지를 아낀다고도 볼 수 있어요. 올해만 (연기)하고 내년엔 안 할 거 아니잖아요.” ‘오래 사랑받는 배우’로 남기 위해 조금은 여유롭게 걷는 것 뿐이다. 그러면서 지성은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좋은 친구들’의 ‘좋은’이라는 단어가 모호하면서도 많은 걸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배우’로 남고 싶어요. 제 작품이 나왔을 때 여전히 관심 받을 수 있고, 팬들에게서 에너지를 얻어서 또 연기할 수 있다면 행복하겠죠.”

ham@heraldcorp.com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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