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 등번호 영구결번시키듯
내가 떠나면 영원히 같이 보내주길
배캠의 의미 내한 팝스타 통과의례 성지
아픈 기억은 한때 美앞잡이 소리 듣기도
그에게 팝은 중요한 문화유산중 하나
매일 오후 4시는 배철수의 출근 시간이다. 라디오 생방송 두 시간 전. MBC 로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빨리 나오냐”고 물을 정도다. 스튜디오에 도착하면 그날 방송할 음악을 듣는다. “100%는 아니더라도 99%는 아는 음악이다. 방송에서 모르는 노래를 틀 수는 없다”고 한다. 방송이 끝나는 8시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 퇴근시간. 매일 저녁 2시간씩 1만8000시간을 보낸 배철수의 시계다.
오는 19일 MBC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25주년을 맞는다. 같은 이름, 같은 DJ로 25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기는 이 프로그램이 최초다. 긴 시간을 돌아보니, 배철수 스스로는 “처음엔 일 년만 넘길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너무 오래 했다”고 말한다. “삶이자 친구이고 애인이다. 이 프로그램을 떼어내면 내 삶에서 뭐가 남을까 싶을 정도로 비중이 크다.”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한 여정은 “25년간 임했던 50번의 오디션이었다”고 정찬형 PD는 회고한다. 지난 25년은 “6개월에 한 번씩 찾아오는 봄, 가을 개편마다 프로그램의 존속 가치를 알려주는 과정”이었다. 방송사의 입장에선 DJ 배철수를 향한 신뢰가 컸다. 공항 출입국신고서의 직업란에 ‘디스크 자키’라고 적어넣는 배철수의 애정과 자부심은 “규칙적인 삶의 패턴을 지키기 위해 다른 스케줄이 들어와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소화하는 성실함”(정찬형 PD, 김경옥 작가)으로 방송사 내부에서도 회자된다. “엄청난 뮤지션이었고, 최고의 쇼 진행자였는데 얼마나 찾는 곳이 많았겠어요. 오직 ‘음악캠프’를 위해 활동을 자체하고 노출을 조절하다 보니 희소가치도 생긴 거죠. 청취자들이 거부하지 않고 찾는 이유일테고요.” 정 PD는 이를 ‘환상의 전설’이 태어난 계기라고 했다.
메탈리카, 메가데스, 딥퍼플의 이언 길런, 토니 아이오미(블랙 사바스)부터 브리트니 스피어스, 레이디 가가, 리한나 등 전세계의 팝스타들이 내한할 때마다 통과의례처럼 ‘배캠’을 찾았다. 한 때는 “미 제국주의 앞잡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배철수는 “팝음악은 가장 중요한 인류 문화유산의 하나”라는 믿음으로 프로그램을 고집스럽게 지켜왔다.

배순탁 작가는 “팝 음악을 트는 라디오는 많지만, 동시대의 차트를 소화하는 창구는 ‘배캠’밖에 없다”며 “기존의 팝음악을 트는 방송은 올드팝에 국한한다. 하지만 ‘배캠’에선 비중은 작지만 인디 차트, 토요일엔 빌보드 최신차트를 비롯해 올드 명곡을 소화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쇄국정책처럼 복제와 재생산만 반복하면 세계 음악계의 흐름에서 도태퇼 수 있다”(배철수)는 우려는 프로그램에 내재한 DNA였고, 그 흐름은 초기 로큰롤부터 시작해 팝시장의 흐름에 따라 다양성을 배합하며 나름의 ‘정답’을 찾아갔다.
“우리(정찬형 PD, 김경옥 작가, 배순탁 작가)는 슈퍼스타 송골매의 빠였고, 배철수라는 사람의 캐릭터를 좋아해요. 그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신뢰가 공통된 정서를 만들었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진심을 찾는 사람들에게 라디오의 음악과 이야기가 그것을 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요. 누군가는 올드패션이라 느낄지 몰라요. 하지만 새로운 흐름을 장벽을 치고 막는 것이 아니라 올드 앤 뉴를 함께 가져가자는 거죠.”(정찬형 PD, 배순탁 작가) 당연히 선곡은 신중하게, 청취자들의 신청곡 위주지만, 지난 25년간 ‘배캠’에서 가장 많이 흐른 곡은 단연 비틀스였다.
대한민국의 크고 작은 뉴스와 시대를 함께한 25년 동안 앳되고 퉁명스러웠던 배철수의 목소리에도 시간의 길이는 새겨졌다. 통신환경의 변화로 실시간 소통이 가능해지자, DJ의 간결한 화법엔 유머가 더해진다. 2시간의 방송은 때론 DJ와 청취자가 주고받는 한 편의 ‘리얼리티쇼’를 방불케 한다. “신청곡은 좋지만, 기각합니다. 저더러 할아버지라뇨?”라며 나이 어린 청취자를 들었다놨다 하고, “공연 준비에 한창인 장기하씨를 위해 폴 매카트니 틀겠다”며 사심방송도 마다 않는다. “일대일로 소통하면서도 또 다른 청취자는 관객의 입장에서 딴지를 걸고 즐기는 방식을 만들었다. 그것이 두 시간 짜리 심포니처럼 짜여진다”고 정 PD는 말한다.
제작진 모두가 열혈팬을 자처하는 ‘음악캠프’에서 배철수라는 DJ는 곧 대체불가의 아이콘이었다.
“좋은 DJ, 잘 하는 DJ요? 배철수예요. 배철수 선배한테 답이 있어요. 음악에 있어선 풍부하고 정확한 지식을 가졌죠. 남들이 잡아내지 못한 것을 전하는 능력이 대단해요. 그만큼 데이터베이스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죠. 거기에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독특한 목소리의 결과 말투, 중언부언하지 않는 군더더기 없는 멘트, 청취자의 처지나 심경까지도 해독하는 소통능력이 지난 25년을 버틴 힘이죠.” (정찬형 PD)
배철수는 “위대한 운동선수의 등번호는 영구결번시키듯이 제가 하차하면 프로그램을 영구폐지시켰으면 좋겠다”며 군더더기 없이 거창한 바람을 덧붙였다. 제작진의 생각도 다르진 않았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사진제공=MB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