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떠난 전공의 1만여명… 구직 게시판에 ‘우글우글’

서울 대형 종합병원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 소속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부터 근무 중단에 돌입했다. 이날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전공의 당직실이 텅 비어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병원에 사직서를 내고 의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 1만2000여명이 일부 광역의사회 홈페이지 구직 게시판에 몰려들었다. 그간 ‘의사 시장’은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한 곳이었다. 그러나 ‘의대 사태’로 전공의들이 대거 수련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재계약을 거부했다. 그러자 의사 시장이 일시적으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시장이 된 것으로 해석된다. 일부 의사 선배들은 생계가 곤란한 전공의들이 후원을 받을 수 있도록 계좌를 공유하는 한편, 병원의 행정·홍보 마케팅 업무를 할 수 있게 이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서울시의사회 홈페이지에 개설된 구인·구직 게시판에 전공의들이 구직하는 게시물들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서울시의사회 홈페이지 캡처]

지난 6일 서울시의사회 홈페이지에 개설된 구인·구직 게시판에는 개설 3일 만에 141개의 글이 쌓였다. ‘사직 전공의 일자리 구한다’, ‘레지던트 3년차였던 사직한 내과 전공의 구직한다’와 같이 사직한 전공의들이 구직 글을 올린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필수과인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에서 사직한 전공의들과 예비 인턴, 의대생이 구직하는 게시물도 눈에 띄었다.

전공의들의 경우 대략 한달에 300만원~400만원 가량의 월급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앞으로 월급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자 당장 생계가 급한 일부 전공의들을 중심으로 구직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구직 게시물은 게시자 본인이나 홈페이지 관리자가 아니면 확인이 불가능 하도록 암호가 설정돼 있다.

문제는 전공의들의 사직서가 수리 된 건수는 한 건도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현재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이 ‘무단결근’ 상태라고 보고 있다. 반대로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제출 한 뒤 한달 이내에도 회사가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사직 효력이 발생한다는 민법을 근거로 3월 중하순이면 ‘무단결근’ 상태에서도 벗어나고, 이 때문에 또다른 직장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정부는 서울시의사회가 개설한 구인·구직 게시판 역시 불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사직이 인정되지 않았기에 병의원 개설이나 취업할 수 없을뿐더러 병의원 의사로 채용되는 것 역시 불법이라는 설명이다.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겸직 위반을 하면 이 또한 징계사유”라고 말했다.

의원 등 개원병원에서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었다. 카카오톡·텔레그램 단체 대화방 등에서는 ‘XX의원 매월 150만원 3개월 지원, 1주일 2회 가량 출근, 내과 또는 XX병원 근무자 선호’ 등으로 일자리가 필요한 전공의들에게 선배 의사들이 일자리를 제공해주겠다는 메시지도 올라오고 있다.

반대로 정부는 사직서를 낸 전공의가 다른 의료기관에서 근무할 경우 이를 위법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7일 일부 개원의들이 전공의 채용 공고를 내는 것과 관련해 “‘전공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전공의가 수련병원이나 수련기관 외 다른 의료기관이나 보건 관계 기관에서 겸직 근무하면 안 된다”며 “겸직 위반을 하면 징계 사유가 된다”고 의료면허를 활용해 구직은 위법하다고 못을 박았다.

정부는 또 병원을 떠난 전공의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말 것을 권장하는 안내문을 보내기도 했다. 보건복지부는 수련병원에 보낸 ‘근로를 제공하지 않는 전공의에 대한 임금 지불 관련 안내’ 공문에서 “병원은 진료 현장을 벗어나 근로를 제공하지 않은 전공의에게 해당 기간 동안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2월 월급을 지급한 병원들은 전공의 집단 사직이 시작된 2월 20일 이후 무단결근 일수는 제외했다고 한다.

선배 의사들은 의사 면허를 활용하는 것이 아닌 일자리를 알선해주기도 한다. 자신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라고 밝힌 한 의사는 ‘일자리를 연결해드린다’며 온라인 설문지를 카카오톡·텔레그램 등에 배포하기도 했다. 이 설문지에는 ‘의사로 일할 수 없는 선생님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하다 설문을 하게 됐다’며 ‘퇴사 후 의사면허를 활용해 일할 수 없는 선생님들께 거주지 병의원을 연결하여 행정, 홍보 마케팅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연결해 드린다’고 적혀 있다. 의료 면허를 이용해 취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 등 무관한 업무를 연결해줘 취업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선배 의사들의 후원도 이어지고 있다. 의사들이 모인 한 카카오톡 방에는 지원이 필요한 전공의들의 실명과 후원 계좌를 매일 업데이트해 올리고 있다. 또 자녀 과외 교사를 구하는 공고 등도 의사 커뮤니티에 올라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공의들에게 자료 분석을 맡기는 방식으로 전공의들을 돕겠다고 나선 기업도 있다. 한국엠바이오㈜는 병의원 경영자가 의료기관 경영상태 점검을 의뢰했을 때 필요한 자료 분석을 전공의에게 용역을 주는 방식으로 전공의를 돕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병원 복귀를 거부하며 의사면허 정지 처분 위기에 놓인 전공의들에게 새로운 진로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며 “컨설팅 비용을 용역을 맡은 전공의들에게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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