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적극적, 강력한 조정 필요
산은 자금 공급 등 금융역할 강조
산업측면 석화문제해결 플랜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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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석훈 전 한국산업은행 회장이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강남농협 내곡지점에서 서초구민을 대상으로 경제특강을 하고 있다. 김은희 기자 |
강석훈 전 한국산업은행 회장이 석유화학 산업 구조재편과 관련해 “민간 자율 협약에만 맡겨서 안 되고 정부가 탁월한 리더십을 가지고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전 회장은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강남농협 내곡지점에서 ‘대한민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한 서초구민 대상 특별강연을 마친 뒤 헤럴드경제와 만나 “우리나라 석유화학 산업은 중국과 중동의 협공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고 ‘이대로 가다가는 다 망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생산량을 줄이는 굉장히 어려운 작업을 해야 한다. 이는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로 둘 다 줄이면 둘 다 살 수 있지만 둘 다 안 줄이고 버티면 함께 망하는 게임”이라며 “이런 게임에서는 플레이어끼리 하게 놔두면 안 되고 누군가 옆에서 강력하게 조정해 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의 자율적인 감축 유도로는 산업 재편에 한계가 있다는 취지로 읽힌다. 정부는 기업이 강력한 자구노력을 담은 사업 재편안을 먼저 마련해야만 금융, 규제 완화 등 맞춤형 지원을 해주겠다는 ‘선(先) 자구노력, 후(後) 정부지원’ 방향을 제시했고, 그에 따라 업계는 국내 나프타분해시설(NCC) 생산 능력을 최대 25% 감축하는 방안을 자율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다.
강 전 회장은 “상대방이 죽으면 자기가 사는 게임이기 때문에 끝까지 안 죽으려고 어떻게든 버틸 것이고, 경제학적 원리로 봐도 그럴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단언했다.
그는 산업은행의 신규 자금 공급을 비롯한 금융의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석유화학 구조조정은 산업 측면과 금융 측면을 같이 봐야 하는데 생산량을 얼마나 줄이느냐 등 산업 부문을 나 몰라라 하면서 금융만 강조하는 것은 밸런스가 안 맞는 구조”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이 주문하는 차입금 회수 자제를 비롯한 각종 금융 지원도 자구책 마련이 전제돼야만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올해 6월 초 퇴임한 강 전 회장은 산은 근무 당시에도 석유화학 쪽에 관심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정부가 주도하는 가운데 금융이 뒷받침하는 구조로 구조개편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꾸준히 강조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도 석유화학 산업의 위기를 설명하고는 “이런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임무 중 하나를 가지고 있는 곳이 산은”이라며 관련 기업을 모아놓고 다양한 방법으로 생산량을 줄이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은도 산업 측면에서 석유화학 과잉생산 문제를 해결하는 플랜이 먼저 나오고 금융이 뒤따라야 한다는 취지에서 강 전 회장과 입장을 같이하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금융이 앞장서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과잉생산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가 핵심이고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금융은 지원하는 개념”이라며 “기업이 감축계획을 마련할 때까지 차입금 회수를 자제하라는 정부의 방침을 따르되 계획이 나오는 것을 보고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21일 석유화학 사업재편을 위한 금융권 간담회 자리에서 산은이 석유화학 기업의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소재) 전환을 위한 신규 자금 공급 등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석유화학 산업은 중국·중동의 대규모 설비 증설과 글로벌 수요 부진이 맞물리며 위기를 겪고 있는데 저수익·범용 제품 중심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특수 목적 소재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바꾸는 것이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핵심 대응 전략으로 손꼽힌다.
이날 간담회에는 산은을 비롯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과 한국수출입은행, IBK기업은행, 정책금융기관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9월을 목표로 금융권 공동 협약을 체결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와 함께 석유화학 기업의 사업재편 계획이 확정될 때까지는 기존여신 회수 등에 나서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사업재편 계획의 타당성이 인정되는 경우 채권금융기관 공동 협약을 통해 지원하기로 협의했다. 세부안으로는 대출 금리 감면이나 분할상환, 상환기간 연장, 신규 대출 등이 거론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석유화학 기업에 대한 금융권 익스포저(위험노출액)은 30조원대에 달한다. 단일 산업 기준으로 상당한 규모로 시장성 차입(회사채 등)과 은행권 대출이 각각 절반씩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부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경우 금융권 건전성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한편 강 전 회장은 이날 강연에서 한국 경제가 ▷인구절벽 ▷중국 궐기 ▷패권경쟁 등 세 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하며 기업, 금융, 부동산, 공공, 교육, 행정 등의 근본적인 개혁과 혁신을 통해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