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기준·형량 세계 최고…경제계 “구성요건 명확한 대체입법 절실”

배임죄 가중처벌 기준 35년째 그대로
50억 이상 이득…최대 무기징역 중죄
투자 위험만 있어도 처벌 가능 불합리


“소상공인도 투자 결정을 잘못하면 살인죄 수준으로 벌을 받을 수 있다.”

기업 경영을 옥죄는 대표적인 경제형벌로 꼽히는 ‘배임죄’를 두고 경영계·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35년 전 개정된 이후 한 차례도 손질되지 않은 가중처벌 기준금액은 현재의 경제 규모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데다, 형량은 살인죄에 맞먹을 정도로 과도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오랫동안 배임죄를 경영활동의 ‘족쇄’로 지목하며 제도 개선을 요구해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지난해 10월 상법뿐 아니라 형법상 배임죄 폐지를 기본 방향으로 제시하며 “이르면 올해 안에 배임죄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관련 논의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 전체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까지 이뤄지면서 기업들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는 평가다.

▶‘투자 실패’가 살인죄와 같은 형량?=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드물게 배임죄를 매우 무겁게 처벌하고 있는 국가로 꼽힌다. 형법상 일반배임·업무상 배임, 상법상 특별배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 등 3원화 돼 있어 임원급일수록, 액수가 클수록 형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는 구조다.

형량 또한 무겁다. 특경법상 가중처벌 기준금액은 5억·50억원인데,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인 경우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으로 살인죄와 형량이 유사하다. 5억 이상인 경우 3년 이상 징역으로 강도, 상해치사 등 중범죄와 동일한 수준이다. 과도한 형벌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이 기준금액이 1990년 개정 이후 35년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현재 가치로는 각각 15억원, 150억원에 해당하지만, 수십조원에서 수백조원 단위의 투자가 일상화된 현 경제 현실과는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높은 형량 뿐 아니라 지나치게 넓은 처벌 범위도 논란이다. 배임죄는 법문상 ‘손해를 가한 때’ 처벌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법원은 실질적 손해가 없더라도 손해가 발생할 ‘위험’만 있어도 처벌이 가능하다는 이른바 ‘위험범’적 해석을 해왔다. 특히 미필적 고의까지 포함해서 처벌하는 탓에, 공격적인 신규 투자는 늘 잠재적 범죄 행위로 간주될 위험을 안고 있다.

법원행정처 사법연감에 따르면 실제로 최근 10년간 배임·횡령죄 무죄율은 1심 판결 기준 평균 6.7%로, 형법 전체범죄 평균인 3.2%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2014~2023년 10년 동안 한국에서 배임죄로 기소된 인원은 연평균 965명으로 일본(31명)의 약 31배에 달하기도 했다.

이해관계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고소가 가능한 구조 탓에, 죄의 유무와 관계없이 ‘일단 배임죄로 고소하고 보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같은 법적 리스크는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고, 경영진을 보수적 의사결정으로 몰아넣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주요국 중 한국만 ‘형벌 만능주의’=해외와 비교하면 한국의 상황은 더욱 도드라진다. 한국은 특경법을 통해 배임죄를 가중처벌하는 유일한 국가다. 미국과 영국은 배임죄 자체를 두지 않고 사기죄로 규율하거나 손해배상 등 민사적 수단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독일·일본은 우리나라와 같이 형법 또는 상법에 배임죄를 규율하고 있으나 경영판단 존중 및 목적범 요건 등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다. 고의적인 위법행위만 처벌하고, 정상적인 경영판단 과정에서의 과실이나 실패는 배임죄 처벌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차이가 크다.

반면 한국은 이사 충실의무를 주주 전체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까지 더해지며, 주주 중 단 한 명의 문제 제기만으로도 형사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8단체는 최근 성명을 내고 “기업 부담을 가중시키는 제도들은 연이어 도입된 반면, 정작 국회가 약속했던 배임죄 개선 논의가 지연되고 있어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배임죄는 처벌 대상과 범죄 구성요건이 불분명해 경영진의 합리적 경영판단까지 처벌할 위험이 크다”며 “외국 기업인들도 한국에서는 투자 결정의 잘못만으로 처벌받을 위험이 있다고 말하는 만큼, 배임죄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경제형벌”이라고 강조했다.

경제계는 형법, 상법, 특경법상의 배임죄를 조건 없이 전면 개편하거나, 미국이나 영국처럼 사기·횡령죄로 처벌하거나 민사적으로 해결할 것을 제안했다. 전면 개편이 어렵다면 독일이나 일본 사례를 참고해 적용 대상과 처벌 행위 등 배임죄 구성요건을 명확히 규정하는 대체입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으로는 배임죄 구성요건에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거나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을 명시해 고의적인 위법행위만 처벌하고, ‘재산상 손해 발생’ 역시 현실적인 손해가 발생한 경우로 한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동안 손해 발생의 ‘우려’만으로 기소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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