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를 찍지 못한 여행과 삶…문지혁 ‘나이트 트레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7번째 출간


문지혁 작가. [현대문학]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어느 고단한 밤에 눈을 감으면 나는 아직도 유럽 어딘가를 향해 가는 야간열차 3등칸 꼭대기 침대에 누워 있다. 온종일 더위 속에 땀 흘린 몸은 찝찝하고, 덜컹이는 열차는 척추 위로 밤새 선로를 그린다. 깊이 잠들지 못한 채 현실과 뒤섞인 꿈 아닌 꿈을 꾸다가, 눈을 뜨면 열차는 언제나 낯선 도시에 들어서는 중이다. 그로부터 27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는 거기에 있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57번째 소설선 문지혁의 ‘나이트 트레인’이 출간됐다. 2025년 1월호 ‘현대문학’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이번 작품은 ‘오직 하나의 이미지, 하나의 장소, 하나의 단어’를 찾아 떠난 25년 전 여행에서 출발해 현재에 도달하는 이야기다. 1999년 유럽으로 3주 간의 배낭여행을 떠났던 20대 청년과, 그 청년이 유럽 여행 기간 중 쓴 소설 속 이야기, 2024년 자신의 20대를 되돌아보는 40대가 등장하는 세 겹의 층위를 가진 액자소설이다.

소설은 아버지가 보낸 택배 상자가 도착하며 시작된다. 상자 속에는 대학 때 열심히 듣던 은색 소니 CD플레이어와 빛 바랜 군복, 다이어리와 대학 교재, 사진, 시집, 원고 묶음 등이 들어 있다. 그 중 가장 눈길을 끈 건 녹슨 은반지였다. ‘나’는 버린 줄 알았던 은반지의 등장으로 희미해진 ‘지난 세기’의 일들을 하나씩 떠올린다.

고등학교 때 만나 ‘나’와 잠시 사귀었던 O는 작별선물로 은반지를 건넨다.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보기도 전 O로부터 이별을 당한 나는 그녀가 빈에서 사온 반지를 다시 빈에 버리기 위해 유럽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일종의 애도의 의식이었던 여행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결국 니스 어느 바다에 반지를 버리고 돌아오지만, 어찌된 일인지 반지는 아버지가 보낸 짐에 담겨 다시 내게로 온다.

책은 DAY 9200에서 시작해 DAY 1로 돌아간 뒤 DAY 9286로 마무리된다. 25년 전 시작됐으나 마침표를 찍지 못한 여행은 추상적 실체를 소거함으로써 9286일 만에 끝을 맺게 된다.

미숙한 젊음과 목적 달성에 실패한 여행, 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음직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것은 여행에 관한 기록이다. 하지만 인생에 여행 아닌 것이 존재할 수 있나?”라는 구절처럼 이 책은 여행 소설이면서 인생을 다룬다.

문지혁 ‘나이트 트레인’. [현대문학]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의 신작 시와 소설을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선보이고, 단행본 출간으로 이어가는 프로젝트다.

2026년 첫 번째 핀 시리즈 소설선인 문지혁의 ‘나이트 트레인’부터는 기존 6권, 4권 단위로 한 명의 표지 작가 작품으로 묶이던 방식에서 벗어나 한 권 한 권이 한국 문학의 대표성을 가지는 것으로 새롭게 큐레이션된다. 기존 25일이던 출간일도 5일로 바꿔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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