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국내 생산분 수출 통제 방침 속
수출-내수용 성질 달라 물량부족 여전
단기간 내 신규 수입처 확보도 어려워
호르무즈 봉쇄에 유가 추가인상 우려
생산·운송 원가부담 늘며 최악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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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 사태에 따른 원료 수급 불안 영향으로 페인트 제조 단가가 상승하며 페인트 제품 가격 인상 조짐이 보이고 있다. 사진은 25일 서울의 한 시장의 페인트 업체. [연합] |
“상황이 이정도인줄은 저희도 이번에야 확인했습니다. 가격 올리는 것은 2차적인 문제에요. 아예 물량 자체가 없어요. 나프타 물량이 없어서 조업 중단 가능성도 있습니다” 국내 한 대형 페인트업계 관계자는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현재 상황에 대해 ‘심각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달 초 ‘중동전쟁’ 직후엔 통화에서 “재고 물량이 있어 버틸 수 있다”고 했으나, 불과 3주만에 입장이 크게 바뀐 것이다.
27일 헤럴드경제가 국내 5대 페인트사가 이달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2025년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나프타 등 원재료의 재고 물량은 1달치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 최대 페인트 회사인 KCC의 경우 나프타 등 원재료 재고 물량은 237억원 가량인데, 이를 재고자산 회전율로 계산해 기간으로 환산하면 약 1.2개월치 물량에 해당한다. 같은 계산 방법으로 분석하면 조광페인트 1.6개월, 강남제비스코 1.2개월, 삼화페인트와 노루페인트는 약 0.9개월 수준으로 분석됐다.
페인트업계 관계자는 “재고 자산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대략 1개월 안팎의 재고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전쟁이 장기화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원유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나프타 공급이 막힌 상태”라고 설명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최장 6개월치까지 가지고 있는 물량이 있는 것으로 계산을 했었는데, 현장 관계자들 말을 다시 종합했더니 예상보다 빨리 재고가 소진됐다는 회신을 들었다”고 말했다.
재고 물량이 빠르게 바닥이 드러나면서 페인트 업계는 가격을 인상하고 나섰다. 노루페인트와 삼화페인트공업은 지난 23일부터 제품별 가격을 20∼55% 올렸다. KCC도 다음 달 6일부터 대리점 공급 가격을 10∼40% 올린다는 공지를 전국의 거래처와 대리점에 통보했다. 제비스코도 내달 1일부터 이전 대비 15% 이상으로 가격을 올릴 계획이다. 인상 대상에는 아파트 등에 쓰이는 주택용 도료, 발전소용 플랜트 도료, 공업용 실란트 등이 포함됐다.
문제는 가격 인상만으로 현재의 문제가 해소되긴 어렵다는 점이다. 나프타는 원유 정제 시 분리돼 나오는 탄소화합물인데 국내 수입 나프타의 약 54%가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공급 차질은 장기화 추세다. 충남 서산 대산석유화학단지에서는 LG화학의 공장 가동률이 69%에서 54%로, 롯데케미칼은 80%에서 70% 수준으로 각각 하락했다.
정부는 정유 업체 등이 나프타 수출 제한을 통해 국내 수급을 유지한다는 계획이지만, 수출용 나프타와 내수용 나프타가 성질(경질·중질)이 달라 수출 제한만으로 내수 나프타 물량 부족 문제가 해소되긴 어렵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나프타의 경우 알제리·그리스·페루·인도 등을 통해 수입처 다변화 가능성도 있지만, 운임 상승 문제가 중동 전쟁 때문에 겹치면서 대체 수입처 확보를 단기간 내에 기대키는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신규 수입선을 처음부터 뚫는 것보다 기존 수입국을 중심으로 물량을 늘리는 편이 필요 물량 확보에 더 유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건자재 업계도 상황 악화가 불가피하다. 창호, 바닥재, 단열재, 필름 등을 생산하는데 쓰이는 원료가 나프타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재 수급 차질과 물류비 급등은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재고 물량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신규 원자재 확보마저 지연될 경우 생산 차질이 불가피해지고, 이는 납기 지연과 비용 부담이 동시에 확대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일부 업체들은 기존 계약 물량의 인도 일정이 지연되는 상황도 겪고 있다. 업계는 동남아시아와 유럽 등으로 수입처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단기간 내 안정적인 물량 확보는 쉽지 않다.
관련 업계와 트레이딩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나프타 가격은 t당 1068달러로, 미·이란 갈등 격화 이전인 지난달 27일(640달러) 대비 약 70% 상승했다. 같은 기간 나프타를 원재료로 하는 에틸렌 가격도 t당 680달러에서 1150달러로 69.1% 급등했다.
중동전쟁 여파로 국내 중소기업들의 피해·애로 접수도 빠르게 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월 28일부터 3월 25일 낮 12시까지 중동전쟁 관련 중소기업 피해·애로 접수는 총 379건으로 집계됐다. 전주보다 117건 늘어난 수치다. 실제 피해·애로 사례는 251건으로 전주 대비 80건 증가했고, 우려 접수는 75건으로 14건 늘었다. 해당 없음은 53건으로 23건 증가했다.
현장에서는 원자재 수급 차질과 수출 지연, 주문 취소 등이 현실화하고 있다. 식품 포장지용 폴리에틸렌(PE) 제조업체의 경우 원자재 수급 문제로 4월부터 공급이 어렵다는 통지를 받았고, 재고도 많지 않아 차질이 길어질 경우 공장 생산 중단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홍석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