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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김효민·ChatGPT |
마을 버스가 종점에 멈추자 승객들이 내렸다. 막차라서 그런지 승객은 재현을 포함해서 세 명 뿐이었다.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낀 재현은 빌라들이 있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주변을 살펴보며 걷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오늘의 목적지인 월령동 대환 빌라가 바로 코 앞이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자 바로 앞에 대환 빌라가 보였는데 붉은 벽돌과 대리석으로 만든 대한민국에 무수히 많은 다세대 빌라 중 하나였다. 밤늦은 시간이라 골목길에는 인적이 끊긴 상태였다. 재현은 대환 빌라 앞으로 가서 현관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유리문이 스르륵 열리자 현관의 센서등이 켜지면서 계단이 보였다. 재현은 계단을 오르면서 오늘의 목적지를 중얼거렸다.
“204호.”
계단을 오르자 복도가 쭉 펼쳐졌다. 앞뒤로 긴 빌라라서 복도 좌우로 어긋나게 현관문들이 있는 형태였다. 204호는 복도 끝이라고 반장이 텔레그램으로 전달했었다. 반장의 본명은 몰랐다. 반장 역시 그를 특공대 14라고 불렀다. 앞에 13명의 다른 특공대가 있는지 아니면 그냥 정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건 시키는 대로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밤늦게 움직여야 하지만 하는 일에 비하면 미안할 정도로 많은 돈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이 일이 내키지 않았다.
“진짜 사고만 안 났어도…..”
늦은 밤, 오토바이 배달을 하다가 똥콜을 잡고 투덜거리며 달리던 게 문제였다. 빨리 배달을 마치고 담배를 피울 생각에 골목길에서 속도를 줄이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심야 기도를 하러 나온 할머니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뒹굴고 있었고, 옆으로 눕혀진 오토바이의 헤드라이트에 웅크리고 쓰러진 할머니의 모습이 비춰졌다. 할머니의 치료비로 아끼던 오토바이가 날아갔다. 그리고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오랫동안 누워 있으면서 그나마 모은 돈도 모두 사라졌다. 그렇다고 힘든 노가다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아서 이것 저것 알아보다가 우연찮게 텔레그램으로 들어갔다가 야간 알바 10만원이라는 글자를 본 것이 시작이었다.
시키는 대로 몇 가지 인적 사항과 연락처를 적고 기다리자 자신을 반장이라고 칭한 남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첫 번째 의뢰는 아주 간단하고 사소했다. 밤중에 개인주택의 대문에 전단지를 붙이고 빨간색 스프레이를 뿌리는게 전부였다. 그렇게만 하면 15만원이나 준다고 해서 재현은 몇 번이고 반장에게 확인을 하고 다짐을 받았다. 전단지 내용은 빚을 갚지 않은 집주인에 대한 비난이었다. 전단지를 붙이고 주변에 몇 장 뿌린 다음에 스프레이를 대문에 칠했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전송하는 것이 끝이었다. 10초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돌아오는 길에 암호 화폐로 입금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리고 반장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 특공대 임무 완료 축하.
재현은 유튜브를 보고서야 자신이 한 행동이 신문과 언론에 나오는 사적 제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 복수 대행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돈을 받고 누군가에게 보복을 대신 해주는 것이었다. 재현은 혹시나 불법적인 일에 휘말린 게 아닌지, 순간적으로 겁이 났지만, 포기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을 받은 상태였다. 거기다 반장이 그런 재현의 속마음을 눈치챘는지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하며 다른 일을 맡겼다.
- 이번 일은 25만원입니다. 하실래요?
암호화폐로 받은 돈으로 오랜만에 삼겹살에 소주를 먹을 수 있었던 재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냉큼 하겠다고 적었다. 두 번째 일은 좀 더 난이도가 높았는데 다세대 빌라 현관문의 전자 도어락을 부수고 피를 뿌리라는 내용이었다. 현관으로 들어갈 수 있는 비밀번호는 반장이 알려주었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반장은 배달 대행업체에 위장 취업을 해서 알아냈다고 대답했다.
두 번째 의뢰를 받은 날은 비가 왔다. 검정색 비옷을 입고 목적지에 도착한 그는 가지고 온 망치로 전자도어락을 부수고, 동네 정육점에서 산 선지 덩어리가 든 비닐 봉지를 현관문에 던졌다. 터진 선지가 마치 피처럼 뚝뚝 흘러내렸다. 이번에도 잽싸게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은 재현은 곧장 밖으로 나왔다. 골목길을 빠져나오다가 배달 오토바이와 마주친 그는 부러움과 서글픔이 깃든 눈으로 오토바이를 바라봤다. 원래 목표는 얼른 돈을 모아서 배달 일을 할 수 있는 오토바이를 다시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손쉽게 돈을 버는 것에 맛을 들인 이상 오토바이를 다시 산다고 해서 예전처럼 배달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204호 앞에 선 재현은 반장의 지시 내용을 중얼거렸다.
“인분을 뿌리고 전단지를 붙이라고 했지.”
주머니에 접어서 넣어둔 전단지를 204호 현관 위쪽에 붙인 재현은 가지고 온 비닐 봉지에서 패트병을 꺼내서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그의 인분이 들어 있었다. 좀 더 잘 뿌려지라고 물을 섞은 탓에 걸쭉해진 상태였다. 숨을 훅 들이쉰 재현은 패트병을 치약처럼 짰다. 안에 든 인분이 빠져나오면서 현관문에 달라붙었다. 패트병에 갇혀있던 인분이 냄새와 함께 해방되었다. 복도는 순식간에 냄새로 가득 차 버렸다. 생각보다 강한 냄새에 놀란 재현은 서둘러 사진을 찍고 빠져나가기로 했다. 인분을 넣어두었던 패트병을 바닥에 내려놓고 휴대폰을 꺼내는데 빌라 현관의 센서등이 켜지는 게 보였다.
“뭐야?”
계단을 올라온 건 헬멧을 쓴 배달부였다. 손에는 주문을 받은 음식이 든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바이저가 내려가 있어서 얼굴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몸짓을 통해 당황해하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바로 옆 203호에서 나오려고 하는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젠장!”
재현은 서둘러 복도를 뛰었다. 현관문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배달부를 밀치고 가는 수 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아까 당황해서 떨어뜨린 패트병이 문제였다. 거기서 흘러나온 인분을 밟는 바람에 쭉 미끄러진 것이다. 예전에 오토바이 사고가 났을 때 다친 오른쪽 발목이 심하게 꺾이면서 무시무시한 통증이 엄습해 왔다.
“으악!”
억지로 일어난 재현은 눈 앞에서 벌어진 일에 놀라서 어쩔 줄 몰라하는 배달부를 밀치고 계단을 내려갔다. 발목이 심하게 아파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 했다. 빌라의 현관을 나온 빠져나온 재현은 다친 발목을 절룩거리며 골목길로 숨었다. 방금 빠져나온 빌라에서는 비명소리 같은 게 들리면서 불들이 켜졌다.
“어서 벗어나야겠네.”
재현은 시멘트블록으로 된 골목길의 담장을 한 손으로 짚어가면서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발목의 통증이 익숙해지자 아까 넘어지면서 바지에 묻은 인분 냄새가 풍겨왔다.
“빌어먹을, 어떡하지?”
이렇게 냄새를 풍긴 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건 어려울 거 같았다. 택시도 마찬가지로 의심을 살 것 같았다. 결국, 살고 있는 고시원까지 걸어가기로 한 재현은 휴대폰을 꺼내서 반장에게 보고했다.
- 미션 완수, 현장에 사람이 나타나서 사진은 못 찍음.
잠시 후, 반장의 메시지가 텔레그램으로 왔다.
- 들켰어?
재현은 잠시 고민했다. 아까 마주친 배달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구모자를 쓰고 마스크까지 끼고 있어서 얼굴을 봤을 확률은 적었다. 생각을 정리한 재현이 답장을 보내려고 했는데 그 사이에 반장의 계정이 사라져 버렸다.
“어?”
그제야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했다는 게 떠올랐지만 텔레그램의 세계에서 사라진 반장을 찾을 방법은 없었다. 재현은 고시원까지 돌아가는 머나먼 거리를 떠올리며 더욱 낙담했다. 위험했지만 나름 돈벌이가 괜찮았던 알바는 그렇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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