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스텝’부터 환율 ‘사투’까지…이창용의 치열했던 4년

2022년 4월 취임, 20일 퇴임 앞둬
수차례 국내외 위기서 소방수 자처
글로벌 네트워크 활용…소통 확대
‘서학개미 발언’ 곤혹 “환율 아쉬워”

이창용(왼쪽) 한국은행 총재가 2023년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에서 ‘팬데믹 이후의 정책과제’라는 주제로 열린 국제컨퍼런스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발걸음은 아주 가볍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0일 마지막으로 진행한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퇴임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임기 4년 내내 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그에게 ‘한국 통화정책 수장’이라는 자리의 무게가 얼마나 컸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총재는 오는 20일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다.

▶물가·가계부채 ‘소방수’…숫자로 증명한 성과=이 총재는 2022년 4월 취임 이후 수차례 위기를 맞닥뜨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레고랜드 사태,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12·3 비상계엄, 그리고 트럼프발 관세 충격에 ‘현재진행형’ 이란 전쟁까지. 이 총재는 이런 위기 상황 앞에서 스스로 ‘소방수’를 자처했다.

취임하자마자 이 총재가 마주한 것은 팬데믹 이후 러·우 전쟁과 함께 폭발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었다. 이 총재가 당시 꺼낸 카드는 한은 사상 첫 ‘빅스텝’이었다. 2022년 7월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렸다. 6.3%까지 치솟은 물가 안정을 위한 ‘극약 처방’이었다. 10월 한 차례 더 빅스텝을 단행하며 기준금리를 3.5%까지 끌어올렸다. 당시 한국은 주요국 중 가장 먼저 물가안정 목표치를 달성했다.

그 뒤로 다양한 위기 상황에서 이 총재는 시장안정화 조치를 실시하고, 국제사회와 소통하며 한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 총재는 임기 중 가장 힘들었던 사건으로 ‘레고랜드 사태’를 꼽는 것으로 전해진다.

가계부채 비중을 낮춘 것도 이 총재의 대표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임기 내내 “과도한 부채가 거시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제약할 것”이라는 경고를 이어왔다. 긴축적인 통화정책으로 가계부채를 관리하고, 정책 컨퍼런스를 개최하며 해당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힘썼다. 이 총재가 취임하기 전인 2021년 3분기 GDP(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9.1%였는데 2025년 3분기에는 89.4%까지 떨어졌다.

▶글로벌 네트워크로 ‘K-금융’ 확장…적극적 시장 소통도=이 총재는 ADB(아시아개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IMF(국제통화기금) 아시아·태평양국장 등 국제 기구에서 쌓아올린 글로벌 네트워크를 임기 중 적극 활용했다.

이 총재는 BIS(국제결제은행) 이사, CGFS(글로벌금융시스템위원회) 의장 등을 맡으며 한국의 정책 관심사를 글로벌 의제에 반영하는 데 힘을 쏟았다. 특히, CGFS 의장은 전통적으로 G7(주요 7개국) 국가의 전유물로 한국은행 총재가 이 자리에 오른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CGFS 의장 선임에는 이 총재와 수시로 통화할 정도로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유럽중앙은행) 총재가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총재는 한국은행 내부 문화도 바꿨다. 침묵을 미덕으로 삼던 한은이 이 총재 취임 이후 저출생·고령화부터 자율주행택시, 연명의료까지 ‘구조개혁 연구’ 시리즈를 연달아 쏟아냈다. 입시 문제 해결을 위해 상위권 대학의 ‘지역별 비례선발제’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디지털 금융 영역에서도 ‘프로젝트 한강’ 실거래 추진, 네이버와 협력해 구축한 소버린 AI(인공지능) ‘BOKI’, ‘원화 스테이블코인 7대 리스크 백서’ 발간 등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시장과 소통도 확대했다. 미래 정책 방향에 대한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총재는 2022년 10월 ‘3개월 내 조건부 금리 전망(포워드 가이던스)’을 도입했고, 올해 2월에는 전망 시계를 6개월으로 늘리는 동시에 한국형 점도표를 처음 도입했다. 이 총재는 반대하는 금융통화위원들을 끈질기게 설득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끝내 잡지 못한 환율 ‘미완의 과제’로=적극적인 소통은 ‘말실수’를 낳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서학개미’ 발언이다.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에서 이 총재는 당시 급등하는 환율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젊은 사람에게) 해외 투자를 왜 이렇게 많이 하냐고 하면 ‘쿨하다’고 답하곤 하는데 이처럼 유행처럼 해외 투자가 퍼지는 것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후 고환율의 원인을 서학개미탓으로 돌린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마지막 간담회에서 “당시 데이터를 보면 우리 개인 투자자들의 자본 유출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고 그 얘기는 지금 하라고 해도 아마 얘기는 했을 것 같다”면서도 “제가 ‘쿨하다’라고 발언한 것으로 보도가 많이 됐는데 제 말이 아닌데 제 말처럼 보도돼서 그 얘기를 안 했으면 좋았을텐데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김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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