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 못한 ‘신속시범사업’…‘혁신 기술’ 도입 명분 멀어져

2022년 사업 선정 시제품 11개 중 ‘다족보행로봇’만 살아
자국군 전력화 없어…해외 국가 문의에도 수출 차질 빚어


지난해 3월 경기 파주시 무건리 훈련장에서 2025년 FS/TIGER 연습 일환으로 열린 ‘연합 WMD 제거작전 훈련’에서 제25보병사단 장병들이 다족보행로봇을 활용해 WMD 시설에 진입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헤럴드경제=전현건 기자] 첨단 민간기술을 국방 분야에 빠르게 적용하기 위해 정부가 ‘신속시범사업’을 운영하는 가운데 2022년에 참여한 사업자들은 이듬해 개정된 규정 적용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방위사업청이 2023년 신속시범사업에 보다 속도를 내기 위해 ‘시험평가’를 생략했지만, 2022년 참여 사업자들은 이 혜택을 적용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19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2022년 신속시범사업에 선정된 시제품 11개 중 현재 군의 소요 결정 후 사업추진기본전략을 작성하고 있는 제품은 ‘대테러 작전용 다족보행로봇’ 하나 뿐이다.

경량화 105㎜ 자주포는 각종 절차를 거쳐 군이 소요를 제기했지만, 합동참모본부가 통합개념팀(ICT)을 꾸려 해당 무기체계의 타당성을 또다시 검토하고 있다.

군의 ‘인정’ 결정을 받은 제품은 위의 두 제품을 포함해 4개에 불과하다. 저격용 소총 인공지능(AI) 열상조준경의 경우엔 군이 소요 제기를 준비하고 있다. 이 외에 ‘미인정’과 ‘부분인정’ 결정을 받은 제품이 각 1개씩 있고, 다른 제품 5개는 아직도 시범 운용되고 있다.

2023년 9월 관련 규정이 개정되기 전 기준을 보면 신속시범사업사업자로 선정되면 연구개발을 거쳐 시제품을 만들고, 군이 해당 시제품을 시범 운영한 뒤 인정 또는 미인정을 결정했다. 인정을 받으면 군이 소요 여부를 검토, 소요가 결정되면 시험평가를 거쳐 양산에 돌입하는 게 절차였다.

그런데 2023년 9월 국방부 국방전력발전업무훈령 제59조 제5항이 신설되면서 사업자가 양산 전 시험 평가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규정에 변화가 생겼다. 해당 조항은 ‘성능입증시험 결과로 시험평가를 대체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계약 체결 방식도 넘어야할 산이다. 2023년 9월 개정된 국방부 훈령 제36조의2 조항을 보면 개정 이후 선정된 신속시범사업사업자는 사업을 거쳐 수의계약 방식으로 구매계약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이전 사업자의 경우에는 이 같은 조항이 없어 혼란스럽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방사청 측은 “규정 개정 이전 사업의 경우에도 군으로부터 활용성을 인정받고 장기 규격화를 완료한 경우 ‘국가계약법 시행령’에 따라 수의계약 방식의 구매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출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일부 제품의 경우 해외 국가에서 문의가 있었지만,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에 있어 핵심은 ‘자국군의 전력화’ 여부인데, 아직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먼저 신속시범사업을 진행한 미국은 신속획득을 국방전략 차원에서 제도화해 사업관리 권한, 예산, 후속양산 절차까지 함께 설계하고 있다.

한국은 신속시범사업이 끝나도 후속물량 확보나 양산이 자동으로 보장되지 않아 기업 입장에서 리스크가 큰 반면 미국은 신속획득 범주와 후속 절차를 분리·정교화해, 시범운용 뒤 바로 이어질 수 있는 경로를 제도적으로 마련했다는 점이 강점이다.

아울러 미국은 신속획득을 수행하는 사업관리자(PM)의 권한과 책임을 크게 두고, 예산 운용도 더 유연하게 설계하고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신속시범사업의 핵심 문제는 초기 군 소요와의 연계가 약하고, 사업 성공 뒤에도 곧바로 전력화·양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라며 “또 법적 근거·절차·예산·인센티브가 충분히 정비되지 않아 ‘시범’에 머무는 한계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사청은 “앞으로 제도 취지를 충실히 반영하면서 군 운용에 필요한성능이 충분히확보될 수 있도록 관련사업을 지속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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