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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일본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에 정박한 캐세이퍼시픽 여객기의 모습. 캐세이퍼시픽은 항공유 가격 급등의 여파로, 오는 6월말까지 항공편을 감축하기로 했다.[게티이미지] |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확전 태세를 보이면서, 요동치는 국제 유가에 교통·운송 업계가 숨을 죽이고 있다. 항공사들의 항공편 감축 규모와 기간이 예상보다 늘어나고 있고, 호주에서는 경유값이 전쟁 발발 전의 2배 수준으로 뛰면서 화물 운송도 줄고 있다. 교통· 부문에서 전기차만 무풍지대에 놓이면서, 유럽 내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는 것도 눈에 띈다.
홍콩 항공사 캐세이퍼시픽은 항공유 가격 급등으로 인해 다음달 16일부터 오는 6월 30일까지 예정된 여객 노선의 2%를 취소하기로 했다. 캐세이퍼시픽의 저가 항공사인 홍콩 익스프레스는 다음달 11일부터 6% 가량의 항공편을 감편하기로 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노선의 여객 노선은 오는 6월 30일까지 중단될 예정이다.
이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인해 국제유가가 치솟으면서 파생된 결과다. 로널드 람 캐세이퍼시픽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이란 전쟁으로 중동을 경유하는 교통량이 감소한 이후 북미, 유럽, 호주행 장거리 노선에 대한 수요가 강력해졌다”며 올해 여객 수송 능력을 10% 확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제유가가 급증하자 항공유 가격 부담을 이기지 못해, 단기적으로 항공편 감축에 나선 것이다.
캐세이퍼시픽은 6월 이후에는 예정된 모든 여객 노선을 정상 운영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하더라도 항공유 공급은 향후 몇 달간 공급이 충분치 않고 가격은 높은 상황이 유지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항공 업계에서는 베트남항공 등 동남아시아부터 호주 콴타스와 뉴질랜드의 에어뉴질랜드 등 여러 항공사들이 감편을 단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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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4월 호주 캐서린과 다윈 사이 도로 위를 달리는 로드 트레인의 모습. 호주의 육상 수송을 담당하는 로드 트레인도 급등하는 경유 가격을 견디지 못해 운송 횟수를 줄이는 등 고육책을 강구하고 있다.[게티이미지] |
중동산 석유 의존도가 높은 호주에서는 화물 운송도 줄었다. 경유 가격이 전쟁 전보다 2배로 치솟으면서 경유에 전적으로 의존해왔던 화물 운송업계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12일(현지시간) 호주의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사상 최대 폭으로 급등했고, 이는 호주 물류 산업의 ‘혈맥’을 위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호주는 로드 트레인이라 불리는 대형 화물차가 사막이나 대규모 평원을 가로지르며 물류를 담당해왔다. 트럭 한 대가 두 대 이상의 트레일러를 끄는 형태의 로드 트레인은 대부분 경유를 사용하는데, 최근 경유 가격이 급등한 데다 공급도 원활하지 않아 수송 건수도 예전보다 줄이고 있다고 전해진다.
호주 석유 협회에 따르면,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은 1ℓ당 312.7센트로 전쟁 전 180.2센트에서 두 배 가까이 급등했다. 휘발유 가격 또한 171센트에서 240.1센트로 올랐다. 화물차 업체를 운영하는 에런 피셔는 BBC에 “전쟁 전에는 탱크를 가득 채우는 데 3600호주달러면 충분했지만, 지금은 7500달러가 든다”며 “글자 그대로 연료비가 두 배가 됐다”고 호소했다.
연료비 뿐 아니라 공급이 충분치 않다는 것도 문제다. 로드 트레인은 트레일러 몇 대를 끌고 가는지, 트레일러에 어떤 것을 싣고 가는지에 따라 연료 소모량이 크게 달라지고, 평원을 가로지르는 길에는 주유소 간 거리가 200km에 달하는 구간도 있다. 최근에는 로드 트레인이 주로 다니는 경로의 주유소에 재고가 없는 경우도 발생했다.
호주는 최근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가 운전이 불가피한 이들을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에너지 절감에 나서달라고 호소했고, 운송 및 화물 부문 종사자나 연료 및 비료 생산자를 위해 10억호주달러 규모의 무이자 대출 정책도 발표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대출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며, 직접적인 연료비 보조금 정책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40년간 로드 트레인을 몰아온 테리 스넬은 “전에는 매주 운행했지만 이제 격주로 한다. 매주 운행하려면 은행 대출을 받아야 할 판”이라며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운행을 멈춘 사람들이 많아 트럭(에 의존하는 물류 공급망)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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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 이란 간 1차 협상이 결렬되면서 국제유가는 12일(현지시간)도 급등했다. 유럽에서는 유가 부담을 피하려는 소비자들이 전기차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게티이미지] |
세계 전역에서 교통·운송망이 흐트러지는 가운데, 유럽에서는 전기차만 ‘잘 나가는’ 비대칭 현상이 발생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에서 전쟁 발발 이후 전기차(EV)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갑자기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독일 최대의 온라인 자동차 마켓인 모바일데(Mobile.de)에 따르면 지난달 전기차에 대한 문의가 전월보다 50%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휘발유나 경유 등 내연기관 차량에 대한 문의는 감소한 반면, 엔진과 소형 배터리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차량 문의는 4% 상승했다.
모바일데의 아제이 바티아 최고경영자(CEO)는 독일 내 경유 가격이 1ℓ당 2.50유로에 달하면서, 유럽 내 내연기관 엔진의 본거지였던 독일에서 “전기차 붐”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독일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 해내지 못한 일을 경제적 현실이 해냈다”고 덧붙였다.
영국, 스페인, 독일의 구매자와 딜러를 연결하는 플랫폼 카우는 지난 2월과 지난달 사이 세 곳 모두에서 전기차에 대한 문의가 20~30%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영국 내 전기차 수요는 한 달 동안 23% 증가했고, 하이브리드에 대한 관심은 19% 늘었다.
영국 자동차공업협회(SMMT)에 따르면 지난달 배터리 전기차 등록 대수는 총 8만6120대였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4.2% 급증한 수치이며, 사상 최고치다.
프랑스 최대 자동차 거래플랫폼인 라 센트랄은 지난달 초와 이달 초 사이 전기차 검색량이 160% 증가했다고 밝혔다. 라 센트랄의 기욤-앙리 블랑셰 부대표는 “운전자들은 에너지 가격에 매우 민감하며 대안을 찾고 있다”며 중고차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국제유가는 전쟁이 종식되거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풀리더라도 금새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전기차에 대한 관심도 이런 전망과 맞물려 금새 식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모바일데의 바티아 CEO는 “(전기차에 대한 관심의) 급등세가 꺾이긴 하겠지만, 완전히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충전 인프라 개선과 배터리 전기차(BEV) 가격 하락에 힘입어 전기차 수요가 “이전보다 높은 새로운 정상 수준”에 안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라 센트랄의 블랑셰 부대표는 “이번 위기는 소비자들에게 어느 정도 상흔을 남길 것”이라며 유가 상승이 “소비자들이 총소유비용(TCO)을 진정으로 인식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됐다고 전했다. 장기적인 구동 비용이 저렴하다면 소비자들은 더 높은 초기 구매 비용을 기꺼이 고려할 것이라는 게 블랑셰 부대표의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