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울산 사운드”…BBC가 선택한 ‘오케스트라 빌더’는 왜 울산에 왔나?

빈 출신 ‘오케스트라 빌더’ 사샤 괴첼
BBC뮤직 매거진 수상한 서사 장인
이스탄불 이어 울산발 기적 만드나


사샤 괴첼 울산시향 지휘자는 이름 없는 이스탄불 필하모닉을 세계적인 명성의 악단으로 올려놓은 ‘오케스트라 빌더’다. [예술의전당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슈레커, 코른골트, 크레네크….

금지됐고, 그래서 잊힌 음악이 있었다. 세 작곡가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당대의 질서를 흔들었다. 지나치게 관능적이고 심리적이라는 이유(슈레커)로, 유대계 작곡가로서 황홀한 선율이 시대의 불안을 품었다는 이유(코른골트)로, 재즈와 현대성을 클래식 안으로 끌어들인 급진성(크레네크) 때문에 나치는 이들을 ‘퇴폐 음악’으로 규정했다.

종말의 그림자 속에서도 사람들은 끝내 자유를 꿈꿨다. 오스트리아 출신 지휘자 사샤 괴첼은 이 음악들을 “20세기 초 유럽의 균열과 불안을 드러낸 기록”으로 바라봤다.

한때 독재 정권이 금지했던 음악은 100년 뒤 런던에서 아름다운 승리를 거뒀다. 최근 영국 런던 킹스플레이스에서 열린 BBC뮤직 매거진 어워즈 2026에서 그의 이름이 불리면서다. ‘세계적인 거장’ 사이먼 래틀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을 제치고 사샤 괴첼이 프랑스 페이드라루아르 국립 관현악단(ONPL)과 함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슈레커, 코른골트, 크셰네크의 작품을 담은 BIS 레이블의 이 음반은 1930년대 독재 정권 아래 금지되거나 잊혔던 빈 작곡가들의 음악을 되살린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때마침 수상 소식이 날아온 다음 날 헤럴드경제와 만난 괴첼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래틀은 영국 지휘자이기 때문에 BBC 상 후보에 오르면 보통 늘 받거든요. 제 오케스트라는 국제적으로 아무도 모르는데 말이죠.”

사샤 괴첼 울산시향 지휘자. [예술의전당 제공]


BBC 뮤직 매거진 어워즈는 평단이 후보를 선정한 뒤 최종 수상작을 청중 투표로 결정하는 상이다. 그는 “관객이 선택해 준 상이기에 더 특별하다”고 했다.

이 음반은 3부작 도시 시리즈의 첫걸음이다. 괴첼은 “1880~1938년까지, 이 시기 유럽엔 큰 불안과 두려움, 아포칼립스가 다가오고 있다는 묵시록적 정서가 팽배했다”며 “흥미롭게도 빈 사람들은 아포칼립스를 기쁨으로 받아들이곤 했다”고 말했다.

당시는 클림트, 에곤 실레, 분리파 운동, 쇤베르크의 제2빈악파 등이 태동하며 예술이 폭발적으로 확장하던 때이다. 괴첼이 바라보는 음악은 ‘문명의 기억’이며, 시대의 불안을 기록한 ‘정신의 지도’라고 봤다.

그는 “이 상은 시대의 공포와 인간의 불안을 기억하려는 작업에 대한 응답”이라며 “종말의 감각이 다가오던 시대, 예술이 그 혼돈을 어떻게 반영했는지 담고 싶었다”고 했다.

이 음반은 단지 사라진 음악을 복원한 작업이 아닌, 하나의 서사로 다시 태어난 프로젝트다. 그의 음악은 빈을 시작으로 올여름 녹음할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파리(1917~1924)를 거쳐 내년 녹음할 3부 ‘아포칼립스’로 이어진다. 괴첼은 “모두 잊힌 레퍼토리”라며 “라벨과 드뷔시가 아닌 1차 세계대전 이후 모든 것이 무너진 순간의 음악들”이라고 귀띔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괴첼은 화려한 스타 지휘자라기 보다 ‘오케스트라 빌더’에 가깝다. 그의 손이 닿는 곳이면 새로운 음악 서사와 사운드가 태어난다. 지난달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피날레 무대에 선 울산시향의 공연이 회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성호 울산시향 악장 [예술의전당 제공]


2025년 1월, 괴첼은 울산시향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했다. 3년 임기는 이내 1년이 연장, 오는 2028년까지 그는 울산을 키우는 과업을 안게 됐다.

괴첼의 이름이 세계 무대에서도 알려진 것은 그가 터키 이스탄불 필하모닉을 이끌 때였다. 2000년대 후반 유럽에선 존재감도 없던 이 악단은 2014년 영국 BBC 프롬스 무대에서 ‘세계적 수준’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오케스트라의 발전은 2~3년 안에 일어나지 않는다”며 “이스탄불과도 6~8년이라는 긴 과정을 거쳐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가 울산시향으로 향한 것은 의외의 선택이다. 빈필하모닉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여러 차례 한국을 찾았고, KBS교향악단의 객원 지휘자로도 방한하며 인연을 맺었으나, 울산시향은 전국적 인지도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덜한 악단이다.

괴첼은 그러나 “도시가 오케스트라를 발전시키고 싶어 한다는 확신이 있어 이곳에 오게 됐다”고 했다. 실제로 울산시는 괴첼을 상임 지휘자로 임명하며 신규 단원 충원과 장기적 지원 의지를 보여줬다. 올해는 10명의 단원을 신규 채용한다.

그는 “오케스트라의 성장은 연주자 개인의 기량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행정과 도시, 관객의 의지가 함께 움직여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괴첼은 울산에서도 이스탄불과 같은 과정을 꿈꾼다. 취임 당시에도 그는 “처음에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이스탄불 필하모닉을 6년 후에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만들었다”며 ‘울산시향’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오케스트라는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아요. 적어도 15~20개의 프로젝트를 함께 지나야 비로소 사운드의 DNA가 달라지죠.” 현재 울산시향과는 19번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가 울산시향에 대해 지금이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울산에 입성해 괴첼은 가장 먼저 도시를 걸었다. 그는 “지휘자는 도시의 공기와 사람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날씨와 같은 환경이 음악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다. 핀란드에선 긴 겨울의 어둠을 경험했고, 울산에선 숨 막히는 습도와 열기를 느꼈다. 이 감각들이 오케스트라의 호흡과 음색에 스며든다고 그는 믿는다.

사샤 괴첼 울산시향 지휘자 [예술의전당 제공]


괴첼의 리허설은 단순히 음을 맞추는 과정이 아니다. 울산시립교향악단 악장 지성호는 “폴카를 연주하면 직접 춤을 추며 비엔나에서 이 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설명한다”고 했다. 단원들은 악보 속 리듬이 아니라, 그 음악이 태어난 도시의 공기와 몸짓을 배운다. 괴첼은 이를 ‘작곡가의 방언’이라고 말한다. “서울과 울산의 한국어가 다르듯, 작곡가마다 소리의 언어가 다르다”고 괴첼은 귀띔한다.

괴첼이 단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자신감’이다. “실수할까 두려워하면 음악은 살아나지 않는다”는 철학이 단원들에게 긍정의 힘을 끌어낸다. 지성호 악장은 “테니스공이 날아왔을 때 확신 있게 받아쳐야 하듯, 연주자도 위험을 감수해야 위대한 음악이 나온다고 괴첼은 강조한다”며 “예전보다 단원들의 표정과 리액션이 훨씬 열려 있다”고 했다.

괴첼의 비전은 울산을 넘어선다. 그는 “울산시가 예술과 악수할 때 도시는 성장하고, 거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며 “현대의 비전, 창업자와 그 가족이 수년간 모든 것을 계획해 온 방식이 지금, 문화로 이어져야 할 정신”이라고 강조한다. 울산시 역시 울산시향을 비롯해 다양한 공연을 열 수 있는 ‘울산형’ 링컨센터 건립을 기획하며 괴첼과 보폭을 맞추고 있다.

천생 음악가이지만, 사실 그는 음악가가 아니라면 천체물리학자가 되고 싶었다고 말한다. 특히 양자역학에서 전자가 에너지를 얻어 다른 궤도로 이동하는 순간, 아주 짧게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는 현상에 깊은 매혹을 느낀다. 그런 감각을 음악에도 연결하는 듯 보인다.

매 연주, 매 리허설 과정에서 괴첼과 단원들은 ‘울산 사운드’를 찾아간다. 리허설 말미 ‘만족스러운 연주’를 끝나면, 괴첼은 외친다. “디스 이즈 울산 사운드(This is Ulsan sound)”

지 악장은 “내고 싶은 소리가 있을 때 몇 번을 반복해서 연주한 뒤에 꼭 그 말이 나온다”며 “바로 이 시간, 가장 익숙한 공간에서, 울산필하모닉 단원 모두의 노력이 모여 순간적으로 만들어지는 그 찰나의 소리, 그것을 울산 사운드라고 한다”고 했다. 도시의 역사, 그날의 공기와 시간,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자 하는 의지가 모여 ‘하나의 소리’를 만든다. 괴첼이 말하는 ‘울산 사운드’는 한 도시가 스스로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이스탄불의 기적을 쓴 괴첼이 울산에서 새로 쓰는 이야기는 아직 첫 장밖에 넘기지 않았다. ‘결정적 도약’은 다가올 내일이다. 그는 “언젠가 떠날 때가 되면, 그들에게도 내게도 이날들이 기억에 남을 것”이라며 “서로가 삶의 일부가 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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