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기술자, 후배에 현장 노하우 전수…세대 간 소통·화합의 기회
[헤럴드경제(부산·울산)=이태형 기자] 115만 개에 이르는 노인일자리가 시대 변화에 발맞춰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플라스틱 감축을 위해 ESG센터에서 아이들과 학생을 상대로 환경교육을 하거나 못 쓰는 장난감을 수리한다. 국가기간산업에서 근무했던 노인일자리 참여자는 현장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한다.
지난 7일 부산 금정구 ‘우리동네 ESG센터’에서 만난 노인일자리 참여자들은 폐플라스틱을 수거·세척해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들고 시민들에게 환경 교육을 제공한다.
고장 난 장난감을 고치거나 분해 부품으로 새 장난감을 만들고, 페트병을 분쇄한 ‘플레이크’(작은 조각)을 활용해 조끼와 운동화를 만드는 일도 노인일자리 참여자의 손에서 이뤄진다.
채종현 부산금정시니어클럽 관장은 “부산시 평균 고령화율인 24.9%보다 높은 27.8%의 부산 금정구는 ‘우리동네 ESG센터 1호점’을 통해 초고령사회 지역 밀착형 공익 일자리 모델을 발굴했다”며 “센터 내 60여명 시니어 근로자는 센터 출범 4년째 약 30톤의 탄소중립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교사 출신 노인일자리 참여자는 환경 도슨트(해설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기술직에 종사했던 참여자는 장난감과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다.
정년퇴직 전까지 30여년 간 조선업계에서 일했던 이충남(67)씨는 이곳에서 장난감 수리를 담당하고 있다. ‘뼛속까지 엔지니어’라는 그는 “내가 좋아하고 특성에 맞는 일을 할 수 있어 재밌다”며 “일을 해 월급을 받으면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고 젊은 세대에게 짐이 되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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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금정구 ‘우리동네 ESG센터’에서 노인일자리 참여자들이 장난감을 분해해 새로운 제품으로 만드는 업사이클링 작업을 하고 있다.[보건복지부 제공] |
노인일자리는 신구 세대를 잇는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울산 울주군 소재 제련기업 고려아연은 민간형 노인일자리 중 ‘세대통합형 시니어인턴십’을 운영하고 있다. 재고용 시 정부가 1인당 연 최대 300만원의 인건비를 지원한다.
실제 이 사업장에서 지난해 25명이 정년퇴직하고, 그중 14명이 올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시니어 인턴십으로 재고용됐다. 정성우 고려아연 온산인사팀장은 “회사가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기 전에는 매년 3~4명, 많아도 7~8명을 재고용하는 데 그쳤다”며 “정년연장 논의를 지켜봐야겠지만, 노인일자리 확대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니어 인턴십 참여자들을 주로 공장 신·증설 업무에 투입된다. 30년 이상 쌓인 경험과 상황 대처 능력이 신·증설 현장에서 가장 필요하기 때문이다.
올해 정년을 맞고 재고용돼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 제련소 설비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는 김의식(61)씨는 “30년 이상 경험을 바탕으로 신증설 현장에서 일하며 회사에 필요한 의견을 내고, 후배 직원들에게 설비와 안전에 대해 교육하고 있다”며 “AI가 대세이긴 하지만 현장에서는 AI가 못하는 숙련도가 필요한 일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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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복지부의 시니어인턴십 세대통합형 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김의식씨는 정년 이후에도 회사 후배들에게 30년간 쌓은 현장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보건복지부 제공] |
울산 남구 소재 ‘스시은’은 초밥(스시)과 노인(실버=은)의 합성어이다. 어르신 20명이 폐업 청년 셰프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40대 셰프는 새 가게에서, 60세 이상의 노인일자리 참여자들은 새 직장에서 다시 도전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노인일자리 참여자들은 단순 서빙이나 청소에 머물지 않고 초밥을 만들고 횟감을 정리하며 주먹밥도 만든다. 노인일자리 참여자들이 ‘기술’을 전수받는 입장이지만,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세대 간 소통의 효과도 작지 않다.
한수림 울산남구시니어클럽 관장은 “남구청에서 3년 치 월급을 지원받아 셰프를 모셔 오면서 식당 내 어르신들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수영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원장은 “노인의 전문성과 경력, 지역 특성을 살린 사회서비스·민간형 일자리가 환경과 산업 현장으로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며 “115만명이라는 양적 확대가 이뤄졌다면 이제는 질적 성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