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9000개 네트워크 확보 포석
140여 OTC 확보 포트폴리오 확대
‘유통 주권’ 흡수 본격적 M&A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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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트리온 본사 전경. [셀트리온 제공] |
셀트리온이 프랑스의 114년 전통 헬스케어 기업 ‘지프레(Gifrer)’를 전격 인수하며 유럽 시장 공략의 패러다임을 전환한다. 단순히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제품을 공급하는 단계를 넘어, 현지의 뿌리 깊은 약국 영업망을 직접 장악해 급변하는 유럽 의료 정책의 ‘길목’을 지키겠다는 포석이다.
이번 인수는 통합 셀트리온 출범 이후 확보된 풍부한 현금 동원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의 ‘라스트 마일(최종 소비자 접점)’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대체조제’ 열풍 속 약국 영업망은 ‘생존 열쇠’=셀트리온 프랑스 법인은 최근 지프레의 지분 100%를 인수하고 이달 내 제반 업무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1912년 설립된 지프레는 프랑스 전역의 약국 9000여개와 800여개 병원에 견고한 공급망을 갖춘 로컬 강자다.
이번 인수의 배경에는 프랑스 정부의 ‘바이오시밀러 대체조제’ 확대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대체조제는 의사가 처방한 오리지널 의약품을 약사가 동일 성분의 바이오시밀러로 바꿔 조제할 수 있는 제도다.
과거 제약사의 성패가 의사를 설득하는 ‘처방전’에 달렸다면, 이제는 약국 접점에서 약사를 직접 상대하는 ‘영업망’이 점유율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됐다.
실제로 프랑스는 지난해 글로벌 블록버스터 제제 ‘휴미라(성분명 아달리무맙)’를 대체조제 가능 제품으로 추가했다. 올해에는 ‘프롤리아·엑스지바(성분명 데노수맙)’ 승인이 예상되고 있어, 셀트리온은 이 제품의 바이오시밀러인 ‘스토보클로·오센벨트’의 약국 영업에 지프레가 보유한 영업망을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셀트리온은 지프레의 9000개 접점을 즉시 활용해 자사 바이오시밀러의 침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계획이다. 이는 ‘기다리는 영업’에서 ‘찾아가는 점유율 확대’로의 체질 개선을 의미한다.
▶140여 종 제품군 확보…종합 헬스케어 기업 도약=이번 인수로 셀트리온은 지프레가 보유한 140여 종의 일반의약품(OTC)과 약국 의약품(DM) 제품군을 단숨에 확보했다. 특히 프랑스 시장 점유율 1위(42%)인 생리식염수를 비롯해 치아미백제, 영유아 제품 등 현지 선호도가 높은 품목들이 대거 포함됐다.
셀트리온은 지프레 제품군을 통해 향후 5년간 약 2500억원 이상의 추가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또한, 지프레의 영업망에 셀트리온그룹 계열사의 제네릭(화학의약품 복제약), OTC,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등 다양한 제품군을 프랑스에서 판매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바이오시밀러의 수익성에 OTC의 대중성을 더해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하겠다는 구상이다.
▶유럽 전역으로 뻗는 ‘유통 플랫폼’…제3자 판권 도입 추진=이번 인수의 가치는 프랑스 국경을 넘어선다. 셀트리온은 독일 등 유럽 주요 5개국(EU5)에 이미 구축된 직판 네트워크와 지프레의 제품군을 결합해 유럽 전역으로 판매망을 넓힐 계획이다.
실제 독일 법인이 진행 중인 약국 영업망에 지프레 제품이 더해질 경우 포트폴리오 확장을 통한 강력한 영업 경쟁력이 예상된다. 바이오시밀러 중심의 포트폴리오에 지프레의 로컬 브랜드를 얹어 ‘원스톱 헬스케어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계산이다.
또한 확보된 9000여개의 약국망을 단순한 판매처를 넘어 다양한 헬스케어 제품이 교류하는 ‘유통 거점(Platform)’으로 고도화할 방침이다. 대표적인 전략은 경쟁력 있는 제3자 제네릭이나 OTC 제품의 판권을 직접 확보해 공급하는 ‘인라이선싱(In-licensing)’ 사업이다.
셀트리온은 현지 수요는 높지만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틈새 제품을 발굴해 지프레의 강력한 영업망과 연계함으로써 실적 성장을 견인하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다수의 유력 후보군을 대상으로 막바지 판권 도입 협의를 진행 중이며, 조만간 구체적인 포트폴리오 확장 성과가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직판 2.0’ 시대…K-바이오, ‘유통 주권’에 사활=이번 인수를 셀트리온 ‘직판 2.0’ 시대의 개막으로 분석한다. 초기 직판 전략이 현지 인력을 직접 채용해 바닥을 닦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현지 기업을 인수해 ‘유통 주권’을 통째로 흡수하는 고도화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향후 프랑스를 넘어 독일, 동유럽 등 대체조제 도입 본격화되는 국가를 중심으로 추가적인 M&A를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국가별 의료 정책의 특성에 맞춰 직판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기업에 대한 M&A를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기술력 상향 평준화 시대에 승부처는 ‘누가 환자의 손에 약을 직접 쥐여줄 수 있는가’로 귀결된다. 셀트리온의 이번 프랑스 공략은 글로벌 빅파마들이 장악해 온 유럽 약국 영업 현장에 한국 기업이 주도권을 쥐겠다는 강력한 선전포고로 풀이된다. 최은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