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몰입·인스타그래머블 매력
전세계 확산된 K-컬처 정체성의 정점
경험 중시하는 MZ세대의 취향 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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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경복궁 소주방에서 열린 생과방 행사에서 시민들이 궁중병과와 약차를 체험하는 모습.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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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한복판에 있는 광화문은 익숙하면서도 묘하게 이질적이다. 차가운 고층 빌딩 숲 가운데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옛 궁궐의 풍경 속, 양복을 입고 분주하게 회사로 향하는 다수의 직장인 사이에 한복을 차려입고 궁궐을 만끽하는 관광객들이 섞여 있다. 건립 600년이 넘은 경복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동감 넘치는 힙한 장소인 듯 보인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궁궐은 학생들이 현장 학습으로 찾거나 어르신들이 산책하는 장소 정도로 인식되곤 했다. 하지만 2026년 현재 고궁은 전 세계 MZ(밀레니얼+Z)세대의 버킷 리스트이자, 한국의 정체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상징적 공간으로 변신했다.
4대 궁·종묘 관람객 역대 최다
광화문 인근에 있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4대 궁과 종묘를 찾는 관람객은 최근 몇 년 새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2011년 735만5658명, 2015년 900만7423명 수준이던 4대 궁 및 종묘 입장객은 2016~2019년만 해도 900만~1000만명대를 오갔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동이 제한되자 305만7096명까지 떨어졌고, 코로나19가 완화된 2022년에는 866만6654명으로 회복됐다.
팬데믹이 종식된 2023년에는 1174만1822명으로 팬데믹 전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며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당시에는 궁궐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관광객 증가가 ‘펜트업 효과’(외부 요인으로 인해 억제된 수요가 그 요인이 해소되면서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궁궐의 인기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다음 해인 2024년에도 궁궐 및 종묘에 1312만1020명이 찾으며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2025년에는 1503만1603명이 방문하며 처음으로 1500만명을 돌파했다.
올해 들어서도 궁궐의 인기는 지속되고 있다. 올 1~3월 방문객은 297만850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67만1803명)보다 30만6703명(11.5%)이나 늘었다.
4대 궁 중에서도 단연 인기가 많은 궁궐은 ‘광화문’을 앞에 둔 경복궁이다. 2025년 경복궁에는 688만6650명이 다녀가 4대 궁 및 종묘 전체 방문객 중 무려 45.8%가 이곳을 찾았다. 경복궁에서 가까운 덕수궁의 관람객이 같은 기간 356만1882명으로 두 번째로 많았고, 이어 창덕궁(221만9247명), 창경궁(160만2202명) 등의 순이었다.
최근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으로 이슈가 된 종묘에는 전년도인 2024년(39만9672명)의 두 배에 가까운 76만1622명이 몰렸다.
“한국 전통문화 매력적”…외국인, ‘궁중문화축전’ 피켓팅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외국인 관람객의 증가다. 4대 궁 및 종묘의 외국인 입장객 수는 2023년 198만5337명에서 2024년 314만5437명, 2025년 422만6371명 등 매년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해당 기간 외국인이 전체 관람객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각각 16.9%, 24.0% 28.1% 등으로 확대됐다. 조선 시대의 궁궐이 비단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널리 알려지며 한국에 오면 반드시 가봐야 할 힙 플레이스가 된 것이다.
한국 전통문화의 인기는 매년 개최되는 궁궐 축제에 대한 열기로 이어지며 ‘피켓팅’(경쟁이 치열한 티켓팅)까지 벌어지고 있다. 서울 5대 궁궐(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경희궁)과 종묘에서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의 국가유산 축제인 ‘궁중문화축전’ 이야기다.
실제로 국가유산청 산하 국가유산진흥원에 따르면, ‘2026 봄 궁중문화축전’의 사전 예약 프로그램은 8일 오픈되자마자 조기 매진됐다. 행사 시작 전부터 뜨거운 국민적 관심이 증명됐다. 예매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예매 일정과 방법, 성공 팁 등이 공유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유명 가수의 콘서트 티켓팅 못지않은 열기였다.
지난해 봄과 가을 궁중문화축전 기간 중 궁궐 방문객 수는 각각 69만8558명, 69만6321명에 달했다. 올해는 과연 더 많은 인원이 방문할지 기대가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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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4일 서울 경복궁 흥례문 광장에서 열린 ‘2026 궁중문화축전’ 개막제. [연합] |
K-컬처의 ‘정체성’ 담긴 궁궐
볼거리가 넘쳐나는 최첨단 시대에 역설적으로 조선 시대 궁궐이 전성기를 맞은 이유는 무엇일까.
‘정체성(Identity)’, ‘몰입(Immersive)’,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 등 세 가지 ‘I’가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궁궐은 전 세계로 확산된 K-컬처의 ‘정체성(Identity)’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K-팝과 K-드라마를 계기로 시작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은 한국이라는 나라와 그 역사로 확장되고 있다. 외국인들 사이에 현대의 한국 문화에서 나아가 뿌리가 되는 전통문화까지도 궁금의 대상이 된 것이다.
지난달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광화문 광장에서 컴백 공연을 하면서 한국을 찾은 ‘아미(ARMY)’들은 공연을 보는 데만 그치지 않고 경복궁을 방문하기도 했다.
올해 궁중문화축전에서 특히 ‘효명세자와 달의 춤’, ‘아침 궁을 깨우다’, ‘황제의 식탁’ 등 외국인 참여 프로그램들은 일찌감치 마감됐다. 한국 문화를 보다 깊이 있게 알고 싶은 외국인의 수요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궁에서 정기적으로 재현하는 수문장 교대식이나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에서 열리는 종묘제례악 공연 등도 전통문화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 외국인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왕이 된 기분…‘몰입’형 프로그램
다채로운 궁궐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점 또한 관람객들을 궁궐로 끌어모으는 요인 중 하나다. 과거의 궁궐 관광이 단순히 전각을 구경하는 형식이었다면, 지금은 철저히 ‘몰입(Immersive)’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궁궐은 그 문을 넘어서는 순간, K-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조선 시대로 타임 슬립(시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분주한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쉬어가는 힐링의 순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전문가와 함께 밤의 후원을 걷는 ‘창덕궁 달빛기행’은 단지 산책을 넘어 역사 속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고종 황제가 사랑했던 가배차(커피)와 디저트를 맛보고, 대한제국 황실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덕수궁 ‘밤의 석조전’, 임금이 즐겼던 궁중 병과와 약차를 직접 체험하는 ‘경복궁 생과방’ 등 오감을 자극하는 프로그램들도 관람객에게 왕이 된 기분을 선사한다.
이러한 몰입형 프로그램은 경험을 중시하는 MZ세대의 선호와 맞아떨어져 젊은 관람객들에게 궁궐을 더욱 매력적인 장소로 만들고 있다.
실제로 국가유산진흥원에 따르면 ‘궁중문화축전’ 프로그램 참여자 수는 2022년 24만8614명에서 2023년 26만2547명, 2024년 67만9972명 등으로 증가했으며 2025년에는 83만7967명에 달했다.
관람객 수만 늘어난 게 아니라 만족도도 높아졌다. 관람객 만족도는 2022년 91.22점에서 2023년 91.29점, 2024년 94.99점, 2025년 95.20점 등으로 매년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복 입고 ‘인생 샷’…‘인스타그래머블’한 궁궐
한복을 입고 광화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외국인들의 모습은 궁궐의 또 다른 인기 요인을 가늠케 한다. 바로 개인 SNS 에 올려도 좋을 법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특성, 즉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이다.
우리나라 궁궐은 서양과는 전혀 다른 양식으로 조성돼 외국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유려한 곡선과 단청이 있는 전각은 주변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동양의 미를 극대화한다.
여기에 한복은 ‘화룡점정’이다. 한복의 화려한 자태는 입는 사람으로 하여금 왕과 왕비가 된 기분과 함께 ‘인생 샷’을 남기게 해준다. 더욱이 외국에서는 관광객이 궁전에 가더라도 전통 의상을 입고 들어가지는 않지만, 한국에서는 한복을 입고 궁궐에 들어갈 수 있어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 때문에 한복을 입고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찍은 사진은 ‘한국 여행의 완성’으로 통할 정도다.
관람객들은 이렇게 남긴 사진과 영상을 ‘#K-Heritage’, ‘#Gyeongbokgung’ 같은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게시한다. 외국인들에게 한복은 전통 의상을 넘어 자신을 표현하는 패션 아이템이 되고, 궁궐은 SNS에 올릴 만한 콘텐츠를 찍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인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함께 다시 궁궐 산책을 나서보는 건 어떨까.
김현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