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제일 못생긴 ‘남자’래”…사랑받고 싶었던 여인, 27세 요절한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보컬의 이야기 [음덕후:뮤지션으로 읽다]

제니스 조플린(Janis Joplin), 1967년 공식 앨범 데뷔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Monterey Pop Festival) 통해 관중 경악케한 무대 선보여
“이렇게 노래한 뮤지션은 없었다”…전무후무한 순간 음악사에 남기고 27살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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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Photo owned by Sunset Boulevard]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찢어지는 듯 갈라지는 목소리. 비명에 가까운 발성.

제니스 조플린(Janis Joplin)의 목소리는 대중음악사에서 ‘누구도 모방할 수 없었던 목소리’로 남아 있다. 음역이나 성량 따위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가 노래를 시작하면 주변의 공기가 균열을 일으키 듯 잠식됐고 그녀 내부의 고통과 애정과 결핍이 뒤틀린 듯 터져나왔다. 음은 거칠게 갈라졌고 호흡은 불안정했으며 목소리는 선율을 벗어난 채 몸 전체에서 터져 나오는 듯 발화됐다.

그럼에도 완벽했다. 기술을 감히 논하기조차 어려운 그의 보컬은 통상적으로 알려진 정석(定石)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음악이 도달해야 할 지향의 핵심을 한 치도 비껴가지 않았다. 타오르기 위해 세상에 태어나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한 채 이글거리며 폭발하는 불꽃처럼, 흡사 매 순간 자신을 분신(焚身)하며 무너지는 듯한 그의 노래는, 음악이 먼저 있고 그 음악이 노래로 표현되는 것이 아닌, 그의 목소리가 선행하고 음악은 그저 그로 인해 파생된 어떤 것에 가까웠다.

조플린의 음악은 인간이 자신을 억누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발산할 때 그 혼이 얼마나 찬란해질 수 있는지, 동시에 그 찬란함이 얼마나 위험한 불꽃이 될 수 있는지를 동시에 목격케 했다.

“Please don‘t you do it to me, babe, no
Either take the love I offered, or let me be
What’s a poor girl to do with your love
When her heart just dangling?”
(제발 나를 버리지마, 내 사랑아
나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 거면 날 그냥 망치지 말아줘
이 불쌍한 소녀는 너의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지?
소녀의 마음은 그저 허공에 매달려 있는데)
– 제니스 조플린, ‘무브 오버’(Move Over) 中 -


[게티이미지/Photo by Hulton-Deutsch Collection/CORBIS]


‘예쁘지 않은 여자’, 블루스(blues)를 만나다
1943년 미국 텍사스주 포트아서에서 태어난 제니스 조플린은 당시 미국 남부 특유의 보수적 분위기와 공동체적 규범이 강하던 환경에서 자랐다. 다소 독특했던 그의 성격과 예쁘장하지 않았던 외모는 또래 집단의 기준과 어긋났고 성장 과정에서 조롱과 배척을 반복적으로 겪었다.

조플린의 영혼에 큰 상처를 새긴 사건 중 하나는 텍사스대 오스틴 재학 시절의 일화다. 조플린은 대학 시절 ‘학교에서 가장 못생긴 남자’(Ugliest Man on Campus)라는 잔혹한 조롱의 대상이 됐다. 이는 단순한 장난과 따돌림이 아닌 여성에게 요구되던 아름다움, 순응성, 단정함의 기준에서 벗어난, 한 인간을 공동체가 어떻게 희화화하고 배제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10대 시절부터 블루스와 포크에 깊이 빠져들었던 조플린은 베시 스미스(Bessis Smith), 마 레이니(Ma Rainey), 오데타(Odetta) 등 흑인 블루스·포크 가수들의 음악을 접하며 자신이 느끼던 이질감과 상처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발견했다. 그에게 블루스는 단순한 음악적 취향을 넘어선,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 안에 자신을 맞추지 않아도 되는, 상처와 결핍을 그대로 소리 안에 들여보낼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우연한 음색의 결과가 아닌 오랜 배척과 결핍, 그리고 그것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음악적 언어가 만난 결과였다. 블루스는 그에게 고통을 ‘아름답게’ 정리해 다시 사회 속에 들어가는 통로가 아닌, 내면의 고통이 그대로 발화될 수 있는 매개체였다. 조플린이 훗날 무대 위에서 보여준 폭발적인 가창은 상처의 재현이 아닌 상처를 목소리의 재료로 전환한 결과에 가까웠다.

“Somethin‘ came along, grabbed a hold of me
And it felt just like a ball and chain
Why does every single little tiny thing I hold on goes wrong?
Honey, I just wanted to hold you, I said, for so long”
(돌연 무언가 다가와 나를 붙잡았어
그리고 그건 마지 족쇄와 같은 느낌이었지
내가 붙잡는 모든 사소한 것들은 왜 전부 잘못되는 걸까
내 사랑아, 나는 그냥 오랫동안 널 안고 싶었을 뿐인데)
– 제니스 조플린, ‘볼 앤 체인’(Ball and Chain) 中 -


[게티이미지/Photo by Don Aters]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 자유를 만나다
제니스 조플린을 단지 규범에 맞서고 싶어했던 사람으로 보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는 강하게 사랑받고 싶어 했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싶어 했으며, 자신 안의 감정과 욕망을 더 이상 숨기고 싶어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이 지점에서 그의 목소리에 담긴 폭발성은 단순 쾌락과 허영의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다. 조플린에게 있어 욕망은 ‘결핍’의 반대편에 놓인 힘이었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기억,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 감각, 그것은 단순한 공격성이 아닌, 오랫동안 수용되지 못했던 존재가 끝내 누군가에게 닿고자하는 인간의 본능에 가까웠다. 그리고 블루스는 그가 자신을 꾸미거나 교정하지 않은 채 세상 앞에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형태였다.

조플린은 노래할 때의 감각을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의 쾌감”에 비유하며 노래를 통해 “섹스보다 더 강렬한” 감각을 경험한다고 말한 바 있다. 무대 위에서 그는 관객을 향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던졌고, 그의 목소리는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인 동시에 자기 존재를 타인에게 통째로 도달시키려는 시도였다.

그러므로 조플린의 자유는 상처가 사라진 뒤 찾아온 안정이 아닌, 상처와 결핍을 더이상 숨기지 않아도 되는 상태, 혹은 숨기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당시 여성 보컬에게 요구되던 매끈한 음색과 단정한 표정, 절제된 감정 처리의 규율의 반대편에 있는, 삐걱거리며 갈라지는 음색, 울부짖음에 가까운 고음, 통제 밖으로 치닫는 듯한 몸짓을 무대 위에서 펼쳤을 때, 그는 비로소 자신을 괴롭혔던 아름다움의 기준에 순응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유를 획득한 셈이다.

역사상 가장 강렬하고 위대한 공연으로 기록된 1967년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Monterey Pop Festival)에서 그가 부른 ‘볼 앤 체인’(Ball and Chain)에서 그는 목소리를 통해 말 그대로 ‘전무후무한 퍼포먼스’를 펼친다. 낮게 가라앉은 음색으로 고통을 눌러두고, 침묵과 호흡의 틈을 통해 감정의 압력을 천천히 끌어올리다 어느 순간 목소리를 열어젖힐 때 축적된 결핍이 폭발하며 비명과 같은 포효를 내뿜는다. 인간의 갇혀 있던 자아가 더 이상 닫힌 형태로 유지될 수 없을 때 발생하는 필연과도 같은, 무서울 정도의 가창력은 수십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공연으로 꼽힌다.

‘피스 오브 마이 하트’(Piece of My Heart)에서도 그의 목소리는 단순한 상처의 표현을 넘어선다. 애원하고 무너지고 매달리며, 역설적으로 곡을 장악해버리는 목소리. 그 소리 안에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사랑에 훼손된 자존심, 내어줬음에도 거절당한 분노가 동시에 압축돼 있다.

이 점에서 조플린의 보컬은 뒤틀리고 뒤엉켜있는 감정을 음악으로 조직하는 행위에 가깝다. 일반적인 의미의 ‘안정적인 보컬’로는 듣기가 불가능하지만, 음악적 지향은 경이로울 만큼 정확하다. 그의 목소리는 곡의 형식을 벗어나지만, 동시에 곡이 도달해야 할 정서적 핵심을 가장 정확하고 정밀하게 겨냥한다.

따라서 조플린이 가창을 통해 찾은 자유는 추상적인 가치가 아니다. 상처가 숨겨지지 않고, 결핍이 미화되지 않으며, 욕망이 얌전한 감정으로 정돈되지 않는 순간. 조플린은 자신에게 주어진 결핍을 수치스러움의 영역에 남겨두지 않고, 목소리라는 원초적인 형태로 전환했다. 그리고 바로 그 전환이 그의 노래를 압도적으로 만든다. 조플린은, 고통이 소리가 되는 과정을 누구보다 강렬하고 정확하게 음악으로 만들 수 있는 뮤지션이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하나의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무대 위에서 그를 찬란하게 만들었던 내면의 분출은, 무대 밖 그의 삶에서도 그를 지켜줄 수 있었는가. 상처와 결핍을 숨기지 않는 목소리는 그를 ‘감히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뮤지션’으로 만들었지만 그 불같은 뜨거움을 감당할 구조가 조플린 내부에서 충분했는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자유는 인간을 빛나게 만든다. 그러나 그 자유를 지탱할 형식이 충분치 않을 때, 그 빛은 곧 자신마저 태워버리는 불길이 된다. 조플린의 경우, 이를 감당하지 못한 후자에 가까웠다.

Freedom is just another word for nothing left to lose,
Nothing don‘t mean nothing honey if it ain’t free, now now.
And feeling good was easy, Lord, when he sang the blues,
You know feeling good was Good enough for me and my Bobby McGee.
(자유는 ‘잃을 것이 없다’의 다른 말이지
자유롭지 않다면 아무 것도 의미가 없어
그가 블루스를 부를 때, 내 기분은 그저 좋았어
그리고 기분이 좋다는 것, 그것만으로 나와 나의 바비에게는 충분했지)
– 제니스 조플린, ‘나와 바비 맥기’(Me and Bobby McGee)


[게티이미지/Photo by John Byrne Cooke Estate]


‘폭발하는 자유’, 끝내 파괴되다
1970년 10월 4일, 제니스 조플린은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한 호텔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헤로인 과다복용. 그 날은 예정된 녹음 세션에 참여하기로 한 날이었다.

그의 죽음은 갑작스러운 사고였지만 느닷없는 결말은 아니었다. 조플린의 삶에는 이미 술과 약물이 반복적으로 개입돼 있었다. 그는 오랜 시간 차오르는 수치심과 불안을 술로 달래왔고, 특정 시기에는 약물 의존을 겪었으며, 스타덤에 오른 뒤에도 헤로인과 알코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러 차례 멈추려 했지만, 무대 위의 폭발과 무대 밖의 불안정한 삶은 끝내 분리되지 않았다.

조플린을 둘러싼 방탕함의 이미지는 당대 록 신(scene)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신화와도 맞닿아 있었다. 술, 약물, 성적 자유, 거친 관계. 1960년대 말 반문화의 언어 안에서 그것들은 억압된 삶을 거부하는 방식처럼 여겨졌고, 조플린은 그 자유를 가장 격렬하게 체현한 뮤지션으로 소비됐다.

그렇다면 조플린의 자유는 어디까지 해방이었고, 어디서부터 자기소모였을까. 술과 약물, 방탕한 관계와 욕망은 그에게 때로 상처와 결핍을 달래기 위한 방식이었고, 무대 위에서 관객과 강렬하게 접속한 뒤 찾아오는 깊은 허무와 공백을 견디기 위한 임시 장치였다. 조플린의 탕아적인 행실은 결핍을 감당할 언어가 음악 이외에 부재했던, 한 인간이 자신의 자유를 다루는 데 실패한 흔적에 가까웠다.

조플린의 자유는 분명 그를 찬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지탱할 구조는 그녀 안에서 충분하지 않았다. 자신을 억누르는 외부의 소음은 그에게 전무후무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했지만, 그 에너지가 삶 전체를 보호하는 형식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My unhappy, oh, little girl, little girl blue, yeah
Ooh-ooh, sit there, oh, count those raindrops
Oh, feel ‘em falling down, ooh, honey all around you
I know you’re unhappy
Baby, I know jus how you feel”
(나의 불행한 작은 아이야
그래, 거기 앉아 빗방울을 세어 봐
빗방울 떨어지는 걸 느껴봐
나의 슬픈 소녀, 네 마음을 난 알고 있단다)
– 제니스 조플린, ‘리틀 걸 블루’(Little Girl Blue) 中 -


조플린의 음악은 그에게 분명한 해방과 자유의 장소였다. 노래하는 순간 속 그는 더 이상 ‘예쁘지 않은 여자’도, 조롱받는 이방인도,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교정해야 하는 존재도 아니었다.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동안 그는 무엇보다, 가장 ‘자기 자신’에 가까웠다. 그러나 음악은 그의 상처를 표현하게 해준 언어였을 뿐, 그 상처를 돌보고 유지할 수 있는 체계는 되지 못했다.

자유는 흔히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와 ‘무엇을 향한 자유’로 나뉜다. 전자가 외부의 규율과 억압에서 벗어나는 일이라면, 후자는 그 벗어남 이후 자신을 어떻게 구성하고 지속시킬 것인가의 문제다. 조플린은 전자의 자유를 누구보다 격렬하게 획득했다. 그러나 후자의 자유는 가질 수 없었다.

그의 음악은, 아마도 무대 위에서는 그에게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의 자유로운 것이었을 테다. 그러나 삶은 무대가 끝난 뒤에도 이어진다. 환호가 멎고, 조명이 꺼진 뒤에도 몸은 남고, 결핍은 다시 돌아온다. 음악은 그가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했지만 언제나 그를 붙잡아 줄 수는 없었다.

더 근본적인 아이러니는 여기에 있다. 그는 무대 위에서 가장 자유로웠지만, 어느 순간 바로 그 자유로운 모습으로 계속 존재해야 하는, 혹은 존재할 수 밖에 없는 딜레마에 갇혔다. 더 거칠게, 더 솔직하게, 더 뜨겁게, 더 완전히 자신을 내던지는 사람으로 남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었다. 한때 억압에서 벗어나게 해준 표현 방식이 어느 순간 그 자신의 내부에서 요구되는 또 다른 역할이 된 셈이다. 조플린에게 노래는 자신을 해방시킨 언어였지만, 동시에 자신을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소진시켜야만 유지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는 자기 자신으로 노래했지만, 바로 그 ‘자기 자신’이 무대 위에서 반복적으로 요구되는 순간, 자유는 다시 또 하나의 함정이 된다.

그는 자유를 얻었지만, 그 자유 안에서 안락해질 수 없었다.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숨기지 않았던 여인은, 어느 순간 극단적인 방식으로만 사랑받는 사람이 됐다. 그 간극이 조플린의 삶을 더욱 잔혹하게 만든다.

[게티이미지/Photo Owned by Getty Images]


제니스 조플린의 목소리는 ‘위대한 보컬’의 기록이자 그것만으로 말끔히 설명되지 않는 서사에 놓여 있다. 한 인간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발산할 때 도달할 수 있는 불꽃같이 뜨거운 순간이자, 동시에 그 불꽃이 자신을 보호할 구조를 갖지 못했을 때 얼마나 빠르게 파괴로 기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에.

자유는 인간을 구원할 수 있지만, 때로는 그 자유로 인해 몸을 눕게 할 은신처를 소멸시키기도 한다. 억눌리지 않은 자아는 해방이지만, 해방이 언제나 안전하다는 보증은 없다.

상처와 결핍, 사랑에의 갈망, 무너질 듯한 열정을 담았기에 세상의 어떤 것보다 생생한 목소리.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의 목소리는, 해방의 황홀함과 파괴의 그림자를 동시에 품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 자유의 잔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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