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인 듯 ‘흑백’ 아닌 새로운 맛…새 예능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

흑백 이후 출사표 던진 새 요리 예능
‘맛의 전쟁’에서 ‘장사 전쟁’으로 변주
칼질보다 상권 분석·가격 전략 초점

 

tvN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 [tvN 유튜브 영상 갈무리]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넷플릭스 ‘흑백 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의 다음 시즌을 기다리는 동안, ‘흑백’ 같은, 하지만 ‘흑백’과는 완전히 다른 맛을 뿜어내는 예능이 시청자를 찾아갔다. 얼핏 보면 요리 서바이벌 같고, 출연자들의 불꽃 튀는 경쟁도 닮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전혀 다른 게임이 펼쳐진다. 지난 21일 첫 공개된 tvN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이하 ‘스레파’)다.

‘스레파’는 주방을 벗어나 거리로 소환된 20명의 요식업자들이 오직 손님의 선택으로 생존과 탈락이 결정되는 장사 서바이벌이다. 참가자들은 메뉴를 만들고, 손님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등 식당을 운영하며 돈을 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진짜 주인공은 요리가 아니다. ‘요리’란 단어가 없어도 프로그램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무엇이 테이블 위에 올라오느냐가 아니라, 손님이 무엇을 원하고 사 먹느냐의 문제, 즉 ‘장사’다.

그간 국내 요리 서바이벌의 대부분은 맛을 중심으로 움직여왔다. 어떤 재료를, 어떻게 요리해서, 어떤 맛을 내는지, 그리고 그것을 맛본 심사위원이 어떻게 평가를 내리는 지가 서바이벌의 필수 요소였다. 국내 요리 서바이벌의 시초 격인 ‘마스터 셰프 코리아’와 ‘한식 대첩’도, 요리 서바이벌을 평정한 ‘흑백’까지도 심사위원 백종원과 안성재의 평에 성패가 달린 맛의 싸움이었다.

tvN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 [tvN 제공]

반면 ‘스레파’는 다른 차원의 질문으로 문을 열며 허를 찌른다.

“대한민국에 요리 잘하는 사람은 진짜 많겠지만, 현실에서 진짜 나보다 장사 잘하는 사람이 누가 있지?”

이렇듯 ‘장사는 맛이 다가 아니다’라는 것이 프로그램의 출발점이다. ‘흑백’이 요리 예능의 진입 장벽을 한껏 올려버린 상황에서, 원조 요리 서바이벌을 탄생시킨 CJ ENM은 기존의 요리 예능을 비틀기보다 아예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을 택했다.

출연진도 요리 서바이벌에서 익숙히 봐온 대진과는 어딘가 다르다. ‘스레파’에는 이연복, 김희은, 정호영, 조서형, 김미령 등 요리 예능으로 얼굴을 알린 셰프테이너들부터 유방녕, 에드워드 권, 임기학 등 ‘대가’, ‘원조’, ‘1세대’란 수식에 빛나는 셰프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업계에서 이미 ‘톱 티어(tier)’로 평가받는 장사 고수들의 출전이다.

부산 광안리에만 10여개의 ‘핫플’을 운영하는 곽동훈, ‘용리단길 백종원’이라 불리는 신흥 장사 천재 김훈, 연 매출 수백억 원에 달하는 외식 브랜드 ‘청기와타운’의 양지삼 대표, 그리고 한때 이태원 상권을 주름잡았던 방송인 홍석천까지. 유명 셰프들 사이에서도 음식으로 돈을 버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라는 이들의 자신감은 등장부터 남달랐다.

프로그램은 첫 미션부터 이 서바이벌이 가고자 하는 길을 명확히 보여준다. 세종시 정부청사 공무원들을 타깃으로 ‘100만원 매출’을 먼저 올려야 하는 속도전이다. 주어진 재료비는 단 30만원. 참가자는 각자 매장의 콘셉트와 메뉴, 가격 등을 모두 정해 실전에 나서야 한다.

tvN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 [tvN 제공]

보통 요리 서바이벌이라면 누가 어떤 음식을 만드는지에 집중할 법하지만, ‘스레파’는 전혀 다른 장면을 비춘다. 참가자들은 주방보다 먼저 상권을 분석한다. 거대한 공터에 원형으로 배치된 자리 중 어디에 입점할 것인지부터 전략 싸움이 시작된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지나는 길목은 어디인지, 경쟁자는 누구인지, 고객의 동선은 어떻게 흐르는지 계산기를 두드리듯 따져본다.

그리고 그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다.

잠실과 광화문, 여의도 등 오피스 상권 경험이 풍부한 김훈은 반복 구매가 일어나는 상권을 철저히 분석해 1만3000원짜리 안심 스테이크 덮밥을 내놨다. 평소 먹기 힘든 안심 스테이크를 직장인들이 충분히 지갑을 열 만한 가격에 내놓음으로써, 빠르게 매출을 올리겠다는 계산이다.

곽동훈은 정반대 전략을 선택했다. 사람들이 흔히 접하기 어려운 메뉴를 팔아야 한다는 판단 아래 칠리치즈스틱과 치미창가를 전면에 내세웠다. ‘없는 것을 만들어야 선택받는다’는 경험에서 우러난 전략이었다. 김미령은 회는 비싸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데 집중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횟감을 활용해 회국수 세트를 구성했고, 부담 없는 가격으로 접근성을 높였다.

tvN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 [tvN 제공]

 

tvN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 [tvN 제공]

가장 눈길을 끈 건 조서형이었다. 참가자들 사이에서 가장 비싼 축에 속하는 2만8000원짜리 닭 요리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얼핏 무모해 보이는 선택이었지만 이유가 있었다. 점심시간에 함께 식사하는 직장인들이 나눠 먹을 수 있는 ‘쉐어 메뉴’를 공략한 것이다.

이처럼 레시피보다 상권을, 불맛보다 회전율을, 플레이팅보다 객단가를 이야기하는 출연자들 앞에서 시청자는 자연스레 점심시간 메뉴를 고민하는 직장인이 된다. 사실 평생 한 번 맛볼 수 있을까 말까 한 미슐랭 셰프의 요리는 전문가의 영역일지 모른다. 하지만 무엇을 먹을지, 얼마를 지불할지,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를 결정하는 일만큼은 모두가 전문가인 일상의 영역이다.

바로 이 지점이 ‘스레파’가 선사하는 가장 큰 차별점이다. ‘흑백’이 심사위원의 입을 통해 맛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했다면, ‘스레파’는 시청자를 상권 한가운데로 끌어들인다. 어느 가게에 줄을 설지, 어떤 메뉴를 고를지, 저 가격이면 사 먹을지 말지를 끊임없이 상상하게 만든다. 요리 서바이벌을 보면서 어느새 소비자 행동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1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누가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지가 아니라 누가 소비자의 심리를 더 정확하게 읽어내느냐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tvN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 [tvN 유튜브 영상 갈무리]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서는 셰프의 칼질보다 가격표가 더 중요하고, 플레이팅보다 메뉴판이 더 흥미롭다. 누군가는 최고의 요리를 만들고도 손님을 모으지 못하고, 누군가는 평범한 메뉴로 줄을 세운다. 맛은 여전히 중요한 요소지만, 그것만으로는 승부를 결정할 수 없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현실의 외식업과 가장 닮아 있는 모습일지 모른다.

이제 첫발을 뗀 프로그램이기에 성공 여부를 섣불리 단정하기는 이르다. 분명한 것은 ‘스레파’가 요리 서바이벌의 익숙한 문법에 ‘장사’라는 새로운 변수를 더하며 전에 없던 시청 경험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흑백’ 이후 모두가 더 자극적인 요리 대결을 예상할 때, 이 프로그램은 뜻밖에도 주방 밖에서 답을 찾았다.

이제 남은 건 그 답을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느냐다. 상권과 소비 심리, 가격 전략과 메뉴 기획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서바이벌과 결합할지, 또 어떤 새로운 장사의 세계를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스레파’가 요리 예능의 다음 페이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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