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 판이 바뀐다…‘포스트 삼성’ 줄예고에 투자위축 경고등 [삼성전자 파업 ‘운명의 날’]

삼성이 쏘아올린 ‘성과급 논쟁’ 재계 확산
영업이익 일부 떼내 임직원 성과급으로 배분
주요 기업들 ‘성과급 패러다임 대전환’ 직면
미래 투자·주주 배당 뒷전…주주소송 우려
주주단체 “주총 안 거친 영업익 연동 성과급 위법”


삼성전자 노사의 성과급 사태를 계기로 재계는 회사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임직원 성과급으로 나눠 가지려는 노동계의 시도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 수원시 삼성전자 본사 모습. 수원=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김현일·이정완·박지영 기자] 삼성전자가 쏘아올린 ‘영업이익 N% 성과급’ 논쟁은 이제 국내 재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단순히 삼성전자만의 내부 문제로 끝나지 않고 모든 기업의 공통 논쟁거리로 급격히 번지는 상황이다.

재계는 이번 삼성전자 노사의 합의안을 일종의 ‘표준’으로 삼아 회사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임직원 성과급으로 나눠 가지려는 노동계의 시도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영업이익 N% 성과급’이 기업 경영을 쥐고 흔드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을 것이란 전망이다.

기업의 대규모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의 재원인 영업이익의 일부를 임직원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것을 두고 반발도 크다. 미래를 위해 써야 할 재원이 당장의 임직원 복지로 흘러 들어가면서 자칫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주주단체들은 회사 이사회가 노조의 요구를 수용해 영업이익의 일부를 성과급으로 떼어줄 경우 상법에 따라 이사 충실의무 위반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계, 삼성 사태 계기 ‘성과급 패러다임 대전환’ 직면


삼성전자 사측 대표교섭위원인 여명구 DS피플팀장이 20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사 3차 사후조정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사후조정 회의에서도 합의가 불발되면 노조는 내일부터 삼성전자 창사이래 첫 총파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세종=윤창빈 기자


20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사태를 계기로 다른 기업들에서도 성과급 지급 기준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영업이익의 30%를, 카카오는 영업이익 10%를 성과급으로 요구하고 있으며 현대차 노조는 순이익의 30%를 성과급 재원으로 제시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는 영업이익 20%와 별도 격려금 지급을 주장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이번 사례는 성과급 지급 방식을 놓고 고민하는 기업들에게는 ‘이정표’나 다름 없다”며 “임직원 복지부터 통상임금에 이르기까지 산업계의 주요 현안에 큰 파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원래 초과이익성과급(OPI)의 산정 기준으로 경제적 부가가치(EVA)를 삼아왔다. EVA는 세후 영업이익에서 자본비용을 뺀 금액이다.

2000년 삼성그룹이 EVA를 성과급의 재원으로 삼으면서 국내 대기업 전반으로 확산시켰다. 1990년대 초반부터 임직원 동기부여를 위한 이익공유제를 고민하던 삼성그룹은 미국 휴렛팩커드(HP)가 세전이익의 12%를 직원에게 지급하던 제도를 따라 EVA의 일정 비율을 직원에게 나눠주기로 했다.

그러나 노동계에선 EVA 산출을 위한 계산식과 기준 지표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아 ‘깜깜이 성과급’이라며 계산식 공개와 제도 개선을 요구해왔다. 영업이익이 아무리 많이 발생해도 자본비용을 높게 책정하면 EVA는 줄어드는 구조여서 직원들의 불만이 높았다.

2021년 SK하이닉스 사태를 계기로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성과급을 산정하자는 목소리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당시 EVA 기준에 불만을 가진 저연차 직원이 모든 임직원에게 메시지를 보내면서 갈등이 확산됐다. 당시 SK하이닉스 직원들은 삼성전자보다 못 미치는 보상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다.

미래 투자·주주 배당보다 성과급 우선…주주소송 우려


최승호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20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사 3차 사후조정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사후조정 회의에서도 합의가 불발되면 노조는 내일부터 삼성전자 창사이래 첫 총파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세종=윤창빈 기자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하면 EVA 제도에 비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성과급 지급 원칙이 투명하게 공개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영업이익을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면 순손실이 발생해도 성과급을 지급해야 하는 모순이 생길 수 있어 우려를 낳았다.

영업이익에는 영업외비용이 반영돼 있지 않은 만큼 이자비용이나 법인세를 내기 전에 먼저 성과급 몫부터 따로 떼어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또한 EVA는 세후 영업이익에서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 등의 자본비용을 제외해 산출하는 반면, 영업이익 기준 방식은 기업의 대규모 설비투자에 대한 고려가 없다. 이로 인해 재계에서는 미래 투자를 위한 재원 마련보다 임직원 성과급 지급을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무권 국민대 경영대 교수는 지난 15일 주주행동연구원 세미나에서 “대규모 설비투자와 연구개발이 필요한 기업은 영업이익을 기반으로 투자 재원을 마련하고 남는 자금을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에 활용한다”며 “영업이익 상당 부분을 성과급으로 이전하면 미래 투자와 주주환원 재원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성과급 재원 기준이 EVA에서 영업이익으로 바뀌면 노조와 주주 간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주주 배당은 순이익을 기반으로 이뤄지는데 영업이익을 성과급 기준으로 삼으면 직원이 주주보다 먼저 성과를 가져가는 이른바 ‘선배당’ 문제가 발생한다.

지난해 7월부터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주주들은 기업 이사회가 영업이익의 N%를 성과급으로 달라는 노조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충실의무 위반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법상 영업이익은 원칙적으로 주주의 몫이며 이익 처분은 주주총회 고유 권한”이라며 “이익 분배 공식을 강제하는 것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한편, 주주단체인 대한민국주주운동본부는 20일 입장문을 통해 “만약 (삼성전자) 노사의 최종협상이 영업이익 규모에 연동하는 성과급을 내용으로 한다면, 회사의 이익 분배에 관한 사항으로 상법상 주주총회 결의사항”이라며 “주총 결의를 거치지 않고 노사가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에 대해 협상하면, 상법 및 노동조합법이 정하는 최종적인 노사 합의로 성립할 수 없어 법률상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위법 협약에 대해 가처분 신청, 손해배상 청구, 주주대표 소송 등 법적절차를 개시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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