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발매된 ‘슬리퍼리 웬 웻’(Slippery When Wet), 2800만장 팔리며 대히트
세계적 인기 밴드로 도약…대중성의 힘을 정면으로 밀어붙인 밴드, 국내에서도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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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Photo by Ebet Roberts] |
단 한 번의 샤우팅. 10만 관객은 1초 안에 다음 구절을 머릿 속에 자동으로 떠올리고 홀린 듯 합창한다.
“Darling, you give love a bad name”(나의 연인이여, 그대는 내 사랑을 더럽히네)
게임 끝. 무대와 객석은 이미 하나다.
이것이 본 조비(Bon Jovi)의 힘이다.
대중성이란 무엇인가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꽃미남 보컬. 한 해에만 176만 티켓을 판매하고 수백억을 벌어들인 ‘잘 팔리는’ 뮤지션. 대중적인 가수.
대중성은 때로 낮게 평가된다. 너무 쉽게 들리고, 너무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너무 빠르게 반응이 오는 음악이라는 멍에로 ‘듣고 사유하는 음악’, ‘다층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음악’보다 가벼운 것으로 취급된다. 많은 비평은 복잡한 것, 새로운 것, 실험적인 것, 어두운 것, 위험한 것을 음악성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 데 익숙하다. 그 기준에서 본 조비처럼 공연장 전체를 집단의 후렴으로 묶어내는 음악은 쉬이 과소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중성은 ‘낮음’, ‘얕음’과 같은 말이 아니다. 그저 많이 팔린 음반, 쉽게 만든 멜로디의 다른 이름도 아니며, 가벼운 음악도, 제작과정에서 공이 덜 들어간 음악도 아니다. 한 곡이 서로 다른 취향과 배경을 가진 수천만의 사람들의 귀에 동시에 닿고, 몸을 반응시키고, 기억 속에 남아 다시 대중의 입 밖으로 터져 나오게 만드는 능력. 그것이 대중성이다.
이같이 마음을 홀리는 마법같은 대중성은, 오히려 대중음악이라는 문화장르 안에서 가장 어려운 기술 중 하나다. 사랑, 분노, 절망, 희망, 인내 같은 감정과 감각을 청각적 자극으로 풀어내는 것은 사실 상당히 복잡한 기술이다. 그것을 너무 복잡한 채로 두면 대중은 멀어지고, 지나치게 단순화하면 유치함으로 전락한다. 대중음악의 어려움은 바로 그 중간에서 감정의 핵심을 잃지 않은 채 쉽게 접근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내는 데 있다.
본 조비는 이러한 기술을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로 강력하게 장착한 밴드였다. 이들은 난해한 구조나 실험적 사운드로 청자를 압도하지 않고, 대신 수 초 안에 곡을 식별하고 인지하게 만드는 도입부, 곧장 기억되는 멜로디, 따라 부를 수밖에 없는 후렴의 구조를 만들었다. 본 조비의 음악은 해석 이전에 반응을 끌어낸다. 듣는 순간 몸이 알고, 두 번째에는 입이 따라오며, 세 번째에는 모두의 노래, 합창이 된다.
따라서 본 조비의 대중성은 단순한 ‘쉬움’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쉬운 노래는 무수히 많다. 그러나 그 쉬운 노래가 ‘모두의 노래’가 되는 일은 드물다. 본 조비가 강했던 이유는 음악을 단순하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곡이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들려 꽂히도록 정교하게 설계했기 때문이다. 대중성은 음악의 깊이가 사라진 자리가 아니라, 음악이 더 많은 사람에게 즉각적으로 도달하도록 구조화된 자리다.
It doesn‘t make a difference if we make it or not
We’ve got each other and that‘s a lot for love
We’ll give it a shot”
(지나가 말했지
“우린 버텨야 해, 성공하든 실패하든 상관없어
우리에겐 서로가 있고, 그것만으로 충분해
어디 한 번 해보자고”)
– 본 조비 ‘리빙 온 어 프레이어’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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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Photo by Ebet Roberts] |
단 1초도 집중을 흩트리지 않는 정교한 설계…본 조비의 두 가지 ‘대표곡’
이 명제는 본 조비의 대표곡 두 곡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리빙 온 어 프레이어(Livin’ on a Prayer)와 ‘유 기브 러브 어 베드 네임’(You Give Love a Bad Name)은 우연히 귀에 남은 히트곡이 아니라, 듣는 이의 반응을 거의 즉각적으로 선점하도록 짜인 대중음악의 정밀한 설계도에 가깝다.
‘유 기브 러브 어 베드 네임’은 시작부터 폭발을 터뜨린다. 도입부가 조용히 분위기를 만들고, 벌스(Verse)가 서사를 쌓고, 코러스(Chorus)에서 폭발하는 통상적 구조를 따르지 않고, 고요함 속에 첫 보컬의 핵심 에너지를 그대로 폭발시켜 버린다. “Shot through the heart! And you’re to blame”(심장을 뚫고 나가는 너의 총알)이라는 샤우팅은 곡 전체를 여는 신호탄처럼 작동한다. 듣는 이는 그 폭발의 충격을 몸으로 먼저 받고 ‘어?’하는 순간 기타 인트로가 강렬하게 등장해 청자의 집중력을 그대로 잡아둔다. 설명을 들을 틈 없이 곧바로 다음 구절을 기다리게 되고, 그 기다림은 거의 반사적으로 작동한다.
곡의 탁월함은 바로 그 반사성을 만들어내는 방식에 있다. 보컬은 짧고 강하게 치고 들어오며, 기타와 드럼은 그 구절을 곧장 받쳐 올린다. 멜로디는 복잡하지 않지만, 리듬과 억양의 배치가 명확해 한 번 들으면 머릿속에 ‘새겨진다’. 이때 음악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참여의 장치가 된다.
‘리빙 온 어 프레이어’는 한층 더 정교하다. 곡은 유명한 구절인 “Whoa, we’re half way there, Whoa oh, livin’ on a prayer”(우리는 벌써 절반 정도 왔잖아, 기도로 버텨오며)라는 강한 후렴으로 기억되지만 실제로는 특정 구간 하나로만 박히는 노래가 아니다. 곡은 거의 전 구간이 후크(hook)의 기능을 나누어 갖는다. 시작부의 토크박스 사운드는 몇 초 만에 곡의 정체를 각인 시키고, 벌스는 아래에서 올려치듯 서사의 입구를 예리하게 찌른다. 이어지는 프리코러스는 감정을 급격히 끌어올리며 후렴을 향한 기대치를 최고조에 닿게 하고, 그 후렴은 경기장 규모의 구호로 터진다.
중요한 점은 곡의 어느 한 부분도 느슨하게 방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각 구간이 각자의 방식으로 청자를 붙잡고, 다음 구간으로 넘기는 역할을 수행한다. 집중을 흩트릴 틈을 주지 않는다. 쉽게 들리지만, 듣는 이의 몰입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게 만든 작곡적 배치의 결과다.
본 조비의 수려한 능력 중 다른 하나는 감정을 구체적이거나 은유적으로 해석하는 데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감정의 세부를 덜어내고, 가장 많은 사람이 곧바로 반응할 수 있는 형태로 압축한다. 사랑에 배신당한 분노는 날카로운 외침이 되고, 삶의 불안과 버팀은 토미(Tommy)와 지나(Gina)라는 넉넉치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에 투영하고 끝이다. 앞서 서술한, 복잡한 감정을 단순하게 만들되, 유치하지 않게 만드는 것. 본 조비의 작법은 바로 그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거대한 힘을 얻는다.
그렇기에 이들의 두 대표곡은 단순히 후렴이 꽂히는 노래가 아니다. 곡 전체가 듣는 이의 기억과 신체 반응을 향해 조직돼 있다. 본 조비의 음악은 어설픈 복잡성을 아예 베어냈다. 모든 것들이 너무 정확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바로 그 명료함 때문에, 한 번 귀에 들어오면 쉽게 빠져 나가지 않는다. 대중성은 바로 이 곳에서 작동한다. 많은 사람이 순식간에 알아듣고, 동시에 반응하며, 이른바 ‘떼창’을 외칠 수 있는 구조. 본 조비는 그 구조를 1980년대 록의 언어로 완성한 밴드였다.
Like the roses want the rain
Like a poet needs the pain
And I would give anything
My blood, my love, my life
If you were in these arms tonight
(난 너를 원해
장미꽃에게 빗방울이 필요하듯, 시인에게 고통이 필요하듯
전부 다 바치겠어, 널 안을 수 있다면, 나의 피, 나의 사랑, 나의 모든 것)
- 본 조비 ‘인 디즈 암스’(In These Arms)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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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Photo by Paul Natkin] |
‘예술가의 가면’을 쓰지 않는 담대함…어설픈 아티스트의 길을 거부하며 ‘아티스트’가 된 밴드
흥미로운 점은 본 조비가 자신들이 대중에 접근하는 방식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들은 난해한 예술가의 표정을 짓지 않았고, 대중과 거리를 두고 권위를 획득하려 하지 않았다.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을 만든다는 스탠스를 내세워 자부심으로 삼지도 않았다. 이들이 선택한 방향은 그 정반대편, 더 빠르게 쉽게 닿는 음악. 이들은 그 목표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물론 이 태도는 오랫동안 양날의 검으로 작동했다. 잘생긴 프런트맨(보컬), MTV 시대에 최적화된 이미지, 매끈한 후렴, 거대한 스타디움 공연은 본 조비를 대중적으로 성공시킨 요소였지만, 동시에 이들을 ‘진지한 록’의 바깥에 세워두는 근거로도 사용됐다. 록은 의미가 깊고, 어둡고, 반항적이어야 한다는 기준 안에서 본 조비는 지나치게 명료했고, 지나치게 호감형이었으며, 지나치게 잘 팔렸다.
그러나 바로 그 명료함이 이 밴드의 성공동력이자 정체성이었다. 본 조비는 록의 공격성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서도, 그 에너지를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크기와 형태로 조정했다. 기타는 충분히 단단했고, 드럼은 공연장을 이끌 듯 밀어붙였으며, 보컬은 노래 내내 청중을 향해 뻗어 나갔다. 이 모든 요소는 듣는 이를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배치됐다. 위험하고 폭력적일 수있는 록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록을 대중이 ‘안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장르로 자리잡게 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 점에서 본 조비는 대중적인 밴드였다는 사실을 방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적극적인 무기로 삼은 사례에 가깝다. 존 본 조비(보컬)과 리치 샘보라(전성기 시절 기타), 여기에 히트 작곡가 데스몬드 차일드가 함께 만든, 앞서 언급한 두 곡은 같은 작곡 흐름에서 나온 곡들로 알려져 있다. 즉 본 조비의 히트곡은 우연한 영감의 산물이 아닌, 히트곡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만든 매우 의식적인 결과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본 조비의 음악이 계산만으로 완성됐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의 영리함은 계산을 계산처럼 들리지 않게 만드는 데 있었다. 본 조비가 만든 것은 ‘쉬운 척하는 음악’이 아니라, 쉽게 도달하도록 극도로 다듬어진 음악이다.
그렇기에 본 조비는 예술가의 가면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가벼웠던 밴드가 아니다. 이들은 대중성을 숨기지 않았고, 그것을 정면으로 수행했기 때문에 강했다. 음악을 어렵게 만들어 ‘아티스트’라는 권위를 얻는 대신 누구나 부를 수 있는 곡을 탁월하고 수려하게 만들어 힘을 얻은 밴드. 이들은 대중과 쉽게 닿는 접근성 자체를 하나의 음악적 완성도로 끌어올린 셈이다.
It’s now or never
I ain‘t gonna live forever
I just want to live while I’m alive
(이것이 나의 인생이야
지금이 아니라면 의미 없어
난 영원히 살 수 없으니까
그저 현재를 살아갈 뿐이야)
– 본 조비 ‘잇츠 마이 라이프’(It’s My Life)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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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Photo by Jason Kempin] |
‘록의 전설’, ‘록의 바이블’로 불리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과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음악은 다른 방식으로 위대했다. 복잡한 구성, 장대한 서사, 실험적 사운드, 앨범 단위의 세계관은 록 음악이 어디까지 예술적 깊이를 획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대중음악의 힘이 언제나 난해함과 실험성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음악을 사유하게 만들고, 어떤 음악은 듣는 이를 압도하며, 어떤 음악은 기억과 몸을 동시에 움직인다.
‘미국 음악 그 자체’로 불리는 러시아 출생 미국 작곡가인 어빙 벌린(Irving Berlin)은 대중가요 작법에 대해, 문법이나 운율은 어길 수 있어도 ‘대중가요 구조의 규칙’을 무시하고 성공할 수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대중성은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뜻이다. 쉽게 들리는 노래일수록, 사실은 더욱 정확한 계산과 배치 감각이 요구되기에.
본 조비가 증명한 것도 이 지점이다. 이들은 록을 어렵게 만들지 않았다. 대신 록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소리로 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쉬운 노래는 많다. 그러나 모두의 노래가 되는 일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본 조비의 대중성은 가벼움의 증거가 아닌, 가장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같은 후렴 위로 끌어 올리는 음악적 기술의 결과였다.
대중성은 타협이 아닌, 예술이 수천만의 사람들에게 도달하기 위해 획득한 또 하나의 정밀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