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일 리사이틀, 9월 새 앨범 발매
초기의 절박함 지나 이젠 책임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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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메 콰르엣 [크레디아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처음엔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이 절박했어요. 아시아 출신의 젊은 여성 사중주단이라는 시선 속에서 우리가 왜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매 무대 증명해야 했으니까요.”
동양인이자 젊은 여성이라는 달라지지 않는 배경은 일종의 장벽이었다. 에스메 콰르텟(Esm Quartet)은 한국 실내악에서도 극적이며 독보적 궤적을 그려왔다. 전원 여성인 현악사중주단의 한계를 깨보자는 호기로운 도전으로 출발했고, 결성 1년 반만의 세계 최고 권위의 위그모어 홀 콩쿠르에서 한국인 단체 최초로 우승하며 클래식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데렐라가 됐다. 이젠 국적과 성별을 초월한 명실상부한 인터내셔널 앙상블이자 교육자로 한 단계 더 높은 도약을 준비 중이다.
오는 2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창단 10주년 리사이틀을 앞두고 헤럴드경제와 서면 인터뷰로 만난 에스메 콰르텟은 “10년이 지나니 절박함이 책임감으로 달라졌다”며 “우리만의 음악적 목소리를 어떻게 남길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기”라고 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시간이다. 그 긴 날들을 돌아보는 지금 멤버들은 “처음 팀을 만들었을 땐 10년 뒤의 모습을 상상할 여유조차 없었다”고 돌아본다. 에스메 콰르텟의 리더인 배원희는 “좋은 팀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이 가장 절실했고, 늘 긴장감이 컸다”고 회고했다.
“지난 10년은 증명의 시간이었어요. 에스메 콰르텟이 가진 에너지와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더 깊은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왜 이 곡을 연주하는지, 이 음악이 관객에게 어떤 방식으로 닿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요.” (하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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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메 콰르엣 [크레디아 제공] |
결성 초기의 긴장감은 시간을 쌓으며 신뢰와 기다림으로 성숙했다. 팬데믹이 오기 전 이 팀은 일 년에 70회 정도 연주를 했는데, 5일에 한 번꼴로 무대에 선 셈이다. 배원희는 ”많은 무대를 경험하며 매 공연 어떻게 더 발전된 연주를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그 과정에서 연주에 쏟는 에너지의 분배나 즉걱적인 반응 능력이 더 정교해졌다“고 돌아본다.
시간의 길이는 사람과 음악의 색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유나는 “사랑의 형태가 시간이 지나며 변하듯, 우리 음악의 온도도 조금씩 달라져 온 것 같다”며 “예전에는 조금 더 뜨겁고 직선적인 에너지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그 감정이 더 폭넓고 깊이 있게 자리 잡았다고 느낀다”고 했다.
가장 달라진 점은 음악의 해석이다. 허예은은 “초창기엔 약속을 정해 고정적 해석을 해왔다면, 함께 하는 시간이 쌓이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며 해석에 대한 자유도와 유연성이 높아졌다”며 “이제는 각자의 경험과 감정, 네 명의 호흡이 반영되면서, 매번 연주마다 조금씩 새로운 해석이 살아난다. 음악을 만들 때 서로의 아이디어에 귀 기울이며, 그 순간에 가장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는 찰나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큰 변화”라고 했다.
지난 10년 사이 에스메 콰르텟의 가장 큰 변화는 2023년 비올리스트 디미트리 무라스가 합류한 것이다. 창단 멤버이던 비올리스트 김지원이 떠나고, 프랑스 출신으로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해온 디미트리 무라스가 빈자리를 채웠다. 배원희는 멤버 변화를 “굉장히 큰 전환점”이라며 “결국 중요한 건 성별보다는 음악적 방향성과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라고 했다.
“디미트리는 굉장히 따뜻하면서도 유연한 사운드를 갖고 있어, 이전보다 중간 성부의 색채와 호흡이 더 풍부해졌어요. 유럽에서 자라고 미국에서 활동하며 한국인 아내를 둔 덕분인지 저희와 문화적으로도 잘 맞았고요. 음악 외적으로도 팀 분위기에 균형감이 생긴 것 같아요. 네 명 모두 성격이 강한 음악가들이라, 새로운 에너지가 들어오면서 서로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부분도 있어요.” (배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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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메 콰르엣 [크레디아 제공] |
이미 탄탄한 앙상블을 만들어내고 있는 팀에 새 멤버로 들어오는 것은 적잖은 부담이 따라오는 일이다. 무라스는 “합류 전 에스메 콰르텟은 이미 정제된 연주와 깊은 표현력을 보여주는 세계적 수준의 현악 사중주단이었다”며 “멤버가 된 후 발견한 가장 큰 변화는 무대 뒤 리허설 과정에 깃든 끝없는 헌신과 유연함”이라고 했다.
입단 3년째지만, 네 사람은 어느덧 돈독해졌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비올라의 음색이 첼로와 훨씬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완벽한 균형을 체득해 가고 있다”며 “투어 내내 함께 나누는 수많은 모험과 같은 숨겨진 일상들도 가득하다. 그런 경험들을 함께 쌓아가며 우리의 우정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고 뒤띔했다.
서로 다른 색깔과 개성을 지닌 네 사람이 모여 ‘에스메 콰트렛’이라는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얻은 단단한 결실은 “이젠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잘 알게 됐다”(하유나)는 점이다.
배원희는 천생 리더다. 음악에서도, 음악 외적인 면에서도 팀의 중심을 잡는다. 허예은은 “원희 언니는 워낙 추진력과 리더십이 강하다”고 했다. 다른 멤버들은 서로의 강점이 퍼즐처럼 맞아 들어가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어긋남이 없다. 배원희는 “(하)유나는 음악의 장점을 최대치로 끌어내어 받쳐주기도 이끌어주고, (허)예은이는 섬세한 디테일과 색채감이 뛰어나고, 음악 안의 감정을 굉장히 민감하게 포착한다”고 했다.
바이올린보다는 5도 낮고, 첼로보다는 8도 ‘중간쯤의 악기’인 비올라는 잘 드러나지 않는 악기다. 오케스트라는 물론이거니와 현악 사중주 안에서도 비올라의 음색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아 무색무취라는 ‘비올라 농답집’도 생겨날 정도. 배원희는 “디미트리는 유연하면서도 따뜻한 에너지로 팀 안의 흐름을 부드럽게 연결해 주는 역할”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허예은이 보는 디미트리는 “새로운 시각과 유연한 아이디어의 보고”다.
“무엇보다 비올라 연주력이 너무 뛰어나서, 음악가들 사이에서 비올라 농담을 많이 하는데 그에겐 해당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웃음)” (배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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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메 콰르엣 [크레디아 제공] |
각자의 개성을 안고 뭉친 네 사람의 교집합은 성향에서 나온다. 하유나는 “저희의 장점은 야심차다는 것, 그리고 단점은 지나치게 야심차다는 것”이라며 웃었다. 무라스 역시 동의했다. 그는 “우리 멤버들의 가장 큰 강점은 예술적 무결성에 있어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는 점”이라면서 “굳이 약점을 하나 꼽는다면, 도전적이고 야심찬 프로그램을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열정 과잉’의 네 사람이 뭉치니 “가끔은 필요 이상으로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공연을 자처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에스메가 욕심을 가득 담아 만들어놓은 매우 힘든 시즌 프로그램을 이듬해의 에스메가 연주하는 순간, 이 점을 자주 실감해요. (웃음)” (하유나) “위대한 걸작들을 온전히 책임지고 싶은 욕심이 만들어낸 기분 좋은 부작용인 셈이죠.” (디미트리)
10주년을 맞은 에스메 콰르텟은 오는 9월 새 앨범 ‘누이(Nui)를 낸다. 지금의 에스메가 선 자리를 보이는 이정표라 할 만하다. 결혼, 출산 등 단원들의 개인적 삶의 변화도 음악의 온도를 바꿨다. 앨범엔 파니 멘델스존의 현악사중주, 그녀의 죽음 이후 펠릭스 멘델스존이 쓴 Op.80, 한국인 여성 작곡가 서주리의 신작이 한 장에 담긴다. 서주리의 곡은 에스메 콰르텟이 직접 위촉, 동요 ‘엄마야 누나야’에서 영감을 받았다.
배원희는 “가족의 사랑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 기억의 감정을 담은 프로젝트”라며 “한국적인 정서와 기억의 감각이 다른 레퍼토리와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리라 봤다. 데뷔 초반엔 스스로를 증명하려는 에너지와 추진력이 강했다면, 지금은 조금 더 인간적인 온기와 깊이를 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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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메 콰르엣 [크레디아 제공] |
‘증명의 시간’은 지났지만, 하고 싶은 음악은 여전히 많다. ‘현악사중주는 난해하다’는 편견을 깨부수고, ”가장 인간적이고 가까이에서 감정을 나누는 장르“(허예은)로 네 사람은 노래한다. “익숙함이 특별함이 되도록, 고전 레퍼토리를 더 깊이 탐구하는 동시에, 한국 작곡가들의 음악처럼 지금 살아가는 시대와 연결되는 프로젝트들도 더 많이 만들어가겠다”(하류나)는 바람이다.
에스메(Esm)는 옛 프랑스어로 ‘사랑받다’라는 의미다. 지난 10년 동안 이름에 값하는 사랑을 세계 무대에서 받아온 네 사람은, 앞으로의 10년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다. 무엇보다 “앞으로의 10년은 조금 더 자유롭고 깊어진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과연 우리가 10년이나 함께 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마음을 지나,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는 배원희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함께 무대에 서는 것이 설레는 팀으로 남는 것이 이상적인 미래일 것”이라고 했다.
허예은은 기억에 남는 음악을 꿈꾼다. “‘잘 연주하는 팀’을 넘어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는 음악을 남기고 싶다”는 그는 “앞으로도 음악을 즐기고, 서로를 믿으면서 무대에 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장 큰 행복”이라고 했다. 디미트리는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시대를 초월한 클래식 명작과 이 시대의 새로운 목소리를 연결하는 가교가 되는 것”이라며 “오랫동안 관객의 곁에 머무는 앙상블로 남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