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는 누구의 것인가”… 고레에다가 AI 시대에 던진 질문 [인터뷰]

‘상자 속의 양’ 고레에다 히로카즈 인터뷰
79회 칸영화제 경쟁 진출…10번째 초청
“지나친 기술 의존, 언젠가 마침표 필요”
로봇·인간·자연의 새로운 공동체 제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미디어캐슬 제공]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7살 아들을 잃고 가슴에 슬픔을 묻은 채 살아가던 오토네(아야세 하루카 분)와 켄스케(다이고 분)에게 휴머노이드 아들 ‘카케루’(쿠와키 리무 분)가 나타난다. 오토네는 생전 아들과 꼭 닮은 ‘카케루’를 마치 아들이 돌아온 것처럼 반기지만, 켄스케는 아들의 모습을 한 로봇을 선뜻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럼에도 ‘카케루’가 돌아온 집에는 다시 온기가 감돈다. 오토네의 얼굴에는 사라졌던 웃음이 피어나고, 켄스케 역시 조심스럽게 ‘카케루’에게 마음을 연다. 다만 여전히 그가 로봇이라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오토네 부부는 ‘카케루’에게서 죽은 아들과는 다른 모습과 행동을 발견한다. 그리고 “인간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 “카케루는 그런 짓 안 해”라며 그를 다그친다. 그 사이 ‘카케루’에게는 ‘인간의 과거’로만 남고 싶지 않은 휴머노이드 동료들이 생긴다. 불안한 균열이 번져가는 가족, 자유를 원하는 휴머노이드. 과연 이들은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지킬 수 있을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상자 속의 양’이다.

영화 ‘상자 속의 양’ [미디어캐슬 제공]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뉴(NEW) 사옥에서 영화 ‘상자 속의 양’ 홍보 차 한국을 찾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만났다. 지난해 씨네큐브 특별전 ‘고레에다와 함께한 25년’ 행사 이후 1년 만의 내한이다.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휴머노이드 ‘카케루’ 역을 맡은 쿠와키 리무도 자리에 함께했다. 인터뷰는 “안녕하세요, 쿠와키 리무입니다”라는 수줍은 한국어 인사로 문을 열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카케루’ 역 오디션을 통해 쿠와키를 만났다. 그는 “이 아이가 아니면 ‘카케루’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쿠와키는 감독의 직감대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어딘가 온기가 부족한 휴머노이드 ‘카케루’를 완벽하게 연기한다. 고레에다 감독이 ‘10년 후’를 상상하며 그려낸 머지않은 미래 속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공존’에 대한 서사는 그의 연기를 통해 충분한 설득력을 얻는다.

경험이 전무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의 연기는 대부분 쿠와키가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다. 촬영 현장에서 감독이 준 지시는 “눈을 최대한 깜빡이지 말 것” 정도였다.

“고레에다 감독님이 특별히 ‘로봇 연기’에 대해 지시해 주신 것은 없었어요. ‘너답게 해라’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해주신 것 같아요. 저도 저답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연기했어요.”(쿠와키)

영화 ‘상자 속의 양’에서 휴머노이드 ‘카케루’를 연기한 쿠와키 리무 [미디어캐슬 제공]


고레에다 감독은 일본을 대표하는 거장이다. 그는 2018년 제7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어느 가족’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상자 속의 양’은 그의 10번째 칸 초청작이자 8번째 경쟁 부문 진출작이다.

쿠와키에게는 평생 함께할 데뷔작에 거장의 이름을 새기게 된 셈이지만, 정작 그는 “감독님이 엄청난 분이라는 생각은 못 했다”며 웃었다.

“감독으로서 대단한 분이라는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실제로 함께해보니 다정하고, 배우들을 세심하게 챙겨주시는 분이라고 느꼈죠.”(쿠와키) 실제로 이날 고레에다 감독은 쿠와키와 나란히 앉아 배우가 답변을 고민하는 순간마다 마치 자신의 일처럼 바라보며 곁을 지켰다.

고레에다 감독이 이번 작품의 각본을 쓰게 된 계기는 중국에서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사업이 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였다. 작품 속 대사이기도 한 “죽은 사람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작품을 만들었다.

영화에는 오토네 부부를 비롯해 갑작스럽게 곁을 떠난 아이를 로봇으로 되살려,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건네며 위로받는 이들이 등장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상실의 슬픔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이러한 인간의 치유 방식에는 날선 물음표를 던졌다. 그의 시선에서 죽은 아이들의 이름을 붙인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가깝다.

영화 ‘상자 속의 양’ [미디어캐슬 제공]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죽은 이를 마음대로 부활시키는 것에 윤리적 의문이 들기 시작했어요.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진정한 의미에서 슬픔을 치유하는 과정마저 멈춰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의 것이어야 해요. 인간이 이러한 기술을 이용하는 데에는 어느 순간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고레에다)

고레에다 감독은 오랜 시간 가족을 중심으로 공동체의 의미를 확장하고 탐구해 왔다. ‘아무도 모른다’(2004)에서는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이 ‘버려진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고, ‘어느 가족’(2018)에서는 법적·혈연적 연결이 없는 사람들이 서로를 선택해 가족이 되는 과정을 담았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는 가족이 단지 혈연이 아니라 함께한 시간과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상자 속의 양’에서 그는 가족의 개념을 한 걸음 더 확장한다. 영화에서 ‘가족’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존재는 다름 아닌 ‘카케루’다. 인간의 이기로 탄생했다가 인간의 손에 버려진 휴머노이드들은 서로 연대하며 숲속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꾸려간다. 그 안에는 인간에게 학대받은 인간도 존재한다. ‘카케루’는 이들을 자신의 가족이자 집이라 말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아이가 성장해 부모가 아닌 다른 존재들과 가족을 맺게 되는 것까지 생각한 전개”라고 설명했다.

영화 ‘상자 속의 양’ [미디어캐슬 제공]


“휴머노이드들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다고 생각했어요. 그 안에는 인간도 있고 기계도 있고 숲도 있겠죠. 만약 숲에 휴머노이드들만 산다면 인간과 기계의 분단만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존재가 함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카케루’를 통해 새롭게 만들어진 가족의 개념은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죠.”(고레에다)

고레에다 감독은 지난 5월 ‘상자 속의 양’으로 79회 칸영화제를 찾았다. 현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을 묻자 그는 개막식에서 박찬욱 감독과 눈이 마주쳤던 일을 웃으며 떠올렸다.

“개막식 무대를 객석에서 보고 있는데 무대 위에 서 있던 박찬욱 감독과 눈이 마주쳤어요. 그때 박 감독이 미소를 짓더라고요. ‘나를 알아보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제 뒤에 봉준호 감독이 앉아 있었던 거예요. 그 미소가 저를 향한 것이었는지, 봉 감독을 향한 것이었는지 지금도 너무 궁금합니다.” (고레에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번 영화의 홍보 활동을 마치는 대로 차기작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먼저 후지모토 타츠키 작가의 동명 만화를 실사화한 ‘룩백’이 올해 관객들과 만난다. 각본과 연출, 편집까지 모두 직접 맡았다. 내년에는 할리우드 배우 에디 레드메인과 함께 영어권 영화를 선보일 계획이다.

“‘룩백’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워요. 제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고 존경하는 만화죠. 다만 종이 위에 그려진 만화와 실제 인간이 등장하는 영화는 분명 다를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원작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불안해하실 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고레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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