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공포마저 지웠다’ 보고도 못 믿을 정도…반도체주 광풍, 과거와 다른 진짜 이유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신임 의장이 17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준금리 결정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AP]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코스피가 올해에만 4000포인트 넘게 급등하며 결국 ‘구천피(코스피 9000)’ 시대를 열었다. 더욱 주목되는 점은 상승 배경이다.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는 시장 기대보다 매파적인 메시지가 나왔지만, 국내 증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상승세를 이어갔다.

시장에서는 “이제는 금리가 아니라 인공지능(AI)이 증시를 움직이는 시대”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오랜 기간 금융시장을 지배해온 금리·주가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신한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과거처럼 ‘페드 워치(Fed Watch)’에 집중할 필요가 없는 국면”이라고 진단했다. AI 투자 확대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경제 환경에서는 금리와 주가의 관계가 과거와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금융위기 이후 투자자들에게 금리와 주가의 역행 관계는 상식처럼 자리 잡았다. 2020년 팬데믹 당시 연준의 초저금리와 대규모 유동성 공급이 증시 랠리를 이끌었고, 반대로 2022년 급격한 긴축은 글로벌 증시 조정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한투자증권은 금리와 주가의 관계는 항상 역행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인플레이션 자체보다 인플레이션의 성격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은 경기 호황으로 소비와 투자가 늘면서 발생하는 물가 상승이다. 이 경우 금리 상승은 경기 확장의 결과이자 과열을 조절하기 위한 부산물 성격이 강해 주가와 반드시 반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반면 공급 견인 인플레이션은 유가·원자재 가격 급등 등 생산비용 상승에서 비롯된다. 이 경우 경기 둔화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어 금리 인상이 주식시장에 더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에 시장 일각에서는 여전히 금리 상승을 우려하지만, 신한투자증권은 지금의 물가 압력이 AI 혁명이 만들어낸 투자 ‘수요’에서 비롯된 만큼 주가 추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실제로 최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AI 데이터센터 구축 경쟁에 뛰어들며 사상 최대 규모의 설비투자(Capex)를 집행하고 있다. 동시에 회사채 발행 등 신용 확장(Credit)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보기 드물었던 ‘Capex+Credit 사이클’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수요가 약했기 때문에 금리가 내려가야만 경기가 살아났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지금의 수요는 연준의 금리 정책이 아니라 기술 혁신과 기업 투자 의지에서 발생하고 있다.

김성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준(Fed)은 AI를 만들지 않았다”며 “빅테크가 금리가 낮아서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AI 경쟁력 확보를 위해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기업 투자와 주가가 금리를 결정하는 방향으로 선후관계가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시장 흐름도 이를 뒷받침한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2년까지는 미국 국채금리가 하락할수록 주가가 상승하는 역의 상관관계가 뚜렷했다. 그러나 2023년 이후에는 미국 10년물 국채금리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이 함께 상승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AI 관련 투자 수요가 경제 성장 기대를 끌어올리면서 금리 상승 자체가 경기 호조의 신호로 해석되는 국면이 형성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경우 금리 인상은 경기 확장을 억누르기 위한 ‘속도 조절 장치’에 가깝다. 기업 실적과 투자 사이클이 견조하게 유지된다면 금리가 다소 오르더라도 주식시장의 상승 추세가 꺾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물론 반론도 존재한다. 현재 인플레이션이 순수한 수요 견인만으로 설명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으로 국제유가가 상승 압력을 받았고 그 여진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은 대표적인 공급자(비용) 측 인플레이션 요인으로 꼽힌다.

만약 유가 급등이 장기화하면서 공급 충격이 수요 확대 효과를 압도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연준이 예상보다 더 강한 긴축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결국 시장 유동성을 위축시키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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