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안전통행 체계 마련 합의”

파행위기 넘긴 미-이란 첫 협상 종료
고위급委 설치 등 ‘60일 로드맵’ 합의
이란 “석유수출·동결자금 상당 진전”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 이후 처음으로 열린 스위스 고위급 회담에서 향후 60일 협상 로드맵과 호르무즈 해협 안전통행 체계 마련에 합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이란 위협 발언으로 이란 대표단이 한때 회담장을 떠나며 파행 위기에 몰렸지만 협상 자체는 결렬되지 않고 후속 협상 틀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레바논 전선과 핵 프로그램 문제는 본격 논의에 들어가지 못하면서 향후 협상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과 이란은 21일(현지시간) 스위스 루체른 호수 인근 뷔르겐슈토크 리조트에서 파키스탄·카타르의 중재 아래 고위급 4자 회담을 열었다. 지난 18일 종전 MOU 체결 이후 처음 열린 공식 후속 협상이다.

미국에서는 JD 밴스 부통령과 스티브 윗코프 중동특사, 재러드 쿠슈너가 참석했고 이란에서는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 등이 협상단을 이끌었다.

회담 종료 뒤 카타르와 파키스탄은 공동성명을 통해 양측이 향후 60일 내 최종 합의 도출을 목표로 하는 로드맵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CNN 방송에 따르면 양측은 협상 전반을 감독할 고위급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미국과 이란 수석 협상대표들은 앞으로 정기적으로 협상 진행 상황을 위원회에 보고하게 된다. 또 핵 문제와 대이란 제재, MOU 이행 점검 및 분쟁 해결을 담당할 실무그룹도 구성하기로 했다. 실무그룹은 핵 프로그램 제한과 제재 완화, 동결자산 반환, 합의 이행 감시 체계 구축 등 핵심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이번 주 남은 기간 동안 스위스에서는 기술적 실무 협상이 이어질 전망이다.

회담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이란 대표단은 공개 개회 발언과 공동 사진 촬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최종 합의 전 미국과 우호적인 장면이 공개될 경우 이란 내 강경파 반발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 회담은 약 80분 만에 정회됐다. 도화선은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발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트루스소셜에 “이란은 레바논에서 고액의 돈을 받고 동원하는 대리인들이 일으키는 문제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지난주보다 더 강력하게 이란을 공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은 즉각 반발했다. 타스님 통신은 이란 대표단이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 발언에 항의해 회담장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갈리바프 의장도 “미국은 신중하게 발언하는 것이 좋다”며 “우리 군은 다른 방식으로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회담의 가장 구체적인 성과는 호르무즈 해협 문제였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회담 종료 후 “양측은 선박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해외 동결자산 반환과 이란산 원유 수출을 위한 제재 면제 확보 문제도 주요 의제로 논의됐으며 “좋은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물동량의 핵심 통로다. 미국과 이란이 체결한 MOU에는 이란이 60일 동안 해협을 개방하고 통행료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다만 해협을 둘러싼 갈등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란이 해협을 다시 봉쇄하면 미국이 사실상 해협을 장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협상이 실패할 경우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에 통행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입장도 재차 밝혔다.

반면 이란은 60일 유예기간 이후 보험료와 안전관리 비용 명목의 수수료 부과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해협을 개방하는 문제를 넘어 누가 항로를 관리하고 안전을 보장할 것인지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양측은 협상 최대 변수로 떠오른 레바논 문제를 별도 관리하기로 했다.

공동성명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은 카타르와 파키스탄의 중재 아래 레바논 상황 관리를 위한 ‘충돌 방지 셀(de-confliction cell)’을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이 기구는 레바논 내 군사작전 종식 여부를 점검하고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레바논 문제는 이번 회담에서도 핵 협상보다 앞섰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란 협상팀 관계자는 “레바논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다른 주제에 대한 협상은 없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도 양측이 핵 프로그램 처리 문제에는 본격적으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전했다.

헤즈볼라를 둘러싼 이란과 이스라엘의 입장 차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란은 헤즈볼라를 중동 영향력의 핵심 축으로 보고 있는 반면, 이스라엘은 핵 프로그램 못지않은 안보 위협으로 간주한다. 네타냐후 총리도 이날 헤즈볼라에 대한 군사적 압박 유지 방침을 재확인했다.

서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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