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대안정기’ 뒷받침 평가…‘그린스펀 풋’으로 금융위기 안전판 역할
한국 외환위기 당시 단기외채 만기 연장 막후 지원
시장 자율조정능력 믿어…서브프라임 모기지 방치 속 엇갈린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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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로이터]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22일(현지시간) 별세한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1987년부터 2006년까지 약 19년간 미국 중앙은행을 이끌며 ‘대안정기(Great Moderation)’를 이끈 통화정책의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반면 시장의 자율 조정 능력에 대한 강한 신뢰와 규제 완화 기조는 훗날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대침체(Great Recession)의 배경을 제공했다는 비판도 함께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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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런 그린스펀(왼쪽)이 1983년 4월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열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사회보장 법안 서명식에 참석하고 있다. [AP] |
1987년 폴 볼커의 뒤를 이어 연준 의장에 취임한 그린스펀은 재임 기간 성장과 물가 안정을 동시에 달성하며 미국 경제의 장기 호황을 이끈 인물로 평가된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부고 기사에서 그를 ‘통화정책의 거장(Maestro of Monetary Policy)’으로 표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연준 의장으로서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계 인사가 돼 거대하고 복잡한 미국 경제라는 기계가 최선의 상태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연주되도록 조율해나갔다”라고 언급했다.
복잡하고 거대한 미국 경제를 마치 오케스트라의 거장 지휘자처럼 세심하게 조율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도 “그의 재임 기간 대부분은 번영의 시기와 맞물려 있었으며, 냉전 이후 승리를 거둔 미국식 자본주의의 상징적인 인물로 자리 잡았다”라고 평가했다.
연준의 통화정책 소통 방식 변화도 통화정책 안정성에 기여했다고 여겨진다.
통화정책 결정 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금리 결정 후 공개적으로 정책 결정문(성명)을 내놓기 시작한 것은 그린스펀 재임 시기인 1994년이 처음이었다.
그 이전까지 연준은 통화정책 변경 결과를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았고, 월가는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의 공개시장운영 업무를 통해 정책 변화를 추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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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런 그린스펀(오른쪽)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2000년 1월 백악관 집무실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연설을 지켜보고 있다. [AP] |
그린스펀 체제의 연준은 금융시장 위기 때마다 신속한 대응으로 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그린스펀 풋(Greenspan Put)’이라는 용어도 탄생했다.
주가 급락이나 금융시장 불안이 발생할 때마다 연준이 금리 인하와 대규모 유동성 공급에 나서 시장을 떠받쳐 줄 것이라는 믿음이 투자자들 사이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풋(Put)’은 시장 하락 시 손실을 방어하는 풋옵션을 뜻한다.
그의 위기 대응 능력은 취임 직후부터 입증됐다. 1987년 10월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하루 만에 22.6% 폭락한 ‘블랙 먼데이’ 사태가 발생하자 과감한 유동성 공급 의지를 밝히며 시장 안정에 기여했다.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와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파산 사태 때도 깜짝 금리 인하로 대응하며 글로벌 신용경색 확산을 막았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그린스펀은 로버트 루빈 당시 재무장관과 함께 위기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막후 대응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체결 이후에도 1997년 말 위기 사태가 수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미 당국은 한국 정부와 협의해 IMF 구제금융의 조기 지원을 결정한 바 있다.
이와 아울러 미국과 주요 선진국 금융회사들이 보유한 한국 기업 및 금융기관 대상 단기 대출의 만기를 연장해줄 것을 유도하기로 결정했다.
뉴욕 연은은 1997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월가 주요 은행과 회의를 소집한 이후 미국 주요 은행들은 한국의 단기 외채 만기 연장에 동의했고, 이후 연준은 몇달 간 단기 위주였던 대출 만기를 중기로 전환하는 작업을 감독했다.
이 같은 단기 외채 만기 연장 및 재구조화는 1997년 말 한국이 국가 부도 위기를 넘기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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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AFP] |
그린스펀에 대한 평가는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크게 엇갈렸다.
그는 1996년 미국 증시의 기술주 열풍을 두고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을 경고했지만 실제 거품을 억제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이후 증시는 수년간 더 상승하며 닷컴 버블로 이어졌다.
버블 붕괴 이후에도 미국 경제 전반이 심각한 침체에 빠지지 않자 그린스펀은 거품 형성을 사전에 억제하기보다 붕괴 이후 충격을 최소화하는 정책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자율적 균형에 대한 그린스펀의 믿음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같은 위험한 대출 관행에 대한 느슨한 감독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린스펀이 2006년 1월 퇴임했을 때만 해도 미국의 경제는 건실했지만, 주택시장이 둔화하면서 모기지 연체율이 급격히 늘었고 이는 결국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이후 베어스턴스·리먼브러더스 몰락과 같은 금융위기 사태로 번졌다.
WSJ은 “그린스펀의 비판자들은 거품 성장 억제에는 작은 조치만 취하고 사후 정리에는 큰 조치를 취하는 비대칭적인 대응이 오히려 더 많은 위험 감수를 부추겼다고 비판한다”라고 소개했다.
NYT는 “그의 전기 작가인 세버스천 맬러비는 금융안정에 더 큰 비중을 두지 못했다는 점이 그린스펀이 저지른 가장 중대한 실수였고, 그것은 그가 굳이 저지르지 않아도 됐을 실수였다라고 결론지었다”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