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디지털 영토전쟁 스케일업 M&A에 답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면서 시장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대규모 언어모델(LLM) 개발사와 AI 애플리케이션 기업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 관점에서는 화려한 기술 경쟁 이면의 본질적인 질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AI 생태계가 커질수록 가장 안정적인 수혜처는 어디일까. 답은 애플리케이션이 아닌 디지털 인프라에 있다.

철도와 전력망이 산업혁명 시대의 인프라였다면, AI 시대는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가 핵심 사회간접자본(SOC)이다. AI가 확산될수록 이를 떠받치는 디지털 인프라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의 흐름은 이런 변화를 잘 보여준다. 시스코가 빅데이터 및 보안 분석 기업 스플렁크를 약 280억달러(약 42조원)에 인수한 데 이어, 구글이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320억달러(약 48조원)를 들여 클라우드 보안 선도 기업인 위즈를 인수했다.

글로벌 빅테크와 대형 사모펀드들이 해당 분야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는 이유는 명확하다. 기술 트렌드 변화 속도가 빠르고 경쟁이 치열한 AI 모델과 달리,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보안 플랫폼은 일단 구축되면 높은 진입장벽과 고객 락인(Lock-in) 효과를 형성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장기 계약을 기반으로 한 반복 매출구조는 예측 가능성이 크며, 이러한 특성이 고속도로 통행료와 유사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뒷받침한다. 이는 다시 시장에서 높은 밸류에이션과 멀티플을 인정받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내 정보기술(IT) 관련 M&A 시장은 아직 이런 글로벌 흐름에 충분히 올라타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는 트래픽 기반의 소비자 대상 플랫폼, 게임, 콘텐츠 기업이 시장의 중심에 있었다면 최근에는 AI 데이터 인프라, 클라우드 보안 등 기술 집약적 기업간거래(B2B) 영역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다만 글로벌 시장과 비교하면 거래 규모와 건수 모두에서 격차가 크다. 시장 구조를 바꿀 만한 규모의 디지털 인프라 딜은 아직 많지 않다.

현재 국내 디지털 인프라 및 보안 기업의 주요 과제는 기술력보다는 ‘규모’에 있다. 개별 영역에서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강소기업은 상당수 존재하지만, 글로벌 무대에서 빅테크와 경쟁할 수준의 규모를 갖추지 못했다. 이와 같은 파편화된 구조에서는 개별 기업의 유기적 성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제는 유사한 성격의 기술 기업을 인수·합병해 하나의 대형 플랫폼으로 통합하는 전략적 M&A와 스케일업 전략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정책금융, 특히 ‘국민성장펀드’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국민성장펀드는 단순히 자금을 분산 공급하는 전통적인 정책금융 역할을 넘어, AI 인프라·클라우드 보안·디지털자산 인프라 분야에서 중소·벤처기업 간의 전략적 M&A를 촉진하는 성장 플랫폼의 앵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국민성장펀드가 이런 거래를 지원한다면, 개별 펀드의 투자 수익을 넘어 국가 차원의 디지털 경쟁력 제고라는 정책적 성과도 함께 기대할 수 있다.

현재 각국에서 진행되는 M&A는 단순한 기업 경영권 이전이 아니라, AI 시대의 디지털 영토와 사회간접자본을 어느 국가와 기업이 선점할 것인지에 대한 경쟁의 성격을 나타낸다. 국내 자본시장과 정책금융이 협력해 기술 기업의 ‘스케일업 M&A’를 주도할 때, 국내 디지털 인프라 기업도 AI 기반 고속도로에서 의미 있는 지위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장기적으로 대한민국이 글로벌 디지털 경제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전 세계 디지털 영토의 ‘통행세’를 거둘 수 있는 기반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창조 삼일PwC IT·AI 섹터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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