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덕후는 사회성이 떨어진다거나, 쓸데 없는 데 빠져있다는 이유를 들어 주류에 진입하지 못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한때 ‘덕후’의 또 다른 말은 ‘환자’ 또는 ‘또라이’였다.
MBC ‘능력자들’은 숨어있던 다양한 덕후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공로를 인정받아야 한다. 덕후를 음지에서 양지로 끄집어내는 역할을 맡고 있다.

덕후들은 스스로를 홍보할 줄 모른다. ‘능력자들’이 이들에게 ‘덕밍아웃’시켜준 셈이다. 덕후들이 나오는 프로그램 제목을 ‘능력자들’이라고 한 것도 덕후들의 인식 개선에 도움을 준다.
‘능력자들’의 이지선 PD는 “정해 놓은 틀을 가지 않는 사람에게 잘못된 시선을 가지고 바라보는 걸 조금 걷어내고 싶었다”고 전했다. 마이너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묻어난다.
‘능력자들’에 나오는 덕후들은 그들 부모도 자식이 무엇에 빠져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이 덕후들을 세상에 알리는 ‘능력자들’은 공공연하게 ‘덕질’을 장려하는 ‘덕력’(덕후 능력) 강화 프로그램이다. ‘세상은 넓고 덕후는 많다’는 것이다.
‘능력자들’은 지난해 11월 시작해 현재까지 26회까지 방송되며 많은 덕후들을 소개했다. 덕후들의 놀이문화가 조금씩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이제는 출연자가 주위에 있는 덕후를 추천, 섭외해주고 스스로 출연의사를 밝히기도 한다. 하지만 덕후를 발굴하고 방송에 내보내는 일은 그리 녹록치 않다. 덕후들이 방송 출연을 결정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 또 홍보나 상업적인 목적을 띠고 있을 때는 철저히 배제한다. 이지선 PD는 인터뷰를 해보면 진성덕후를 가릴 수 있다고 한다.

“질문했을때 무조건 할 수 있다고 하는 분은 꺼린다. 덕후는 기본적으로 겸손하고 수줍워한다. 돌발질문을 하면 장고에 들어간다. 전문가들은 원가에 대해 이야기 하거나 용어, 단어가덕후들과 다르고 상업적 냄새를 풍기는 경우가 있다. 그런 분은 전문가 자격으로 덕후와 대결하게 한다. 덕후는 자신만이 경험했기 때문에 ‘저 같은 경우는’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또 덕후와 인터뷰하다 보면 감동을 느낄 때도 더러 있다.”
도로덕후는 상금을 받으면 차가 막혀도 쉽게 갈 수 있는 우회도로에 관한 책을 쓰겠다고 했다. 마이클 잭슨 덕후는 아내가 마이클 잭슨을 닮아 결혼했다고 했다. 그는 상금을 받지는 못했지만 영상편지를 통해 마이클의 철학을 세상에 퍼트리고 하늘에서 만나자고 했다. 서태지 덕후는 공과금도 제대로 내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데도 상금을 받아 기부금을 냈다.
시장덕후는 “전국 1400개 시장중 700개밖에 가보지 못했다.나머지 700개야. 사라지지 말고 꼭 만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고등학생인 소방서 덕후는 상금 300만원을 기부해 받은 가방을 제작진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취미로 해서 수입이 제대로 따르지 못하면 다른 생업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덕질’과 ‘생업’이 일치하는 ‘덕업일치’를 이룬 경우도 있다. 편의점 덕후는 삼각김밥 등 편의점에서 파는 품목에 대한 사용후기를 하도 많이 올려 편의점을 운영하는 회사에 취직이 됐다. 취미로 즐기던 롤러코스터 덕후는 ‘테마파크 스토리텔러’라는 특이한 직업을 갖게 됐다.
이지선 PD는 “무엇보다 덕질을 통해 소심한 성격을 조금 바꿀 수 있는 것 같다. 한가지를 좋아함으로써 외향적 성격으로 바뀐다”면서 “평소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덕후가 자기 이야기를 할 때는 떨지 않고 자신감마저 생긴다”고 전했다.
서태지 덕후는 자주 방송사에 온다. 삼각김밥 700여 종류를 맛본 편의점 덕후는 상금 200만원을 받아 편의점 본사가 있는 달라스를 다녀온 뒤 인증샷을 올렸다. 편의점 덕후의 전문가 패널로 나왔던 김도균도 관련 CF를 찍었다. 이소룡 덕후는 타 방송에 섭외됐다. 맥주 덕후도 맥주 관련 영상 콘텐츠를 제작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많은 취미와 덕후가 있다. 버스덕후, 지하철덕후, 철도덕후도 있지만 마을버스 덕후도 있다.
이지선 PD는 ‘능력자들’을 통해 하고 싶은 게 있다. 덕후가일반인을 이끌고 덕후 체험을 하게 하는 ‘능력자들’ 스핀오프 프로그램 제작이다. 관점은 서로 다르지만, 일반인이 덕후의 안내로 일주일간 덕후로 살아보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새로운 경험이자 자신을 고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지선 PD는 “세상이 만들어놓은 틀에 맞춰 강박적으로 살아야 하고 스펙도 쌓아야 한다”면서 “하지만 사회적으로 정해놓은 룰과 조금 다른 길을 홀연히 갈 수 있는 덕후를 새로운 놀이로 받아들여주는 문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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