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앞두고 거세지는 中의 경제압박…대만 기업들 “中 의존도 최소화” [대만 총통선거 D-3]

대만의 한 오토바이 운전자가 라이칭더 총통의 포스터를 지나치고 있다. [AFP]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대만 총통 선거(13일)가 목전에 다가온 가운데 중국이 노골적인 경제 보복을 가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큰 대만에게 경제 압박은 무엇보다 큰 위협이다. 대만 기업들은 이번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든 과거와 같은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경제 협력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으로 보고 출구를 모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상무부는 9일 홈페이지를 통해 ‘양안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중단과 관련해 “대만산 농수산물, 기계류, 자동차 부품, 섬유 등에 대한 관세 감면을 중단하는 추가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새해부터 대만산 화학제품 12개 품목에 대해 ECFA에 따라 적용하던 관세 감면을 중단하고 현행 규정에 따른 세율을 부과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는데, 이번에 관세 감면 품목을 확대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당시 천빈화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대변인은 “민진당이 대만 독립 입장을 고수하며 생각을 바꾸기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관련 부서가 규정에 따라 추가적 조치를 취할 것을 지지한다”며 추가 무역 제재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이번에 관세 감면 추가 조치 발표 후에도 상무부 대변인은 “민진당(민주진보당·집권당으로 친미·반중파)은 중국의 무역 규제를 해제하기 위한 어떠한 효과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정치적 농간을 부리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정치적 책동에 나섰다”고 비난했다.

ECFA는 중국과 대만 사이에 2010년 9월 발효된 양자협정이다. 이 협정을 바탕으로 지정품목에 대한 관세 인하·철폐를 약속한 조기 자유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만은 267개, 중국은 539개 품목에 대해 무관세나 낮은 관세 혜택을 받고 있다.

푸젠성 ‘시범자유무역구’ 지정 등 당근책에도…‘공급망 다변화’ 서두르는 대만
중국 남동부 푸젠성 샤먼의 한 항구 [AP]

이와 함께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푸젠성을 대만과의 통합 발전을 위한 ‘모범 지역’으로 만들 계획을 9일 발표했다. 푸젠성은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대만과 마주보고 있는 중국 남동부의 성이다.

중국 당국은 푸젠성을 시범자유무역구로 지정하고 이 지역에 지어진 대만 기업에 대한 지원과 무역 시 신속한 통관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대만은 중국의 경제 통합계획이 대만의 자금과 인력을 이용해 이익을 얻으려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SCMP는 선거를 앞두고 중국이 경제 압박 수위를 높이자 대만 기업들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출구 마련에 어느때보다 고심이 크다고 최근 보도했다. 특히 직격탄을 입은 대만 수산업체와 화학 제조업체들이 공급망 다변화를 서두르고 있다.

중국의 무역 규제는 대만 총통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노골적인 행보다. 창우에 대만 신베이시 탐강대학교 중국학 교수는 SCMP에 “중국의 경고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번 선거에서 반중·친미 성향의 집권당인 민진당이 승리할 경우 더 많은 경제 제재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만을 압박하기 위한 중국의 경제 제재는 잦아지는 추세다. 지난 2022년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것에 대한 항의로 중국 정부는 대만산 식품 3200개 가운데 2000개 이상의 수입을 중단한 바 있다. 음료업체 웨이취안, 과자 제조업체 궈워안이 등 100여개 대만 식품 기업이 타격을 입었다.

지난 2022년 6월에도 대만산 우럭에서 말라카이트 그린 등 금지 약물이 반복적으로 검출됐다며 중국은 대만산 우럭 수입을 중단했다.

당근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TAO)은 지난달 말 생선 수입 금지 조치의 일부를 해제하면서 “대만이 독립에 반대한다면 모든 경제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회유했다. 제재 해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기업 관계자들은 “중국의 수출 금지 때문에 공급처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경각심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같은 경제 제재가 이번 선거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왕예리 국립대만대학교 정치학 교수는 “대만 사람들은 중국의 경제 압박이 이미 익숙한 상태”라며 “(중국의 경제재제가) 투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 기업 “친중, 반중 누가 승리하든 中 무역 의존도 최소화 해야”
대만의 집권 여당 민진당의 한 지지자가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 [AFP]

다만 대만 기업 관계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누가 승리하든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를 최소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데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만 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42%, 2022년 39%에서 지난해 11월 기준 약 35%로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다.

첸유윙 대만 수산업 협회 회장은 “수산업계의 기존 세대는 쉬운 접근성을 이유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것을 꺼렸다”며 “그러나 지난 몇 년 간 이어진 중국의 경제 제재는 이들에게조차 경영 전략을 바꿀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민진당 라이칭더 총통 후보는 최근 유세에서 “중국과의 무역 관행은 불공정하다”면서 “대만 기업의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은 대만이 걸어야 할 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다슨치우 대만경제연구소 국제문제부 연구원은 “양안 무역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며 “(대만) 정부는 시장 다각화를 돕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했다.

하지만 대만의 모든 기업이 수출 시장 다변화에 열광하는 것은 아니다. 라이청이 중화민국 상공회의소 회장은 “중국이 추가 경제적 압박을 가할 수 있어 매우 우려된다”며 “우리 기업이 동남아시아로 수출 다각화를 시도하더라도 그 비중은 3~5%에 불과하며 중국 본토 시장이 여전히 가장 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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