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삼성전자의 영향력이 최근 크게 약화했다.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 중 4분의 1 수준을 넘어섰던 삼성전자 비중이 16%대까지 하락, 9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내려 앉으면서다. 삼성전자 주가 흐름만으로도 코스피 지수의 향방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고 알려졌던 것과 달리, 최근 두 달 간엔 상관계수가 ‘제로(0)’ 수준에 근접하면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종가 기준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344조4565억원으로 코스피 전체 시총 2096조6009억원의 16.43%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써 코스피 전체 시총 중 삼성전자 시총의 비율은 2016년 9월 12일 기록한 16.38% 이후 8년 1개월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앞서 2020년 3월 19일엔 삼성전자 시총이 코스피 전체 시총의 26.11%에 이를 정도로 커지기도 했다.
전날 삼성전자 주가는 직전 거래일보다 2.2%나 내린 5만7700원에 장을 마쳤다. 이는 ‘52주 신저가’에 해당하는 수치임과 동시에 지난해 1월 3일 기록한 5만5400원 이후 1년 9개월 만에 기록한 종가 기준 최저가다.
외국인 투자자는 전날도 삼성전자 주식을 2853억원 규모로 순매도했다. 30거래일 연속으로 ‘팔자세’를 이어가면서 외국인 투자자 연속 순매도세 기록을 매일 갈아치우고 있는 모양새다.
삼성전자 주가가 ‘역사적 저평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증권가의 분석이 잇따르는 가운데, 주가순자산비율(PBR) 역시 전날 종가 기준 1.11배까지 내려 앉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연중 최저점은 물론이고, 2011년 8월 22일(1.11배) 이후 무려 13년 2개월, 개월수론 158개월 만에 기록한 최저 수치다.
인공지능(AI) 칩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 밸류체인(공급망)에서 소외된 데 따른 삼성전자 하락세는 올해 3분기 ‘어닝 쇼크’로 한층 심화했다. 삼성전자의 위기가 HBM 개발 지연에 국한된 게 아니라 D램 등 레거시(범용) 반도체와 파운드리 등 디바이스솔루션(DS) 사업부 전반에 걸친 것임이 확인되면서다.
김용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최근 ‘삼성전자, 바닥권 주가에도 기회비용이 너무나 크다’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삼성전자 저가매수는 보유에 따른 추가 기회비용이 제한되는 초장기·극소수 개인투자가 일방에 국한된 단편적 전술 대응”이란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적잖은 전문가들은 차세대 HBM3E 제품의 엔비디아 납품을 위한 품질 인증 통과가 주가에 미칠 긍정적 영향에 기대를 걸고 있다. 송명섭 iM증권 연구원은 “HBM3E 인증의 성공적 통과 여부가 삼성전자의 단기 주가뿐만 아니라 내년 HBM 사업 부문의 본격 성장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엔비디아가 내년 수요를 대비해야 하는 올해 3분기에 삼성전자 HBM3E의 구매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가능성은 높아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된 종목은 삼성전자와 ‘반도체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국내 시총 2위 SK하이닉스다. 연초 코스피 전체 시총 중 비중이 4.83%였던 SK하이닉스는 전날까지 6.52%로 영향력을 빠른 속도로 높여가면서다.
헬스케어 섹터 대표주인 ‘황제주(주당 100만원 이상 종목)’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도 연초 대비 시총이 각각 34.22%(56조1563억→75조3733억원), 20.06%(33조8922억→40조6915억원) 씩 늘었다. 덕분에 코스피 중 비중도 각각 2.62%에서 3.60%로, 1.58%에서 1.94%로 높아졌다.
강력한 주주환원 정책으로 ‘밸류업’ 최대 수혜주로 꼽히는 금융 섹터의 KB금융, 신한지주도 돋보이는 종목들이다. 두 종목의 시총이 각각 연초 대비 71.22%, 40.63%씩 커진 가운데, 코스피 중 비중도 각각 1.01~에서 1.77%로, 0.94%에서 1.36%로 늘면서다.
상반기까지 글로벌 인공지능(AI) 랠리에 힘입어 국내 증시 상승세를 주도했던 반도체 섹터의 단독 질주가 사실상 막을 내린 가운데, 코스피 내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는 종목·섹터가 투자자들 사이에 이어지고 있는 차기 주도주 탑색에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신석환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8단과 12단 HBM3E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어 수익성 차별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내년과 내후년에도 AI 칩 수요의 고성장이 이어질 것을 고려하면 현재 주가 레벨에서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신동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