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리스크 확대와 세계 무역 질서 균열 [후쿠다 신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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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출범으로 반(反)세계화 움직임이 더욱 거세지며, 많은 국가가 국수주의적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관세 전쟁의 시작으로 기존 국제 경제 질서가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세계 경제는 자유무역 체제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뤄 왔지만 보호무역주의의 강화로 새로운 형태의 난관을 겪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경제는 자유무역 시스템 하에 여러 상호의존적 경제적 연결을 형성해 ‘노동 분업(division of labor)’의 이점을 누려왔다.

그러나 고도로 효율적인 글로벌 공급망 구조에서는 부분적인 붕괴만으로도 수요와 공급의 균형의 붕괴가 초래될 수 있으며 이러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의 붕괴는 각 국가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反)세계화 움직임과 보호무역주의 강화가 지속될 경우 세계 경제는 침체와 불안정성을 겪을 수 있다. 자유무역주의가 흔들리는 위기 속에서, 각국은 기존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재검토하고 새로운 글로벌 생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시급한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등의 권위주의 국가들과 미국, 일본, 한국, 그리고 유럽 국가들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들 간의 정치적 긴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고조되고 있다. ‘신(新)냉전(New Cold War)’이라고 부를 만한 새로운 시대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두 진영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 또한 세계 경제에서 점진적으로 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며, 자국 중심적 국익을 추구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출범은 이러한 동향을 가속화할 확률이 크다.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세계화의 혜택을 누려온 일본과 한국 같은 국가들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일본은 고조되는 지정학적 리스크와 관련해 두 가지 주요 과제를 떠안고 있다.

첫 번째 난관은 식량과 에너지와 같은 주요 원자재의 안정적 공급 확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으로 인한 중동 지역의 긴장 고조 이후, 새로운 지정학적 리스크가 발생하며 전 세계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일본은 엔화 가치의 급격한 하락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했다. 특히 일본 경제의 경우 생필품 가격 급등으로 인해 국민들의 생활 부담이 크게 증가했다. 원유나 식량 등의 주요 원자재는 대체가 어려워 세계 경제의 균열이 심화될수록 더욱 취약해진다. 만약 지정학적 위험이 글로벌 경제의 균열을 가속시킨다면 주요 원자재 가격은 큰 폭으로 변동해 소비와 생산 모두에 치명적인 타격을 미칠 것이다. 일본 경제의 경우 대부분의 주요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충격에 더욱 취약하다. 따라서 일본은 지속 가능한 대체 원자재 공급원을 확보할 전략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두 번째 난관은 첨단 기술 발전에 필수적인 전략적 제품의 보호를 통한 경제 안보 확보다. 최근 몇 년 동안 인공지능(AI), 양자 기술(quantum technology), 자동화, 바이오 기술, 그리고 녹색 전환(GX) 등의 첨단 기술 보호 및 개발이 주요 산업국 간 경제적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핵심 정책 과제로 부상했다. 특히 첨단 반도체 및 반도체 제조 장비는 다양한 최첨단 기술의 필수 요소여서 이들에 대한 수출 통제 필요성이 점점 더 부각되고 있다. 국제적 연구개발 경쟁이 제한되지 않는 자유무역은 글로벌 기술 발전의 촉진에 이상적이다. 그러나 국가 안보와 직결된 기술을 엄격히 보호하여 해외 유출을 방지해야 한다. 특히 주요 산업국들은 G7 정상회의 및 기타 국제 포럼에서 중국의 기술 절취 문제에 대응하는 방법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선진국에게 지식재산 보호, 중국으로의 강제 기술 이전 방지,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 및 경제적 위협 회피는 중대한 정책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유럽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전기차(EV), 태양광 패널, 그리고 저장 배터리 등의 핵심 산업이 중국의 과잉 투자, 과잉 생산, 그리고 투매(dumped exports)로 위협받고 있다. 언급한 제품들은 탄소중립 사회 실현에 필수적인 요소이므로, 중국의 행보는 각국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또한, 아세안(ASEAN)과 같은 신흥 경제권에서는 중국 기업들이 수출 통제를 우회하고자 새로운 생산 기지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주요 산업국은 이러한 변화에 대해 경제 안보 차원에서 신속히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 유럽, 일본, 그리고 한국이 개별적으로 이러한 위협에 대해 대응할 경우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한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을 방지하려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적극적인 공동 연구에 참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한 산업 및 기술 협력, 수출 통제, 그리고 투자 촉진을 목적으로 하는 공조를 할 필요가 있다. 두 진영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과 포괄적이고 발전된 경제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보호무역 경제 블록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등의 경제 협력 체제를 보다 높은 수준으로 개혁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10월 세계무역기구(WTO)가 발표한 세계 무역 전망(World Trade Outlook)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세계 무역량(전 세계 수출과 수입의 합산)은 2.7%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2025년에는 3.0% 성장할 전망이다.

그러나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며 무역 균열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미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 갈등으로 미·중 무역량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특히, 2017년 첫 번째 트럼프 행정부 출범 당시 20%를 크게 상회했던 미국의 중국 수입 의존도는 작년 약 13%로 급감했다. 두 번째 트럼프 행정부가 새로운 관세 정책을 도입할 경우 무역 균열이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일본과 한국의 무역량은 최근 몇 년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였으나, 일본과 한국이 직면한 국제 무역 균열은 상당히 증가한 바 있다. 동아시아의 공급망의 급격한 발전으로, 중국은 그간 일본과 한국의 최대 수출국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새로운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며 2022년을 기점으로 중국의 무역 비중은 감소한 반면, 미국의 무역 비중은 점차 증가했다. 현재 미국은 일본과 한국의 최대 수출 대상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은 중국과 신흥 아시아 경제권과 공급망을 구축하여 경제성장을 이뤘으나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정치적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지정학적 리스크의 확대에 따라, 기존 공급망을 재편하고 특정 국가, 특히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 새로운 글로벌 생산 시스템의 구축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공급망은 분업의 이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제적 합리성을 기반으로 점차적으로 발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공급망의 단기적 재편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신냉전 시대에 정치적 상황을 외면하고 단기적인 경제적 이익만을 우선할 수도 없다. 반면에, 정치적 상황을 우선시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면 새로운 생산 시스템은 지속 가능성을 잃고 결국 정치적/경제적 타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치적 긴장이 지속될 경우,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의 핵심 요소인 기존 공급망이 와해되면서 무역 이익이 위협받을 수 있다. 따라서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국가들은 이제 이 딜레마에 대한 균형 잡힌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두 번째 트럼프 행정부가 지정학적 리스크와 글로벌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며, 새로운 관세 경쟁이 가져올 결과 역시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심각한 경제 둔화를 방지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신냉전 시대에 회복력이 강한 공급망을 재편하는 장기적인 경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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