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우크라 충돌에…계산 복잡해지는 유럽 극우 ‘분열’

MEGA 구호 외치며 트럼프 지지…‘민주’ 유럽 위협하는 러 대수롭지 않게 여겨
로이터 “포퓰리스트들, 단일 집단 아냐…EU서 영향력 제한하는 요인 돼”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정상회담 중 설전을 벌이고 있다. [AFP]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백악관 정상회담 파국’을 바라본 유럽의 극우 인사들이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일부 극우 세력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을 환영하며, 그가 소수 집단이었던 극우세력을 주류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또한 일론 머스크가 주장한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Europe Great Again·MEGA)”라는 구호에도 동조해 왔다. 그러나 다른 일부는 트럼프가 젤렌스키를 질책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민주주의 유럽에 가하는 위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트럼프는 젤렌스키와 백악관에서 충돌한 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 지원을 전격 동결했다. 트럼프의 평화 계획과 관련해 젤렌스키는 미국이 휴전의 일환으로 안보 보장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에 트럼프는 강한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지난달 총선에서 2위를 차지한 후 트럼프를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티노 크루팔라 AfD 공동대표, ‘극우’ 정치인인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 등은 트럼프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반면 나이젤 패라지 영국 개혁당 대표, 크지슈토프 보사크 폴란드 정치인 등은 트럼프의 유럽 및 우크라이나에 대한 냉담한 태도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조심스러운 지지를 표명했다. 이들은 평화를 위해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일부 양보해야 한다고 시사하기도 했다.

헝가리의 민족주의 성향 오르반 총리는 트럼프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제외한 채 진행되고 있는 트럼프의 협상 방식을 지지하고 있다. 오르반 총리는 트럼프와 젤렌스키와의 정상회담 뒤 엑스(X·옛 트위터)에 “트럼프는 용기있게 평화를 위해 싸웠다. 비록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을지라도”라고 말했다.

티노 크루팔라 AfD 공동대표도 “EU와 독일이 중재자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결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해) 합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fD의 튀링겐주 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뵈른 회케는 백악관에서의 충돌이 젤렌스키의 책임이라며 “그(젤렌스키)가 미국에서 자신의 호스트(트럼프)를 모욕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한편, 스페인 극우 정당 복스(Vox)의 한 내부 관계자는 “유럽 내 일부 극우 정당들이 푸틴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우리 유권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고 이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푸틴을 공격해야 하는가, 아니면 트럼프의 푸틴에 대한 시각에 맞춰야 하는가”라고 덧붙였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폴란드의 극우 정당 ‘콘페데라치야’의 한 인사는 트럼프와 푸틴을 모두 강하게 비판했다. 크지슈토프 보사크 콘페데라치야 공동대표는 페이스북에 “트럼프는 선거운동에서의 공약과 그의 기대와는 달리 푸틴과의 신속한 평화 협정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 전쟁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백악관이 아니라 푸틴이 결정한다”고 말했다.

나이젤 패라지 영국 개혁당 대표도 엑스에서 젤렌스키의 입장을 지지하며 “평화 계획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우크라이나가 적절한 안보 보장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외교적으로 볼 때 젤렌스키는 매우 서툴게 대처했다”고 영국 LBC 라디오에 출연해 비판하기도 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들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2일 영국 런던 랭커스터 하우스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AFP]


로이터는 “이러한 입장 차이는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단일한 집단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며 “이는 유럽연합(EU) 정치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EU에 반대하는 극우 세력을 결집시키려는 머스크의 ‘MEGA’ 운동이 가진 한계를 드러낸 것이고 로이터는 지적했다.

런던 킹스칼리지의 알렉산더 클락슨 유럽학 교수는 “극우 정당들이 트럼프와 공개적으로 충돌하지는 않지만, 유럽 통합을 점점 더 받아들이면서 그와 거리를 두게 되는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날 우크라이나와 미국이 종전 협상을 위한 실무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고 우크라이나 고위 관리는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두 정상 간 백악관 회담이 파국으로 끝난 뒤 고위 군사 원조를 전면 중단하자 전날 엑스에 올린 글에서 “상황을 바로잡을 때”라며 미국과 다시 협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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