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 국내 M&A 봇물…IB업계 뜨거운 화두 ‘안보심사’

국내 FDI 안보심사 3년간 5건 불과
기술보호 중심 설계…경제안보 취약
외국 자본 규제 vs 시장 위축 ‘팽팽’
미국 등 해외도 안보심사 강화 흐름


인수·합병(M&A) 시장에 딜은 넘쳐납니다. 멀리서 보면 다 좋아 보입니다. 화려한 성장 스토리, 그럴듯한 숫자.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물음표가 생깁니다. “왜 지금일까?” “이 가격이 맞나?” “이 회사 말대로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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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 자본에 우리나라처럼 문을 활짝 열어둔 나라가 없습니다. 국가 전략 측면에서 외국 자본의 진입을 규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토종 사모펀드 운용사 관계자)

#. “지금은 해외 자본을 적극 끌어들여 한국을 아시아의 투자 허브로 키우는 전략이 필요해요. 규제하기보다는 파이를 키우는 게 국가 경쟁력에 더 좋습니다.” (대형 사모펀드 관계자)

외국 자본의 국내 기업 인수·합병(M&A)을 둘러싼 안보 심사가 ‘확대냐, 현행 유지냐’의 기로에 섰다. 국회에서 심의 대상을 대폭 넓히는 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IB(투자은행) 업계의 관심은 향후 향방에 쏠린다.

지난 3년간 실제 안보심의 실적은 단 5건에 그치는 등 외국 자본 투자를 규제할 명분은 충분하다. 다만, 규제 강화가 자칫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그 찬반 갈림길에서 이제 답을 내릴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외국인 투자 늘었지만, 안보심사는 제자리

25일 헤럴드경제의 요청으로 산업통상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23년~2025년) 외국인투자 안보심의 전문위원회(전문위) 사전검토 사례는 총 5건이다.

▷2023년 2건 ▷2024년 1건 ▷2025년 2건으로, 모두 조건부 투자허용을 받았다. 2022년 신설된 전문위 연도별 심의 건수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이는 현재 국회에서 안보심의 제도를 법률로 상향하고 심사 범위를 소수지분·우회투자까지 확대하는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제도 확대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시점에 실제 운용 실적이 베일을 벗은 것이다.

현행 제도에서 안보심사는 ▷외국인 투자자의 직접 신고 ▷주무부 장관 또는 국가정보원장의 요청 ▷산업부 장관의 직권 상정 중 하나에 해당할 때 개시된다. 전문위 사전검토를 거쳐 외국인투자위원회가 최종적으로 투자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구조다.

그러나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와 비교하면 심사 건수는 제한적이다. FDI는 2023년 327억1400만달러, 2024년 345억7000만달러, 2025년 360억5000만달러로 매년 증가했다. 3년 사이 10% 이상 늘었지만, 안보심사 실적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인 셈이다.

기술보호에 머문 제도, 경제안보 사각지대

전문가는 이 같은 괴리가 한국 제도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FDI는 국내에 법인이나 공장을 새로 짓는 그린필드형과 기존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M&A형으로 나뉜다.

한국은 M&A형 외국인투자 가운데 ▷기업 의결권 50% 이상 취득 ▷방위산업·전략물자·국가기밀·국가핵심기술 등 6개 분야에 해당하는 경우 등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안보심사 대상이 된다.

첨단기술 기업이라도 경영권을 확보하지 않거나, 법상 지정되지 않은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라면 심사망을 비껴갈 수 있는 구조다.

법무법인 지평의 국제그룹 그룹장을 맡고 있는 정철 변호사는 “현행 안보심사 대상은 사실상 ‘기술 보호’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경제안보 관점이 충분히 반영되기 어렵다”며 “인공지능(AI), 데이터, 에너지 인프라, 핵심 광물 등 공급망 전반으로 심사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분율 기준도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10% 지분으로도 기업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일정 지분율을 기준으로 설정하기보다 ‘실질적’ 지배력을 점검해 심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중국·러시아 매출까지 살펴보는 미국

해외는 어떠할까. 미국의 기준은 훨씬 넓다.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는 지배권 확보 여부와 관계없이 TID 사업이면 모두 심사 대상으로 삼는다. TID는 핵심기술(Technology), 인프라(Infrastructure), 데이터(Data)의 약자로 핵심기술 14개 분야와 핵심 인프라 28개 유형을 구체적으로 정해 관리한다. 군사시설 인근 부동산 거래까지 심사 대상이다.

실제 미국 심사 경험이 있는 기업들은 한국과의 차이를 크게 느낀다고 전한다. 주주변동 이후 주요사항 변화뿐만 아니라 주주 구성에 중·러 자본 존재 여부, 그리고 해당국에 대한 수출 비중과 향후 진출 계획까지 세세하게 질문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겪은 한 기업 관계자는 “서류 제출부터 CFIUS 인터뷰, 승인까지 약 6개월 정도 걸렸다. 인수 이후 운영 계획은 물론 기존 사업도 중국, 러시아와 관련이 없다는 점을 소명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CFIUS 의장은 미국 재무부 장관이다. 미국이 M&A를 단순 거래가 아닌 국가 전략 차원에서 본다는 의미”라며 “최근 한국의 반도체, AI 기업 뿐 아니라 에너지, 통신 등 인프라 기업에 대해서도 해외의 관심이 크다. 무조건 비싸게 파는 것보다 해당 기업이 해외 자본에 넘어갔을 때 국가가 ‘통제’가 가능한 지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보심사 강화는 특정 국가만의 흐름이 아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현재 안보심사 대상으로 지정된 핵심 업종은 방위·반도체·배터리·핵심 인프라 등 약 50여개다. 외국인 투자자가 지분을 1%만 취득해도 심사 대상 업종이라면 검토를 받아야 한다. 유럽연합(EU) 역시 2019년 3월 ‘외국인투자 심사규정’을 채택했고, 2024년 1월 이를 개정해 EU 회원국에 외국인투자 심사제도 의무화를 권고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국가 안보 목적의 FDI 심사 제도를 도입한 국가는 2015년 21개국에서 2024년 46개국으로 2배 넘게 증가했다. 미국은 2018년 외국인투자 위험심사 현대화법 통과, 일본의 경우 2019년 외국환 및 외국무역법 개정이 전환점이 됐다.

규제 강화는 미·중 패권 경쟁, 코로나19로 드러난 공급망 불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변화가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기술 유출 방식도 인력 빼가기에서 기업 인수, 합작법인, 소수지분 투자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안보심사 강화 흐름은 우방국에도 예외가 없다. 대표적 사례가 일본제철의 미국 US스틸 인수전이다. 일본제철은 2023년 12월 미국의 철강기업 US 스틸 인수 계획을 발표했으나, CFIUS 심사 등으로 2년 넘게 절차가 지연됐다. CFIUS와 정치권은 철강은 군함, 탱크 등에 사용되는 전략 물자로 외국 기업의 미국 철강 기업 인수는 미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해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일본제철은 US스틸의 ‘황금주’ 1주를 미국 정부에 부여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국가안전보장협정을 맺고 나서야 인수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단 1주만으로 회사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이다. 또 US스틸 본사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유지, 이사회 구성원 과반 미국 국적자 선정 등 조건도 포함됐다.

안보심사 확대 논의…데이터·인프라까지 심사해야

국내에서는 현재 정부와 국회를 중심으로 법 개정 논의가 진행 중이다. 제22대 국회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외국인투자 촉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시행령에 규정된 외국인투자 안보심의를 법에 명문화하고 국내 기업을 간접 지배하는 우회투자까지 심의 대상으로 포함한 것이 특징이다. 또 심의를 거치지 않고 주식을 취득할 경우 처벌하는 내용도 담겼다.

안보심사 범위를 둘러싼 문제의식은 정부를 넘어 민간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최근 발간한 ‘외국인투자(FDI) 안보심사제도 개선과제’ 보고서는 안보심사 대상이 되는 기준을 대폭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사 대상을 데이터, 인프라, 공급망, 광물, 디지털 기반 산업까지 넓히고 소수 지분 취득, 그린필드 투자, 간접 지배 통한 우회투자도 심사해야 한다는 취지다.

살아나는 M&A에 찬물 우려…투자 위축 반발도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규제가 ‘거래 절벽’을 불러올 수 있다는 비판이다. 매각 대상이 국내로 한정되면 엑시트(투자자금 회수)가 어려워지고 최근 활발하게 진행되는 대기업의 리밸런싱 및 구조조정에도 빨간 불이 들어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PEF 관계자는 “해외자본 규제는 ‘엑시트 플랜’ 성공 가능성을 크게 낮춘다. 특히 국내 사모펀드의 경우 출자자(LP)가 대부분 연기금, 공제회여서 투자회수 지연은 국민적 손해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대기업 리밸런싱도 문제다. 국내 전략적 투자자(SI)에게 팔자니 경쟁이 우려되고, 국내 PEF에 팔자니 자금력이 부족하다”며 “최근 사업부 분할거래(카브아웃 딜)은 조단위로 규모가 큰 편인데 해외 원매자를 막으면 매물을 소화하지 못한다. 제때 리밸런싱을 하지 못하면 대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자칫 강대국과 ‘통상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대형 PEF 관계자는 “안보심사 강화의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안보심사가 (인수를 하려는) 국내 자본과 해외 자본 사이 형평성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 강대국의 압박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벽’을 세우는 흐름에서 벗어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또 다른 대형 PEF 관계자는 “일본은 갈라파고스화 됐다. 따라야 할 사례라고 보기 어렵다”며 “중국과 일본 투자는 어렵고 인도는 AI, 반도체 등 첨단 산업 발전 수준이 낮다. 결국 아시아의 유일한 투자처는 한국뿐인데 이럴 때 글로벌 자본을 끌어들여 첨단 기업의 ‘허브’로 만드는 게 국가경쟁력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안보와 투자 유치 사이의 균형을 어디에 둘 것인지를 두고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재 발의된 법안은 시행령에 규정된 안보심의 근거를 법률에 명시하고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한 법안”이라며 “법 통과를 위해 국회와 협력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의 위축을 가져오지 않으면서도 안보심사가 강화될 수 있도록 의견을 수렴 중”이라고 밝혔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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