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앤뷰]“아메바式으로 1년 내내 교섭…파업도 쪼개기로”…기업들 패닉

노란봉투법 시행 한달
대기업 첫 원청 사용자성 인정
하청노조 교섭단위 분리 길 열려
창구 단일화 원칙 흔들…대기업 복수 교섭 구조 불가피
연중 교섭·생산 차질 가능성
이제 관심은 ‘1호 쟁의 사업장’…쪼개기 파업 현실화 촉각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법률) 시행 첫날인 지난달 10일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에서 양경수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고은결·정경수 기자]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2·3조 개정안) 시행(3월 10일) 한 달을 맞은 가운데 경영계가 우려해온 ‘쪼개기 교섭’이 현실화됐다. 대기업 중 처음으로 원청 사용자성이 인정된 데 더해 하정 노동조합 간 교섭 단위 분리가 이뤄진 사례가 나오면서다. 기업들이 다수 하청 노조의 개별 교섭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처하며, 산업계에서는 연중 내내 교섭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1호 교섭단위 분리’에 이어 ‘1호 쟁의 사업장’ 탄생이 향후 관전 포인트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노조 간 갈등도 분리 사유”…쪼개기 교섭 허용 ‘파장’=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8일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과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이 포스코의 다른 하청 노동 조합과 교섭단위를 분리해달라는 신청을 받아들였다. 동시에 포스코의 하청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성도 인정했다. 이에 따라 포스코는 최소 3개 하청노조와 각각 교섭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원청 노조까지 포함하면 매년 4개의 노조와 단체 교섭을 해야 하는 셈이다.

이번 결정이 산업계에 큰 충격을 미친 이유는 정부가 노란봉투법 시행 전 강조했던 ‘교섭 창구 단일화’ 원칙이 사실상 흔들렸기 때문이다. 경북지노위는 노조 간 갈등 가능성, 이익 대표성, 업무 성격 등을 기준으로 판단해 교섭 단위 분리를 결정했다. 그동안 교섭단위 분리는 근로조건이나 고용 형태의 큰 차이가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허용됐다. 그러나 개정된 노조법 시행령이 ‘노조 간 갈등 가능성’ 등을 분리 결정의 기준으로 삼으며 문턱이 급격히 낮아졌다. 교섭단위가 잇따라 나뉘어 개별교섭으로 가면 기업들은 우려한 대로 수많은 쪼개기 교섭에 응해야 한다.

▶‘아메바식 교섭구조’ 관측도=특히 이번 판단에서는 원청 사용자성 인정과 교섭단위 분리가 동시에 적용됐다. 노동위는 산업안전 관련 사안에서 포스코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는데, 이는 민간 대기업에서 처음 나온 사례다. 전문가들은 사용자성 인정 자체는 어느 정도 예견된 흐름으로 보면서도, 향후 적용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은 예상된 수순이지만, 산업안전뿐 아니라 임금·복지 등 어떤 항목까지 교섭 의무가 인정될지는 앞으로 계속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교섭단위 분리 신청이 인용되며 대기업의 교섭 구조가 방대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경북지노위가 이번에 한노총과 민노총을 나눈 것뿐만 아니라 민노총 내 금속노조와 플랜트노조까지 별도 교섭 단위로 인정하며, 다수 대기업은 원청 노조를 포함해 적어도 2곳의 하청노조와 교섭이 불가피해진 셈이다. 박 교수는 “하청 구조 아래 복수노조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교섭단위까지 나뉘면 동일한 사안을 두고도 여러 차례 교섭이 반복되는 이른바 ‘아메바식 분열’ 양상을 보일 수 있다”며 “산업안전과 같은 사안은 사업장 전체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합리적인데도, 교섭단위가 분리되면 각각 별도의 교섭을 거쳐야 하는 비효율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쪼개기 교섭’ 넘어 ‘쪼개기 파업’ 우려…생산력 타격 불가피=아울러 쪼개기 교섭에 따라 사업장 파업까지 수시로 빈번해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교섭단위가 나뉘면 교섭이 결렬될 때마다 각각 쟁의행위로 이어질 수 있단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존에는 하나의 교섭이 하나의 파업으로 연결됐다면, 앞으로는 교섭단위 수만큼 파업 가능성이 생기는 구조가 된다”고 말했다. 이에 현장에서는 향후 관전 포인트가 실제 교섭과 쟁의행위로 이어지는 첫 사례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포스코 사례를 기점으로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특히 원·하청이 하나의 생산 체계로 묶여 있는 철강·조선·자동차 산업에서는 리스크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 있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일반화된 산업 전반으로 쪼개기 교섭이 확산되면, 상시적으로 생산력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단 것이다. 이들 산업은 일부 하청 공정이 멈추면 전후 공정이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 구조다. 하나의 작은 공정이 흔들리면 전체 생산이 영향을 받는 만큼, 원청 입장에서는 불확실한 리스크가 크게 늘어난다.

▶“교섭 질서 큰 틀 흔들리면 안정성 훼손”=노조 간 경쟁 역시 새로운 변수로 꼽힌다. 노조들은 서로 다른 요구를 제시하며 경쟁적으로 교섭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교섭 경쟁이 심화될 경우, 한쪽의 요구 수용이 다른 노조의 추가 요구로 이어지는 ‘재교섭 구조’가 반복되며 노사 갈등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동시에 노조 입장에서는 오히려 교섭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원래 교섭창구 단일화는 노조가 힘을 모아 교섭력을 높이고, 사용자도 일관된 기준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였는데, 지금은 그와 반대로 교섭이 잘게 쪼개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제도 취지와 산업 현장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박 교수는 “하청 노동자의 권리 보호라는 목적은 이해되지만, 교섭 질서의 큰 틀이 흔들릴 경우 노사관계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며 “이 같은 흐름이 누적되면 노사관계가 파탄에 이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경영계도 사용자성 인정 기준과 교섭단위 분리 요건을 보다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사관계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위해 판단이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단순한 업무 관여만으로 사용자성을 확대 해석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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