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디지털자산’ 열차는 달리고 싶다


“성심당이 연매출 2000억원 규모로 성장한 계기에는 2000년대 초반 KTX 개통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 대학교에서 열린 AI·블록체인 비즈니스 모델 경진대회에서 금융권 관계자가 꺼낸 말이다. 지역 빵집이 전국에서 제일가는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좋은 상품만큼이나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교통망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는 블록체인을 전 세계를 연결하는 ‘고속철도망’에 빗댔다. 금융상품이 열차라면 금융사는 열차가 안전하게 달리도록 시스템을 운영하는 오퍼레이터라는 설명이다.

이를 디지털자산 시장에 대입하면 지금 한국에 부족한 것은 열차가 아닌 신호 체계다. 스테이블코인, 토큰증권(STO), 토큰화 실물자산(RWA)처럼 열차에 실을 금융상품은 이미 시장에 나올 채비를 마쳤다. 그러나 이를 제도권 금융 안에서 운행하게 할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여전히 지연전에 머물러 있다. 지방선거 국면으로 인해 상반기 입법 기대는 물론 연내 처리 기대마저 옅어진 상태다.

그 사이 해외 시장은 앞서 달리고 있다. 글로벌 크립토 벤처캐피털(VC) 투자는 지난해 200억달러를 넘어섰고, 투자 무게중심도 단순 코인 거래가 아니라 결제·정산·수탁·토큰화 인프라로 옮겨가고 있다. 시장 분석 플랫폼 RWA.xyz에 따르면 토큰화 RWA 시장 규모는 약 337억달러로 전년 대비 167% 넘게 커졌다. 원화 스테이블코인도 이미 역외에서 발행돼 하루 약 3억원 규모의 거래량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해시드오픈파이낸스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인프라를 겨냥한 레이어1 블록체인 ‘마루’ 테스트넷을 공개했고, 두나무의 ‘기와’ 등 토종 메인넷이 속속 등장했다. 한국 금융사들도 국내외 사업자들과 기술검증(PoC)을 진행하며 디지털자산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법제화가 더디게 진행되는 사이 사업의 출발지는 국내가 아닌 홍콩, 미국 등 해외로 옮겨가는 추세다.

이날 경진대회에서는 “STO는 우리 동네 성심당을 찾아 전 세계적으로 유통하는 것과 같다”는 발언도 나왔다. 지역의 좋은 자산이 디지털 인프라를 타고 글로벌 투자자와 만날 수 있다는 의미다. 민간은 이미 열차에 실을 자산과 이를 운행할 사업 모델을 준비하고 있다. 문제는 더딘 신호 체계다. 법제화가 늦어질수록 한국 금융은 제도 불확실성 때문에 신식 열차를 역사에 세워두는 비용을 치르게 된다. 그 비용은 결국 한국 금융시장이 놓치는 기회비용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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