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자서 깜빡한 기억, 지워진 게 아니었다?…막힌 부분, 빛 쬐자 되살아나[후암동 논문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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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장윤우 기자] 바쁜 일상에서 극심한 수면 부족을 겪은 다음 날, 분명히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람이나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려 당황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단순히 피로 때문에 뇌 기능이 일시적으로 떨어진 줄 알았던 ‘망각’ 현상이, 사실은 기억 자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뇌 속 특정 공간에 ‘숨겨진 상태’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약물이나 빛 자극을 통해 이 잠긴 기억을 다시 꺼낼 수 있다는 사실도 동물실험으로 증명됐다.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2026년 6월호에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 로버트 하베케스(Robbert Havekes) 교수 연구팀은 수면 부족이 장기 사회적 인지 기억에 미치는 영향과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신경과학적 메커니즘을 담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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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못 자면 뇌가 사회적 관계를 잊는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사회적 기억’이다. 특정 사람이나 개체를 알아보고 그 관계를 유지하는 능력으로,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기능이다. 이 기억이 무너지면 알츠하이머 같은 질환에서 흔히 나타나는 사회적 기억상실로 이어진다.

연구팀은 쥐를 낯선 쥐와 10분간 만나게 한 뒤, 절반의 쥐는 6시간 동안 잠을 재우지 않았다. 하루 뒤 다시 같은 쥐를 마주치게 했을 때 결과가 달랐다.

수면 부족이 쥐의 사회적 기억에 미치는 영향. (G·H, 첫 만남) 기억을 형성하는 첫 소통 단계에서는 잠을 정상적으로 잔 쥐(NSD)와 잠을 못 잘 쥐(SD) 모두 기존 동료보다 처음 보는 낯선 쥐(초록색 바)에게 높은 호기심과 선호도를 보였다. (I·J, 두번째 만남) 24시간 후 다시 만났을 때, 잠을 푹 잔 쥐(NSD)는 상대를 기억해 호기심이 사라진 반면, 소통 직후 6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한 쥐(SD)는 상대 쥐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처음 본 것처럼 다시 과도하게 오랜 시간 냄새를 맡으며 탐색(초록색 바)하는 기억상실 행동을 보였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2026년 6월호]


잠을 잔 쥐는 전날 만났던 쥐를 알아보고 탐색 시간이 줄었다. 잠을 못 잔 쥐는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다시 열심히 탐색했다. 겉으로 보면 기억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연구팀은 수면 부족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두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빛으로 뇌 속 기억 세포를 다시 켰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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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경험을 저장하는 신경세포 집합을 ‘기억 세포(엔그램)’라고 부른다. 어떤 경험을 할 때 함께 활성화된 세포들이 그 기억을 담당한다는 개념이다.

연구팀은 교류 당시 활성화된 기억 세포에 형광 표지를 달고, 나중에 빛으로 이 세포들을 다시 자극하는 광유전학 기법을 활용했다.

수면 부족으로 기억상실 상태가 된 쥐의 기억 세포를 빛으로 재활성화하자, 쥐는 전날 만났던 쥐를 다시 알아보는 행동을 보였다. 기억이 완전히 지워진 것이 아니라 꺼내지 못하는 상태로 뇌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는 뜻이다.

더 놀라운 결과도 나왔다. 이 빛 자극을 단 한 번만 줬는데도 6일 뒤 기억 검사에서 해당 쥐는 그 개체를 여전히 알아봤다.

서랍 속에 물건은 그대로 있는데 열쇠를 잃어버린 상태였다면, 빛 자극은 그 잠긴 서랍을 한 번 억지로 열어줘 이후에는 스스로 열 수 있게 만든 셈이다.

빛으로 깨운 뇌 속 ‘기억 세포’의 실제 모습과 검증 데이터. (F, 뇌 세포 현미경 사진) 뇌 해마를 촬영한 사진. 다른 쥐를 만날 때 만들어진 ‘기억 세포(빨간색)’와 오늘 기억을 떠올릴 때 켜진 ‘활성 세포(초록색)’가 정확히 맞물려 노란색(원 안의 화살표)으로 빛나고 있다. (G·H·I, 기억 유지 상태) 잠을 못 자서 기억 능력이 망가진 쥐들도 뇌 속 기억 세포의 전체 개수(G, H)는 정상 쥐와 다름없이 보존되어 있다. 빛 자극을 주자 기억 세포들이 정확하게 정렬해 노란색 겹침 세포 비율(I)이 급증했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2026년 6월호]


기존 약물로도 잠긴 기억 풀렸다
연구팀은 실제 임상에서 쓸 수 있는 약물도 함께 검증했다.

현재 만성 폐쇄성 폐질환 치료제로 이미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로플루밀라스트(roflumilast)가 그 대상이었다. 이 약은 기억을 만드는 데 필요한 세포 안 신호물질이 분해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수면 부족 상태의 쥐에게 이 약을 투여하자 기억 손상이 예방됐다. 이미 기억상실이 생긴 쥐에게 기억 검사 30분 전에 투여해도 효과가 있었다. 잃어버렸던 기억이 일시적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연구팀은 수면 부족으로 망가진 기억의 연결 통로를 약물이 다시 열어준 것으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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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기억은 섞이지 않는다
이번 연구에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쥐가 같은 공간에서 이틀에 걸쳐 서로 다른 두 마리를 만났을 때, 각각의 기억이 뇌 속에서 따로 저장된다는 것이다.

연구팀이 두 번의 만남에서 각각 활성화된 기억 세포에 서로 다른 색깔의 형광 표지를 붙여 확인한 결과 두 기억을 담당한 세포 집합은 약 30% 정도만 겹쳤다. 수면 부족 여부와 관계없이 이 비율은 달라지지 않았다.

빛으로 첫 번째 만남의 기억 세포만 자극하면 쥐는 첫 번째 쥐만 알아봤다. 특정 기억을 선택적으로 꺼내는 것도 가능했다. 수면 부족은 기억 세포가 처음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수면 장애·치매 치료의 새 실마리

알츠하이머. [게티이미지뱅크]


기억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접근이 차단된 상태라는 결과는 알츠하이머 초기 동물 모델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보고된 바 있다.

이번 연구에서 효과를 보인 로플루밀라스트는 이미 사람에게 쓰이는 FDA 승인 약물인 만큼, 수면 장애나 노화로 인한 기억력 감퇴에 적용할 가능성도 열렸다.

연구팀은 “향후 수면 장애나 노화 등으로 인한 기억력 감퇴를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의학적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연구팀은 이번 실험이 수컷 쥐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한계를 밝혔다. 사람에게 적용하기까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참고논문


DOI : 10.1126/sciadv.adu9805

논문 제목 : Adithya Sarma et al. ,Restoring access to long-term social recognition memories disrupted by sleep deprivation.Sci. Adv.12,eadu9805(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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