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도양 한가운데에만? 480여 마리 고래 사체 발견된 심해 ‘공동묘지’에 숨겨진 비밀[후암동 논문 연구소]

(A) 5610m 깊이에서 실시된 잠수에서 발견된 길이 3m의 밍크고래 사체. (B) A의 노란색 상자 부분을 확대한 사진으로 고래 두개골 에 붙어 있는 불가사리(흰색 화살표)와 비늘벌레(노란색 화살표)를 확인할 수 있다. (C) A의 흰색 상자 부분을 확대하여 보여주는 사진으로 뼈를 먹는 벌레의 투명한 관들이 다수 보인다.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 2026년호]


[헤럴드경제=장윤우 기자] 인도양 수심 7000m 심해에서 530만 년 전부터 형성된 세계 최대 규모의 고래 무덤이 발견됐다. 길이만 1200km에 달하는 이 구간에는 최근 가라앉은 사체와 수백만 년 전 화석 등 고래 유해 480여 기가 밀집해 있어, 심해 생물들을 잇는 거대한 ‘생명 통로’ 역할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 2026년호에 중국 과학원 심해과학공학연구소 펑샤오퉁 박사 연구팀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수심 7002m, 지금껏 아무도 본 적 없던 장면


(D) 5609m 깊이에서 실시된 잠수에서 발견된 부리고래 사체. (E) D의 흰색 상자 부분을 확대하여 보면 세 마리의 베시코미드 이매패류(흰색 화살표)와 불가사리(노란색 화살표)가 보인다. (F) 4625m 깊이에서 기록된 고래 뼈. (G) 6788m 깊이에서 관찰된 가장 깊은 곳에 가라앉은 고래 사체.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 2026년호]


발견은 2023년 2~3월 탐사에서 이뤄졌다. 연구팀은 최대 수심 1만1000m까지 잠수할 수 있는 유인잠수정을 탑재한 연구선으로 32회의 해저 탐사를 수행했다. 총 127km의 해저를 훑으며 485개 지점에서 고래 뼈와 사체를 확인했다.

이 중 5기의 현대 고래 사체와 476기의 고래 화석이 1200km에 걸쳐 늘어서 있었다. 연구팀이 유해 분포 밀도를 환산한 결과 화석이 집중된 구역은 1㎢당 760마리꼴이었다.

처음 뼈가 나온 곳은 수심 7002m 지점이었다. 지금까지 고래 사체가 발견된 가장 깊은 곳은 남서 대서양 수심 4204m였다. 이번 발견은 기존 기록보다 2800m 이상 깊다.

고래 사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고래 사체가 해저에 가라앉으면 수십 년에 걸쳐 분해되는 동안 주변에 독특한 생태계가 형성된다. 영양분이 극도로 부족한 심해에서 고래 한 마리의 사체는 주변 생물에게 수십 년치 먹이를 공급한다. 과학계가 이를 ‘바다 밑의 오아시스’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번 탐사에서도 뼈를 갉아 먹는 좀벌레, 뼈에서 스며 나오는 황 성분으로 살아가는 조개류, 불가사리, 갑각류 등 심해 특수 생물들이 대거 확인됐다.

왜 하필 이 구간에만 쌓였나


주황색 원은 고래 화석이나 고래 사체가 관찰된 잠수 지점. 원의 크기가 클 수록 발견된 고래 표본 수가 많다.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 2026년호]


전 세계에서 이런 장소가 확인된 곳은 지금까지 70곳 남짓에 불과했다. 연구팀은 유독 이 구간에만 고래 유해가 집중된 원인을 지형과 고래의 생태적 특성, 그리고 이 바다만의 독특한 환경에서 찾았다.

이 해구는 약 6000만 년 전 호주와 남극 대륙이 갈라지며 생긴 V자형 협곡 구조다. 깊게 파인 협곡 자체가 가라앉는 고래 사체를 바닥으로 끌어모으는 깔때기 역할을 했다.

부리고래. [게티이미지뱅크]


발견된 화석 대부분은 깊은 바다에서 오징어를 사냥하는 부리고래 무리의 것이다. 이 고래들은 먹이를 쫓아 수심 1000m 이상까지 잠수한다. 생리적 한계에 가까운 잠수를 반복하다 탈진 등으로 죽으면 협곡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연구팀은 이 해역 특유의 느린 퇴적 속도도 원인으로 꼽았다. 이 지역 해저에는 100만 년에 0.55cm 이하의 퇴적물만 쌓인다. 한 번 가라앉은 뼈가 흙에 묻히지 않는 환경이다.

부리고래의 주둥이 뼈는 현존하는 척추동물 중 가장 밀도가 높아 부식도 느리다. 시간이 지날수록 뼈 표면이 철과 망간 산화물로 코팅되어 보존성이 더욱 높아져 수백만 년이 지나도 뼈가 그대로 남는다.

신종 고래와 미기록 심해 생물 무더기 포착


연구팀은 화석 33점의 연대를 분석했다. 뼛속에 남아 있는 특정 원소의 비율을 지질 시대별 바닷물 조성과 대조해 역추산하는 방식이다.

가장 오래된 화석은 526만 년 전 것으로 추정됐다. 이미 멸종한 부리고래 종의 뼈였다. 이 구역에서 고래 유해가 쌓이기 시작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최소 530만 년 전부터라는 의미다.

부리고래 화석.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 2026년호]


연구팀은 이번 탐사에서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멸종 고래 신종도 발견했다. 발견 장소의 이름을 따 ‘디아만티나 부리고래’로 이름 붙여졌다. 현생 부리고래류와 유사하지만 안와 돌기 부위가 날개처럼 크게 벌어지는 독특한 두개골 구조를 가졌다.

유기물이 남아있는 사체 5구 주변에서 연구팀이 확인한 동물은 총 35종이었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 종 수준까지 특정된 것은 조개류 한 종뿐이었고, 나머지 대부분은 아직 학계에 등록되지 않은 새로운 종으로 추정됐다.

1㎡당 최대 2840마리의 생물이 밀집해 있는 구간도 확인됐다. 불가사리의 일종인 ‘바다 데이지’가 수심 5600m대 고래 뼈에서 발견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530만 년째 이어진 생명의 징검다리


[게티이미지뱅크]


기존 가설에 따르면 고래 뼈는 먹이 공급처이자 다음 서식지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심해 열수 분출구나 찬 물이 솟아오르는 해저 지점에 사는 생물들은 스스로 멀리 이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번 발견을 통해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1200km에 걸쳐 고래 뼈들이 줄지어 이어진다는 것은 이 징검다리가 530만 년 동안 끊기지 않고 유지됐음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이와 유사한 집단 침전지가 남아프리카 연안, 이베리아반도, 남극해 크로제·케르겔렌 제도 주변 등 부리고래가 사는 다른 바다에도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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