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맛 없어서가 아니다…고양이가 밥을 남기는 진짜 이유 [후암동 논문 연구소]

고양이. 장윤우 기자


[헤럴드경제=장윤우 기자]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장면이 있다. 사료를 조금 먹다 그릇을 남기고 가버린다. 배가 불러서가 아니었다. 같은 사료를 치우고 새 사료를 부어주자 다시 달려와 먹었다.

그동안 이러한 행동은 고양이의 변덕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 행동은 배가 불러서가 아니라 같은 냄새에 질렸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최근 국제학술지 생리학 및 행동(Physiology & Behavior) 311호에 일본 이와테대 미야자키 마사오 교수 연구팀이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고양이가 밥을 다 먹지 않고 멈추는 것은 위장이 찼기 때문이 아니라 후각이 그 냄새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밥 먹는 고양이. [게티이미지뱅크]


고양이에겐 맛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연구팀은 건강한 고양이 12마리를 실험했다. 먼저 16시간을 굶긴 뒤 사료 20g을 10분간 내줬다.

고양이들은 배가 고픈 상태에서도 사료의 3분의 1가량만 먹고 멈췄다. 평균 6.8g이었다. 120번의 실험 중 그릇을 완전히 비운 경우는 8번뿐이었다.

사료를 남기는 이유를 밝히기 위한 실험은 10분간 밥을 주고 10분을 쉬는 것을 한 묶음으로, 총 여섯 번 반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실험 개략도. 사료 A는 선호도가 낮고 사료 F는 선호도가 높은 사료다. 실험 1과 실험 2에서는 6번 주기 동안 동일한 사료(각각 사료 A 또는 사료 F)를 제공했다. 실험 3에서는 6가지 다른 사료(A~F)를 순차적으로 제공했다. [국제학술지 생리학 및 행동(Physiology & Behavior) 311호]


고양이에게 같은 사료를 여섯 번 주자 먹는 양이 회차를 거듭할수록 뚝뚝 떨어졌다. 가장 맛있는 사료로 바꿔 실험해도 마찬가지였다. 맛과 상관없이 같은 걸 반복하면 섭취량이 줄었다.

반대로 여섯 번 모두 다른 사료를 주자 감소 폭이 확연히 줄었다. 총섭취량은 같은 사료만 줬을 때보다 훨씬 많았다. 심지어 가장 맛있는 사료 하나만 여섯 번 준 경우보다도 많았다.

실험 개략도. 동일한 음식을 반복적으로 제공한 후 새로운 음식을 도입했다. [국제학술지 생리학 및 행동(Physiology & Behavior) 311호]


이번엔 같은 사료를 다섯 번 준 뒤, 여섯 번째에 다른 사료로 바꿨다. 그러자 먹는 양이 다시 늘었다. 새로 준 사료가 원래 것보다 맛없는 종류였는데도 고양이들의 식사량이 늘었다.

고양이들은 맛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새로운 사료 자체가 식욕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맛보단 냄새에 민감했다


연구팀은 다시 먹기 시작한 게 맛 때문인지 냄새 때문인지 원인을 찾기 위해 추가 실험을 이어갔다.

연구팀은 특수한 이중 그릇으로 위 칸에는 원래 먹던 사료를 담고, 아래 칸에는 다른 사료를 넣되 구멍 뚫린 칸막이로 막았다. 이 방법으로 고양이는 아래 칸 사료를 먹지 못하고 냄새만 맡을 수 있다.

연구팀이 실험을 위해 고안한 이중 그릇. 아래 칸 사료는 냄새만 맡을 수 있다. [국제학술지 생리학 및 행동(Physiology & Behavior) 311호]


같은 사료를 다섯 번 먹어 시들해진 고양이에게 여섯 번째에 아래 칸의 냄새만 새것으로 바꿔주자 고양이는 다시 먹기 시작했다.

먹는 사료는 동일했지만 냄새가 달라졌다는 이유로 선호도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냄새를 그대로 두자 섭취량은 회복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역방향 실험으로 밥을 주는 사이사이 쉬는 시간에 같은 사료 냄새를 계속 맡게 했다.

그러자 이후 먹는 양이 더 크게 줄었다. 고양이는 냄새에 계속 노출될수록 그 냄새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고, 다시 먹을 마음도 사라진 것이다.

(B) 같은 사료 냄새만 맡게한 경우(파란색)와 아무 냄새도 나지 않게 한 경우(빨간색)의 사료 섭취량 비교. (C) 같은 사료 냄새만 맡게한 경우(파란색)와 다른 사료의 냄새를 맡게 한 경우(빨간색)의 사료 섭취량 비교. [국제학술지 생리학 및 행동(Physiology & Behavior) 311호]


사람에게도 비슷한 현상이 있다. 같은 음식 냄새를 계속 맡으면 그 냄새가 주는 만족감이 떨어진다. 뇌에서 보상을 담당하는 부위의 반응이 둔해지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고양이도 같은 방식으로 냄새에 익숙해지면 식욕이 꺼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고양이와 개는 정반대였다


같은 육식동물이지만 개는 정반대다. 개는 같은 먹이를 반복해서 줘도 잘 먹는다. 늑대의 후손인 개는 먹을 게 있을 때 한 번에 많이 먹는 습성을 물려받았다.

고양이는 다르다. 고양이의 조상인 아프리카 들고양이는 쥐나 새 같은 작은 먹이를 하루에도 여러 번 사냥하는 단독 사냥꾼이었다. 한 번에 조금씩, 여러 번 먹는 방식이다.

사냥하는 고양이. [게티이미지뱅크]


연구팀은 냄새에 쉽게 질리고 새로운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고양이의 습성이 이런 진화의 흔적이라고 봤다. 매번 다른 먹이를 사냥하던 조상의 방식이 오늘날 사료 그릇 앞에서도 그대로 작동하는 셈이다.

다만 연구팀은 이번 실험이 12마리를 대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진행됐고, 실험에 쓰인 고양이가 모두 중성화하지 않은 개체였다는 한계를 밝혔다. 중성화한 고양이나 다른 형태의 사료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참고논문


DOI : 10.1016/j.physbeh.2026.115328

논문 정보 : Takumi Takahashi, Shota Ichizawa, Sara Kikuchi, Nanami Hara, Reiko Uenoyama, Tamako Miyazaki, Masao Miyazaki, Olfactory habituation and dishabituation dynamically regulate feeding motivation in domestic cats, Physiology & Behavior, Volume 31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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