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지먼트 관련 제도의 정비는 법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될지에 대한 예측도 충분히 한 후에 이뤄져야 한다. 실제로 70여 매니지먼트사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는 최근 “연예 산업을 발전시키고 관련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입법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장자연 사건을 계기로 서둘러 법 제정에 나서는 것은 매니지먼트 산업의 현실을 정확하고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부실 법안이 제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요지의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장자연의 자살 사건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안타까운 일이지만 연예 매니지먼트업의 법제화가 너무 연예인의 노예계약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도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꼴이 되기 쉽다. 좀더 구조적으로 매니지먼트업의 문제가 무엇이며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근원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한국 매니지먼트업의 기본적 문제 한국 매니지먼트업의 기본적 문제는 확실한 수익모델이 없다는 점이다. 매니지먼트업만 해서 수익을 내고 있는 곳이 별로 없다. 소속 연예인의 연예활동에 드는 제반 비용, 즉 차량과 운전기사(로드매니저), 숙박, 식사, 미용실, 교육비, 의상비를 모두 매니지먼트사가 부담한다. 하지만 큰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 한 마디로 고비용 저수익 구조다. 매니지먼트사 입장에서 톱스타는 대외창구 등 여러가지 면에서 필요하지만 수익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톱스타는 수익분배도 회사에 불리할 뿐만 아니라 거액의 전속금을 받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신인의 수입으로 그 차액을 보전하게 된다. 신인에게 불공정한 수익분배(신인 대 회사는 1대9 또는 2대8)로 이어지는 이유다. 회사가 10명의 신인에게 투자를 하면 유명해지는 신인은 1~2명밖에 되지 않는다. 성공한 신인은 자신의 수익에서 실패한 신인에게 투자된 비용까지 공제해야 하는 구조다. 그러니까 신인이 조금이라도 뜨면 계약조건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소속사를 옮겨야 한다. 여기서 기존 소속사와 연예인 간 활동금지 가처분 소송, 계약해지 소송과 같은 법적 분쟁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업무와 권력이 집중된 매니지먼트사 이처럼 이해관계가 대립되고 갈등이 생길 소지가 많은 매니지먼트업에 관련 법규가 없다는 점은 항상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받는다. 매니저의 자격을 협회 차원에서는 규정하고 있지만 법적 효력이 없어 영향력이 미미하다. 매니지먼트사에 소속된 연예인도 모델에이전시를 제외하면 직업안정법과 같은 법적 규제 밖에 놓여 있다. 한 마디로 매니지먼트사 관련 법제가 없고 노동자로서의 연예인에 대한 법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 오로지 소속사와 연예인 사이에 계약만 존재한다. 매니지먼트사는 계약기간 중에는 연예인의 권리를 포괄적이고 독점적으로 대리할 권한을 보유한다. 연예인은 자신의 의사와 반하는 행사를 거절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매니지먼트사가 대형화·글로벌화하면서 업무는 더욱 집중됐다. 스타를 발굴해 교육하는 양성업무(아카데미)와 계약과 기획(에이전트), 관리(매니지먼트) 업무를 한 곳에서 총괄한다. 드라마나 영화제작 겸업에 나서는 매니지먼트 업체도 생겼다. 업무가 한 곳에 집중되다보니 각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상충되기도 한다. 여기서 소속 연예인과 회사 간 분쟁의 소지가 생긴다. 많은 업무가 집중돼 있는 만큼 사업의 투명성과 공신력을 보장받기도 힘들고 외형적인 덩치는 커진 데 비해 계약관행과 수익모델 등 소프트웨어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국의 매니지먼트 법 제정 실태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도 매니지먼트사업 관련 법안 제정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의 최문순 의원은 연예산업의 영세성·비전문성 및 불합리한 계약 관행을 개선하고 특히 인적 용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특성상 노예계약이나 전속금 소송 등 해당 연예인의 인권, 그 밖의 여러 권리와 직결되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연예매니지먼트사업법안’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연예매니지먼트 사업자의 문화체육관광부 등록을 의무화하고, 문화부 장관은 계약서에 위반 사항이나 불공정한 조항이 있는 경우 시정을 권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도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 무엇 아무리 법안을 잘 만들고 표준계약서를 그럴듯하게 꾸며놔도 이를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너무 법과 제도에만 의존하면 매니저와 연예인 사이에 인간미를 잃을 수도 있다. 감성상품, 문화상품이 어찌 제도와 법만 가지고 해결되겠는가. 연예인이 되면 우선 친구를 잃는다. 연예인은 부모와 가족 간 대화가 줄어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연예인의 고민 상담은 부모보다는 매니저와 더 자주 나눈다는 설문 결과도 있다. 연예인과 매니저는 부모보다도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다. 매니지먼트업이 대형화하면서 영화 ‘라디오스타’처럼 인정과 인간미 넘치는 아날로그 매니저는 찾기 힘든 시대가 됐다. 계약서 한 장 없이 일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기는 힘들다. 하지만 제도 못지않게 사람의 양식과 인식도 중요하다. 방송연예계에서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장자연 사건을 계기로 각성해야 한다. 신인 연예인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신인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 신인은 6개월 이상 연수를 받아 연기력을 가다듬고 인격체로 만들어야 한다. 연예매니지먼트업은 관련 법적 제도를 마련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연예계의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도 병행되어야 한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