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호는 극중 선지교에서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 의해 죽임을 당하며 하차했다. 대하사극에서 정몽주의 캐릭터를 이렇게 미세하게 보여준 건 ‘정도전’이 처음일 것이다.
임호는 제작진으로부터 정몽주 역을 제의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정몽주를 맡고 싶다고밝혔다고 했다.
“정몽주는 충절 아이콘이고, 외유내강형일 것이다. 유학자이고 무장은 아니지만, 전장에도 참여했고, 외교력도 발휘한 사람이다. 새로운 정몽주를 그려보고 싶었다. 제작진이 2~3일 고민하더니 연락이 왔다.”
임호는 정몽주를 연기하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충정과 기개였다고 한다. 우왕시절 북원과의 친교를 권문세가 이인임이 추진하는 것을 젊은 유생들이 반대할 때 정몽주가 강하게 반대했다.
“정몽주의 첫단추를 잘못 꿰어버리면 안되기 때문에 이 때 와일드하고, 오버스럽게 했어요. 이 근본은 정몽주의 외유내강형 선비로서의 대쪽 같은 기개에서 나오는 것이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정몽주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소신으로 버틸 수 있었을 것 같다. 선비나 사대부 하면 입만 놀리는 이미지가 있지만 정몽주는 그렇지 않았다.”
임호는 자신의 아버지(사극작가 임충)와도 정몽주 캐릭터에 대한 논의를 했다고 전했다.
“아버지께서 무신들이 외적인 강직함을 지녔다면 정몽주는 내적인 강직함을 지닌 분이실 거라고말씀하셨다. 서책만 들고 다닌 분이 아니다. 토벌하러 나간 전장에서 엄청난 외교력을 발휘하신 분이니, 유약하게 그리지 말라고 하셨다.”
이어 임호에게 ‘정도전‘이라는 사극과 그 자신이 연기한 정몽주가 주는 현대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어봤다.

“인간에 대한 밀도있는 고찰이 아닐까. 사극이니까 정도전은 유학자면서 야심가, 이성계는 군인,
정몽주는 학자가 아니라, 인간 정도전, 인간 이성계, 인간 정몽주를 그렸다. 인간 정도전이 인간이성계, 인간 정몽주를 놓고 갈등하고 이들의 인간적 고민을 파고 들어갔기 때문에 현대인들도 쉽게 공감하고, 생각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도전’은 이성계가 왕이 되는 과정을 미화하는 사극이 아니다.”
임호는 정몽주를 연기하면서 이성계는 어떤 사람인가, 정도전은 어떤 친구인가, 고려는 나에게 어떤 나라인가, 이 세가지를 고민했다고 전했다.
“세월이 흐르고 계민수전에서 과전법으로 되가면서 정몽주는 어느 정도 (정도전을) 제어하고 상황을 수용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몽주는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자는 데는 동의했지만 자기가 모시는 나라(고려)와 자기가 섬겨야 되는 왕조를 자기 손으로 갈아엎을 수는 없었다.”
정몽주는 ‘대업‘을 강하게 밀어붙이려는 정도전에게 노비 출신이라는 내거티브 전술로 정도전을 낙마시켜려 했다. 이른바 정몽주의 ‘흑화’에 대해 임호는 “친구의 역성혁명 꿈을 막기 위해서는 정몽주도 나쁜 놈이 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몽주는 이성계의 마음을 알고 떠난다. 정몽주가 이성계 앞에 단도를 내놓고 자신과 정도전중 한 명을 선택하라고 한다.
“정몽주가 이성계의 마음을 아니까 그런 거다. 사랑하지만 떠나는 것이 아닐까. 정몽주 정도전 이성계, 이 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게 애정구도가 있다. 인간에 대한 애정, 존중, 사랑 구도가 있다. 선지교에서 내가 죽고, 정도전(조재현)이 내 시신을 보는 장면 촬영을 앞두고 평소 장난끼 많은 재현이 형은 말도 안하더라. 과묵하게 집중하는 재현이 형이 멋있었다.”
임호는 “나만 무너지면 이사람들 대업이 성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성공하게 해줄 수 없다”면서 “내가 고려왕조를 지키는 건 실패했지만, 좋은 나라를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했을 것이다. 그럴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은 망년지교를 맺은 정도전이었을 것이다. 내가 살아있으면 안되지만, 친구인 정도전이 생각하는 것이 잘 이뤄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사실 이 세사람이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정몽주가 죽고나면 알 수 있었다. 이성계는 정몽주를 제거한 아들인 방원의 얼굴에 마구 집기를 던지고, 정도전은 방원에게 “더이상 나를 숙부라 부르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임호는 ”결국 ‘정도전’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도 인간에 대한 고찰을 위한 노력때문이 아닐까.유동근이 장군이야, 나는 유학생이야가 아닌, 그건 직위 직책이다. 이 세 사람이 사랑을 하는 거야. 그것에 대한 고찰이 있다. 세 남자의 사랑, 그 위에 과전법이나 다른 제도, 갈등, 이런 것들이 얹어진거다“
임호는 ”배우는 인물을 연기하지만, 핵심을 꿰뚫는구나, 그래서 정서로서 대중에게 다가가야 하는구나 하는 점을 배웠다. 이 점은 유동근 선배님한테 많이 배웠다“면서 ”어떤 말투와 행동이냐가 아니었다. 과거 치기어린 연기에 대한 반성도 했다. 인간을 그리려 하고, 근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며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이구나 하는 점을 알았다. 정몽주가 남긴 포은집 등 글도 읽으면서 이성계는 왜 정도전 손을 들어주었는지를 생각해봤지만, 정몽주가 그리는 정서는 어떤 거고, 어떤 인간인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지며 연기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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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기선임기자wp@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