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방송된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들 중에서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인 프로그램을 찾는 일은 ‘돼지우리에서 진주 찾기’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안 되는 진주들 덕분에 시청자는 즐거웠다. 그 진주들은 대부분 케이블 채널과 종편에서 발견됐다.
견고하게 구축됐던 플랫폼의 힘으로 막강한 위세를 자랑했던 지상파 방송사는 올 한 해 여러 면에서 부진했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도 위기감을 인지하지 못한 안일함은 지상파 방송사의 기득권에 균열을 가져왔다. “어디에서 만든 콘텐츠인지가 중요했던 시대에서 어떤 콘텐츠인지가 중요한 시대”(신원호 CJ E&M PD)에 사는 시청자들은 제작자들보다 눈높이가 높아 잘 만든 콘텐츠와 그렇지 않은 콘텐츠를 귀신 같이 알아차렸다.
트렌드를 이끄는 것도 비지상파였다. 한 때는 시청률 1%만 넘겨도 대박이라는 말을 들었던 비지상파 채널의 예능 프로그램은 이제 동시간대 지상파 프로그램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올 한 해에도 tvN과 JTBC를 중심으로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들이 쏟아졌다. 보수적인 제작 환경에 일찍이 자리를 옮긴 스타PD들이 포진한 두 채널에서 시작된 참신한 시도였다. 배낭여행 콘텐츠의 붐을 불러온 나영석 PD의 ‘꽃보다’ 시리즈부터 슬로 라이프를 담은 ‘삼시세끼’, 제작비를 확 줄인 스튜디오형 타깃 지향 토크쇼를 선보인 JTBC의 각종 예능 프로그램은 방송가의 트렌드를 이끈 대표 사례다.
뒤늦게 위기를 느낀 지상파 방송사들은 ‘언 발에 오줌 누기’식으로 현상유지를 위해 케이블 채널과 종편의 예능 프로그램 소재를 베끼는 악수까지 뒀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고승희ㆍ정진영 기자의 채널고정’은 올 한 해 예능 프로그램을 결산해 ‘최고’와 ‘최악’의 프로그램을 평가해봤다. ‘최고의 예능’을 선정하는 일은 수월했지만, ‘최악의 예능’을 선정하는 일은 곤혹스러웠다. ‘최악의 예능’ 후보가 너무나 많았고 대부분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 베스트 예능
1. tvN 삼시세끼
고승희=‘나영석의 힘’ 비웠고, 버려뒀고, 재가공(편집)했다…진짜 관찰예능의 발견 ★★★★★
정진영=지상파라면 절대 제작 불가능했을 ‘건강한’ 예능 ★★★★★
‘여백의 미학’이 통했다. 바삐 돌아가는 현대인이 일상에서 ‘유기농 자급자족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삼시세끼’는 나영석표 예능 프로그램의 정점을 보여줬다. 물론 2014년 12월 현재까지다. ‘꽃보다OO’ 시리즈를 통해 투덜이로 거듭난 이서진과 아이돌 노예 택연이 강원도 정선에서 하루 세 끼 밥해먹고 사는 삶을 보여줄 뿐인데 이 프로그램을 지상파를 압도하는 위협적인 시청률(8회 평균 8.2%, 최고 9.7%, 닐슨코리아 집계)을 기록했다. “뭘 하지 않아 좋은 예능”(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이다.
“한 때는 뭐든지 잘 하는 PD가 되고 싶었다”는 나영석 PD는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평소 하고 싶었던 시골을 배경으로 한 예능을 시작했다. 캐릭터 만들기의 달인답게 염소(잭슨)와 강아지(밍키)를 인기스타로 키웠고, 관찰의 묘미를 살린 편집과 자막으로 웃음을 유발하니 진화한 ‘관찰예능’의 종착역이라 할 만하다. 관찰의 묘미는 살렸으나, 작위성이 사라지니 시청자들 역시 거부감 없이 몰입한다. 소박한 한 끼 식사를 차려 나눠먹는 이들의 자급자족 삶은 팍팍하고 외로운 도시인의 삶에 위로를 안기고, “돈 걱정 없이 밥만 해먹는” 전원생활의 판타지로 대리만족의 감정을 전하는 프로그램이다.

2. JTBC 비정상회담
고승희= 그들의 이야기가 들렸다기미가요와 에네스만 없었다면 연예대상 감 ★★★★
정진영= 실사판 ‘먼나라 이웃나라’…기미가요와 에네스 때문에 별 반개 뺐다 ★★★★☆
‘비정상회담’은 종편 예능의 ‘끝판왕’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기존에도 ‘미녀들의 수다’처럼 외국인 패널이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은 꽤 있었지만, 이들의 역할은 장기자랑내지 한국에서 경험한 일을 소개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비정상회담’은 11개국 출신 20~30대 남성 출연진들이 한국 사회에 관한 하나의 주제를 놓고 다양한 관점에서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프로그램이었다. 출연진 모두 상당한 한국어 회화 능력을 갖추고 있어 깊이 있는 토론이 가능했다는 점이 주효했다.
‘비정상회담’은 동시간대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 SBS ‘힐링캠프’와 KBS 2TV ‘안녕하세요’를 위협하는 강자로 떠올랐다. ‘비정상회담’의 성공으로 인해 외국인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2014년 하반기 방송가의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를 잡았다. 실제로 지상파 방송사들은 올 추석 연휴에 외국인을 단체로 출연시킨 예능을 파일럿으로 선보인데 이어 정규 편성까지 나섰다. MBC가 편성한 ‘헬로 이방인’은 ‘별바라기’를 밀어내고 목요일 밤 예능 프로그램 자리를 꿰찼다. 일본 대표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기미가요 음원 사용 논란과 터키 대표 에네스 카야의 개인신상에 대한 논란에 따른 하차만 없었다면 완벽했을 텐데 ‘호사다마’다.

3. tvN 꽃보다 청춘
고승희= 얼굴 바꾼 여행예능, ‘그 나물에 그 밥’일 줄 알았는데 제대로‘정서 저격’ ★★★★☆
정진영= 사람과 장소가 바뀌면 여행의 재미도 바뀌는구나…잘 만든 포맷의 승리 ★★★★
‘꽃보다 청춘’은 잘 만든 포맷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가를 보여준 수작이었다. ‘꽃보다 할배’를 시작으로 ‘꽃보다 누나’로 이어진 지난 ‘꽃보다’ 시리즈는 여행지에서 맞닥뜨리는 예상치 못한 상황과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생생하게 담아내며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기본적인 포맷을 유지하면서 출연진과 여행지만 바꾼 ‘꽃보다 청춘’이 과연 지난 시리즈의 인기를 이어갈 수 있을까 우려도 없지 않았지만, 그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꽃보다 청춘’은 불혹에 들어선 3명의 뮤지션 윤상ㆍ유희열ㆍ이적의 여행기를 담은 페루 편과 tvN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시리즈의 주인공인 배우 유연석ㆍ손호준ㆍ바로의 여행기를 담은 라오스 편으로 나뉘어 방송됐다. ‘꽃보다 청춘’은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출연자들을 데려다 놓고 배낭 시키는 콘셉트를 택했다. 지난 시리즈의 출연진보다 젊어진 만큼 여행은 지난 시리즈보다 활기찼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작스럽게 비행기에 탑승한 출연자들은 지난 시리즈보다 줄어든 경비에 곤혹스러워 했지만, 이 같은 돌발상황은 시청자들에겐 더 큰 재미를 안겨줬다.

4. JTBC 히든싱어
고승희= 음악으로 가지 친 진화한 버라이어티…가끔 촌스러워도 눈물이 왈칵 ★★★★
정진영= 보는 음악에서 듣는 음악으로…잊고 살았던 음악의 재미를 되찾다 ★★★★
2012년 첫 방송된 ‘히든싱어’는 근래에 보기 드문 세대 통합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모창능력자’ 속 ‘숨은 가수 찾기’라는 큰 틀을 세워둔 ‘히든싱어’는 보는 음악 시대에 듣는 음악의 감성을 찾아주며 최근 시즌3을 마쳤다. 시즌2 당시 JTBC 예능 사상 최고 시청률인 9.1%(닐슨코리아 집계ㆍ수도권 유료가구 기준, 광고 제외), 분당 최고 11.4%까지 기록했던 프로그램은 시즌3 이선희 편을 통해 8.4%의 최고 시청률을 냈다.
‘히든싱어’가 세대를 아우르며 사랑받는 비결은 MC를 맡은 전현무의 말처럼 “연비가 좋은 하이브리드 예능”이라는 데에 있다. 모창 능력자와 원조 가수를 통해 숨은 음악들을 재발견하는 음악쇼이자 묻혀있던 실력파 보컬리스트를 발굴한 오디션이었으며 가수와 팬들 간의 추억을 나눈 토크쇼였고, 진짜와 가짜를 가리는 ‘진실게임’이 바로 ‘히든싱어’였다. 더불어 ‘히든싱어’의 인기엔 전현무의 ‘깐족’ 진행도 큰 몫을 했다. 최종 우승자를 호명할 때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연구한 전현무의 단 한 마디에 시청자는 물론 출연자들도 매번 낚였다. ‘라디오스타’ MC로 활약 중인 윤종신 편이었다. “전현무에게 ‘히든싱어’란?” “광고!”. 히든싱어에 광고가 많은 이유가 있었다.

▶ 워스트 예능
1. SBS 매직아이
고승희=톱스타와 토크 의존 지상파 예능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 나쁜 예(별 없음)
정진영=시청자는 이미 저만치 앞에 있는데 어디서 이런 콘셉트를 들이미나(별 없음)
톱스타 이효리를 품고도 최고 시청률은 5회 방송분이 기록한 4.4%였다. 평균 3%대를 유지한 ‘매직아이’는 지난 7월 첫 방송돼 11월 종영했다. 애초 기획의도는 한 주간 화제가 됐던 뉴스를 브리핑한 뒤 MC와 패널들이 토크를 나누는 방식이었으나, 저조한 시청률에 허덕이나 ‘취향의 발견’이라며 스타들의 취향을 나누는 포맷으로 변경됐다. MC 군단 4명에 매회 게스트 4명이 뭉쳤으나, ‘설전’을 벌일 현명한 입은 부족했고 토크의 수준은 신변잡기와 잡담에 그쳤다. 취향도 저격한다더니, 궁금증은 안 생기고 관심도 갖게 되지 않는 그들만의 신비로운 취향일 뿐이었다.
연예인들의 사적인 이야기와 일상의 모습이 인터넷, SNS 등을 통해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톱스타’를 앞세워 과거 인기를 누린 토크쇼 포맷을 가져온 ‘매직아이’는 결국 지상파 예능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단 한 번도 주제를 관통하지도, 뼈 있는 한 마디를 남기지도 못했다. 방송에서 화제가 된 건 이효리의 오일풀링과 장예원 SBS 아나운서의 에이핑크 따라잡기, 혹은 19금 토크가 전부였다. 토크의 외형을 놓고 보면 ‘사공이 많아 배는 산으로’ 갔으며, 깊이를 놓고 보면 ‘빈 수레만 요란할’ 뿐이었다.

2. SBS ‘룸메이트’ 시즌1
고승희= 작의성 난무한 연예인들의 설정놀이 ☆
정진영= 평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다시 시청하고 후회했다(별 없음)
홈셰어 트렌드를 품은 관찰예능 ‘룸메이트’의 등장은 출발부터 기대를 많이 모았다. 가수 신성우, 모델 이소라부터 격투기 선수 송가연에 엑소 찬열까지 등장하니 ‘팬심’은 동요했으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격리된 공간인 ‘룸메이트’의 성북동 주택은 인기 예능의 작법을 구사하기엔 더 없이 안성맞춤이었다. 집 안 곳곳 설치된 최소 15대 이상의 카메라가 연예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감시하고 그들의 일상을 ‘훔쳐보기’에 제격인 셈이었다.
하지만 관찰형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출발한 ‘룸메이트’ 시즌1은 상황마다 개입하는 노골적인 제작진의 의도가 적나라하게 비쳤다는 데서 시청자들이 외면하게 됐다. 러브라인, 사소한 다툼, 몰래카메라 등 매회 사건을 만드는 작의성이 난무해 자연스러움이 실종됐다. 오랜 시간 연예계에서 단련된 연예인들의 철저한 자기검열 능력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의도적인 설정으로 비쳤다. 심지어 한 집에 모여 사는 공동 주거문화에 대한 의미 전달에도 실패했다.
시즌2로 접어들며 카라 허영지, 갓블랙 잭슨의 꾸밈없는 모습이 ‘룸메이트’를 되살렸으나, 시청률은 다시 하향세다. 함정이 있다. 여전히 초대손님과 이벤트에 의존하는 한 집 살이가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

3. KBS2 나는 남자다
고승희=남자들의 군대, 축구 얘기의 TV판 ☆
정진영=남자들이 진심으로 재미있어 할 거라고 생각했나? (별 없음)
‘나는 남자다’는 유재석이 MBC ‘놀러와’ 종영 이후 2년 만에 시작하는 새 토크쇼이고 ‘해피투게더’ 이후 처음 출연하는 새 KBS 프로그램이라 기대를 모았다. 심지어 ‘나는 남자다’는 동시간대 효자 프로그램인 ‘사랑과 전쟁’까지 폐지시키고 그 자리에 전략 편성됐다. KBS는 유재석이라는 브랜드를 너무 믿은 모양이다. 안이한 믿음의 결과는 포털 사이트에서 자동 검색어로 완성되는 ‘나는 남자다 노잼’이다.
KBS는 ‘나는 남자다’를 토크와 쇼를 가미한 새로운 장르라며 ‘쇼 토크’라고 소개했지만 기존 토크쇼와 다를 바 없었다. 또한 ‘나는 남자다’는 “여자는 보지마라!”며 남자들만 모여 비밀스러운 소셜 클럽을 만드는 프로그램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웠지만, 부진한 시청률에 시달리자 15회부터 여성 방청객도 부르고 있다. 사실상 프로그램의 정체성마저 포기한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시청률마저 별 차이 없었다. 꼼수는 먹히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부실한 프로그램 구성이다. 출연진들의 프로그램 흐름과 무관한 신변 잡기 ‘썰풀기’가 시청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일이 허다하다. 결과는 동시간대 최저 시청률 벗어나기 경쟁이다. ‘유느님’도 안 되는 것은 안 된다.

4. MBC 별바라기
고승희=감동의 토크가 될 수도 있었으나…스타와 팬의 잘못된 만남 ☆
정진영=왜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스타의 팬 미팅을 보고 웃어야 하지? ★☆
지난 6월 19일 스타와 팬의 만남이란 콘셉트로 야심차게 시작했던 ‘별바라기’는 방송 내내 저조한 시청률을 보이다 3개월 만에 폐지됐다. 진행자 강호동의 작별 인사조차 없는 종영이었다. 제작진은 ‘그동안 시청해 주신 시청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라는 자막으로 종영 소식을 알렸다.
‘별바라기’는 ‘무릎팍도사’ 종영 이후 강호동의 MBC 복귀작으로 관심을 모았다. ‘별바라기’는 스타와 팬의 만남을 통해 그간 방송에서 공개되지 않은 색다른 이야기들을 이끌어 내며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문제는 이 같은 포맷이 스타들의 팬이 아닌 시청자들에게는 조금도 매력적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팬들의 입장에선 그들의 우상인 스타와 만나는 자리가 의미 있었을 진 모르지만, 스타의 팬미팅을 팬들이 아닌 다수의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질리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강호동의 진행 능력도 문제였다. 강호동의 진행 스타일은 잠정은퇴 전의 모습과 별다를 바 없었다. 다수가 참여하는 예능이 인기를 끄는 현 예능 프로그램 트렌드에서 1인 주도 예능에 특화된 강호동의 진행은 처음부터 무리가 있었다.

고승희ㆍ정진영 기자/sh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