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일리가 있는 반응과 해석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놓고 끝낸다는 건 뭔가 찜찜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과거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의 큰 기준은 가창력이었다. 참가자에게 “발성이 불안하다”고 말하곤 했던 이승철을 비롯해 ‘위탄’의 이은미는 가창력에 대한 심사를 세게 했다. 하지만 요즘은 오디션 심사를 크게 보면 취향의 심사로 변했다. 두성이 어떻고 공기반이 어떻고 하는 것보다는 “(너의 음악을 들어보니) 나한테 뭔가 왔다”가 심사의 중요한 기준이 됐다.
‘시간아 천천히’ ‘마음대로’ 두 곡으로 크게 화제가 된 이진아는 가창력의 시대에는 살짝 묻혀있다가 취향의 시대에 제대로 빛을 보고 있다. 올해 ‘슈퍼스타K’ 세 심사위원의 견해가 유독 다른 경우가 많았던 것도 취향에 의한 심사를 많이 했다는 방증이다.
그러니 오디션 프로그램은 점점 어려워져 가고 있다. 취향을 가지고 누구는 뽑고 누구는 떨어뜨려야 하는 현실은 조금 더 정교한 장치 없이 지속되다가는 자가당착에 빠질 우려가 있다.
박진영이 이진아의 ‘마음대로’를 듣고 “음악을 관둬야 할 것 같다. 정말 숨고 싶었다”고 말할 수 있다. 찬사를 그런 식으로한다고 해서 잘못될 건 없다. 그렇다고 박진영의 취향을 공격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취향 심사는 취향으로 그쳐야 한다. ‘One of Them’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진아 같은 친구는 홍대앞에 가면 흔한데…”라고 느끼는 취향도 있기 때문이다.
취향의 평가를 극단적으로 전부인 것처럼 얘기하면 소통에 무리가 오게 된다. 박진영이 심사한 기준과는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
박진영은 어떤 참가자의 노래를 듣고 “그루브가 없어서 도저히 못 듣겠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느꼈을까? 하지만 그 참가자가 부른 노래는 그루브가 없는 것처럼 돼버렸다.
박진영의 심사가 마치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박진영의 과잉화법(박진영은 표정과 말이 모두 오버다)과 그것을 집중하게 만드는 방송 메카니즘이 결합한 결과다.
박진영의 심사평을 시청률을 올려주는 순기능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진영의 심사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참자가들이 점점 박진영의 코멘트를 절대적 가치이자 기준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박진영의 심사평이 제일 무섭다”고 말하는 참가자는 애교다. 박진영의 심사평에 맞춰 시험준비를 해오는 학생이 많다는 사실은 위험하다.
나중에 박진영과는 전혀 다른 취향을 가진 심사위원이 나와 그런 학생의 노래를 들어보고, “어 그거 아닌데, 과거에 그런 것 좋아하는 취향의 사람들이 있긴 했거든…”이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박진영의 심사 자체가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박진영의 심사는 한가지 의견일 뿐인데도 그의 주관적 심사에 참가자들이 너무 일희일비한다는 자체가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의 다양성이 축소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이 시점에서 박진영의 과함은 약간 줄여줄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