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천만영화 두 편’ 윤제균…“머리로 계산한 영화, 실패하더라”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결국은 ‘공감’의 힘인 것 같아요. 제가 ‘웃기고 울리고를 잘 한다’고 하는데, 흥행이 머리로 계산해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진심이 아닌 계산된 영화는 관객에게 100% 들켜요. ‘국제시장’은 제 진심이 그대로 전달돼 많은 사랑을 받은 게 아닌가 싶어요.”

영화감독이 윤제균이 한국영화 흥행 역사를 새로 썼다. ‘해운대’(최종 1132만4433명)에 이어 ‘국제시장’도 1000만 관객을 모으며, 국내 영화감독 중 최초로 두 편의 천만 흥행을 일궜다. 이제 그를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부르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물론 순탄하게 걸어온 길은 아니었다. ‘두사부일체’와 ‘색즉시공’의 성공을 시작으로 ‘1번가의 기적’, ‘해운대’, 최근 ‘국제시장’까지… 흥행 성적은 달콤했지만 작품성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때가 많았다. 전형적인 이야기에 감정 과잉이라는 지적이 종종 나왔다. 게다가 이번 작품에선 예상하지 못한 이념 논란까지 불거졌다. 윤 감독이 ‘세대 간 화해와 통합’을 의도한 것이 무색하게도, 온라인 상에선 ‘국제시장’의 정치적 함의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잡음 속에서도 그는 한국영화사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기고 있다. 전 세대의 고른 지지 속에서 두 편의 천만영화를 만들었고, 관객과의 사이에 ‘윤제균 표 영화’를 믿고 볼 수 있다는 신뢰를 쌓았다. 이는 ‘방자전’ 속 송새벽의 유명 대사처럼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다 많은 관객들이 공감할 만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소통하는 것. 그것이 윤제균의 힘이다. 

▶흥행작 ‘색즉시공’부터 실패작 ‘낭만자객’까지=‘윤제균’이란 이름 석 자를 처음 알린 영화는 조폭 코미디 ‘두사부일체’(2001)다. 모자란 학업을 채우기 위해 조폭이 학교로 돌아가는 설정은 참신했고, 다 큰 건달들의 좌충우돌 학교생활은 포복절도할 에피소드로 가득했다. 흥행에 힘입어 ‘두사부일체’ 시리즈는 3편까지 이어졌다.

윤 감독이 2002년 내놓은 영화 ‘색즉시공’은 전작을 능가하는 성공을 거뒀다. ‘색즉시공’은 한 마디로 ‘센세이셔널’이었다. 섹시 코미디라는 장르가 낯설었던 당시, 노골적이지만 밉살스럽지 않은 ‘19금’ 에피소드는 400만 관객의 웃음과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후 ‘제2의 색즉시공’을 꿈꾸는 섹시코미디가 쏟아졌지만 원조의 아성을 넘보진 못했다.

‘1번가의 기적’(2007)은 윤제균 감독의 스펙트럼을 한층 넓혔다. 코미디 장르에 특화된 듯 보였던 그가 휴먼드라마 장르에도 두각을 나타냈다. 웃음과 눈물을 함께 부르는 ‘윤제균 표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이는 재난 블록버스터 ‘해운대’(2009)로 이어졌다. 소재는 묵직해지고 스케일은 커졌지만, 윤제균 특유의 코믹 정서와 눈물 뽑는 이야기는 여전했다. 오락적 요소에 감동까지 두루 갖춘 ‘종합선물세트’는 대중의 취향을 정확하게 저격했고, 1000만 관객의 발길을 극장으로 이끌었다.

물론 그에게도 흥행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낭만자객’(2003)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철저히 ‘머리로 만든 영화’였다. 대중적 성공을 위해 이런저런 계산을 한 영화가 오히려 100만 명도 채 모으지 못했다. 참혹한 흥행 성적표를 받아든 그는 관객과의 공감대, 소통의 필요성을 깨닫고 심기일전할 수 있었다. 당시 실패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천만감독’ 윤제균은 없을 지도 모른다.

▶“예상치 못한 ‘국제시장’ 논란, 속상하지만…”=이번 작품 ‘국제시장’은 흥행의 폭발력 만큼이나 잡음도 많았다. 윤 감독의 연출 의도와는 별개로 영화는 일찌감치 보수와 진보 네티즌의 이념 공방으로 불이 붙었다. 산업화 시대를 살았던 우리시대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는다는 점에서 보수 네티즌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높은 평점을 몰아줬다. 반대급부로 진보 성향의 일부 네티즌들은 평점 깎기로 맞불을 놨다.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극과 극 평점이 경쟁하 듯 올라오는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사실 윤제균 감독 입장에선 억울할 법 했다. 이념 공방을 피하기 위해 민감한 정치적 이슈를 걸러냈고, 지역·민족·세대의 화합을 상징하는 설정을 더했는 데도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으니 말이다. 1964년 독일 광산 폭발사고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가 현장을 찾은 역사적 사실이 있었지만 영화에선 다루지 않았다. 대신 (영남 출신) 주인공 덕수가 위기에 처했을 때 호남 출신 해병 남진이 구해주고, 외국인 노동자였던 덕수가 훗날 또 다른 외국인 노동자를 돕는 등의 에피소드를 넣었다.

“주변 분들은 논란도 흥행에 도움을 주지 않았나 말씀하시는데, 그건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영화를 본 관객들은 저희의 진심을 잘 전달 받아 좋은 평을 해주시는데, 일부 평론가와 언론, 정치계에서 논란이 된 거잖아요. 제가 만나본 일반 관객들은 ‘정치색과 관련이 없는 영화인데 왜 그런 논란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을 주셨어요. 속상한 건 제 의도를 일각에서 다르게 해석하고 평가한 부분인데, 영화라는 게 의도와 해석의 차이는 있는 거니까 이해해요.”

▶‘쌍천만 감독’ 윤제균, “행복을 준 감독으로 남고 싶다”=작품을 둘러싼 엇갈린 평가에도, 윤제균 감독이 의미있는 신기록을 썼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어떤 감독은 국제 영화제에서 트로피를 휩쓸고, 어떤 감독은 관객들을 불러모으는 데 능하다. 하지만 작품성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어 하는 건 모든 감독이 마찬가지다. 윤제균 감독도 같은 마음이다.

“일반 대중들이 좋아해주신다는 이유로 평단 등 ‘식자층’을 무시한 적은 없어요. 제 능력에 대해서 자책을 많이 했고, 어떻게 하면 평단에서도 인정받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열심히 하다 보면 그 분들도 내 진심을 알아주시지 않을까요? 영화를 잘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끝으로 ‘어떤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 소박한(?) 포부를 남겼다.

“한 마디로 얘기하라면 ‘행복을 줬던 감독’이요.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 감독으로 남고 싶어요.”

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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