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는 ‘표현의 사수 자유를 위한 범 영화인 대책위원회(이하 영화인 대책위)’의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영화인대책위는 부산시의 부산국제영화제 외압 논란을 비롯, 영화진흥위원회의 이해할 수 없는 정책 개정 행보에 쓴소리를 남겼습니다.
“거의 10년 만에 모든 영화단체들이 모였습니다. 스크린쿼터 당시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고 거리로 나왔었죠. 표현의 자유 때문에 이렇게 다시 모이게 됐는데, 표현의 자유를 잃고서는 영화 발전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인들에겐 (표현의 자유가) 생명과 같기 때문에 이렇게 짧은 시간에 모든 영화단체들을 한 자리에 모인 것 같습니다.”(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
▶“부산영화제 독립성 침해, 있을 수 없는 일”=최근 영화계에서 벌어진 소란스러운 일들은 퇴행적이라고 평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부산시는 지난해 영화제 감사 결과를 근거로 이용관 집행위원장에게 사퇴를 종용했습니다. 이 같은 소식에 여론이 싸늘해지자 말을 바꿔 “사퇴를 권고한 적 없다. 쇄신 방안을 마련하라고 한 것이 오인된 것”이라고 해명,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영화제 측의 소명이 이뤄지지 않은 감사 결과를 시의회에 보고해 부산영화제의 직원 채용 과정과 지출 경비 등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간 정황으로 봐선 부산시의 이 감사 결과가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도 고의적인 유출을 의심할 만 합니다.
최근 부산영화제 측은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직접 나서 부산시의 외압이 “특정 영화 상영에 따른 표적이나 보복 감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난 해 영화제가 ‘다이빙 벨’ 상영을 강행한 데 따른 후폭풍이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부산 시가 이런 식으로 영화제 운영 전반은 물론, 작품 선정의 기준을 밝힐 것까지 요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특히 작품 선정은 영화제 프로그래머의 고유 권한입니다. 그 말인 즉 부산시, 더 나아가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상영작은 걸러낼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루트거 볼프슨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영화제가 사전에 다른 조직과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를 공유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선을 그었고, 디터 코슬릭 베를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도 “우리 영화제는 정부와 베를린 시가 영화제를 공동 소유하고 있어도 프로그램 구성에 어떠한 방해를 받은 적도 없다. 영화제와 프로그래머들의 독립성은 보장돼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습니다.

▶영진위의 정책 개정 행보, 사전검열 수순?=부산영화제를 둘러싼 논란 만큼이나 황당한 것이 최근 영진위의 행보입니다. 영진위는 영화제 영화상영등급분류면제추천 제도(영진위나 정부, 지자체 등이 주최·주관·후원하는 영화제 등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등급 분류를 면제하는 제도)의 수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 1월엔 ‘2015 으랏차차 독립영화’의 등급분류면제추천이 취소되면서 상영 예정작 11편 중 세 편의 상영이 취소되는 사태가 빚어졌습니다. 또 한국영화아카데미 31기 졸업영화제는 등급분류면제추천 제도가 변경 예정이라는 이유로 행사 자체가 연기되기도 했습니다. 영화계가 반발하자 김세훈 영진위원장은 등급분류 자동 발급 조항을 삭제하지 않고, 일부 조항 만을 개정하겠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불씨는 남아있습니다. 국내외 50개 영화제들은 “영화제가 활성화되는데 큰 기여를 했고 어떤 부작용도 문제가 된 적이 없는 규정을 왜 개정하려는 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사전 검열을 위한 수순이 아니냐는 의심이 들 수 밖에 없다고 입을 모읍니다.
아울러 기존의 예술영화전용관운영지원사업과 다양성영화개봉지원사업을 통폐합한 ‘한국예술영화좌석점유율지원사업’에도 영화계는 뿔이 났습니다. 연 26편의 영화를 30개 스크린(지역 멀티플렉스 15개, 비멀티플렉스 15개)에서 1일 또는 2일 간 상영하도록 지원하는 내용인데, 영화인 단체들은 “영진위가 26편의 영화를 지원 대상으로 정해 이를 상영하지 않으면 지원하지 않겠다는 것이 골자”라고 지적합니다. 게다가 영진위가 독립·예술영화 상영을 보장하겠다는 스크린 30개는 2014년 집계 기준 전국 스크린 2281개의 1.3%에 불과한 수준으로, 이 또한 52일 혹은 104일 만 상영이 보장되기 때문에 유통 활성화를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또 영진위가 사업을 위탁한 단체에서 26편의 영화를 선정하고 상영하기 때문에, 이 사업에서 배제되면 개봉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화계와 논의 없이 졸속 추진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표현의 자유 지키기 위해 사력 다할 것”=최근 영화계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대해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집행위원장은 “맥락이 닿아있다. 이용관 위원장 건도 그렇고, 정부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를 왜 틀었느냐, 그리고 독립영화 배급지원 문제도 멀티플렉스 아닌 정부의 보조금 받는 영화관에서 왜 정부에 반하는 영화를 트느냐는 것 같다”며 “정부 차원에서 부산영화제나 영진위를 압박하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지정해주는 영화를 틀면 지원하고, 그 외의 영화는 상영 기회 박탈하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날 영화인 대책위는 “최근 사태들이 영화계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고 나아가 영화예술발전의 근본인 표현 자유가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이후에도 표현의 자유와 독립성 훼손하려는 모든 시도가 잦아들지 않을 시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또 범 영화계에 그치지 않고 범 문화계, 나아가 범 시민연대를 조직해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아울러 서병수 부산시장에겐 영화제의 독립성을 보장하겠다는 선언을, 김종덕 문화체육부장관에겐 최근 사태에 대한 면담을 요구했습니다.
이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시, 이후 행보는 아직 대책위 차원에서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영화인들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태의 엄중함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언제든 조직된 목소리를 낼 준비가 돼 있다는 것 만큼은 분명히 했습니다.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가볍게 흘려들어선 안 될 일입니다. 이날 정윤철 감독의 말처럼 영화제의 독립성 보장을 약속하지 않는다면, 부산시장이 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는 것 자체에 영화인들과 시민들이 제동을 걸 수도 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역시 영화계가 반발하는 정책 추진을 강행한다면, 정 감독의 표현대로 ‘영화침체위원회’라는 오명을 쓰고도 남을 지 모릅니다.
ham@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