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칼럼-정덕현]‘풍문’에 담긴 서민의 억눌린 정서

“우- 풍문으로 들었소.” 함중아와 양키스가 불렀던 ‘풍문으로 들었소’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장기하가 리메이크하면서 다시 대중들의 귀에 착 달라붙었다. 경쾌한 리듬에 얹어진 노래 가사는 떠나간 임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 있지만, 노래가 가진 독특한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풍문’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 때문인지 이 노래에는 어딘지 풍자적인 느낌이 달라붙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는 바로 이 노래가 가진 뉘앙스를 드라마에 성공적으로 끌어들여 상류사회의 허위의식을 풍자해내고 있다.

그런데 왜 ‘풍문’이라는 단어가 이런 풍자적인 느낌을 주는 것일까. ‘풍문’의 사전적 의미는 ‘바람결에 떠도는 소문’이다. 즉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이 안 된 것이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이야기를 말한다. 최근 들어 그토록 신문지상을 가득 메우고 있는 정치인이나 재벌가 사람들 때로는 연예인들에 쏟아지는 갖가지 구설수와 논란 같은 것들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풍문의 대상은 그렇게 도드라져 보이는 존재들일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이들은 갑으로서 권력을 행사하는 인물들이다. 그러니 을일 수밖에 없는 서민들 사이에서는 이들의 삶이 궁금하기도 하고 때로는 실체를 폭로하거나 또는 근거 없는 소문을 만들고픈 악의적 욕망을 가질 수도 있다.

이 줄다리기에서 기득권층은 자신들을 철저히 외부로부터 숨기려 하고, 서민들은 그것을 파헤쳐서라도 그 안을 들여다보고 싶어 한다. 풍문은 이 줄다리기의 긴장감 사이에서 생겨나는 부산물이다.

<풍문으로 들었소>의 풍문의 대상은 한정호(유준상)라는 대형로펌의 대표와 그의 아내 최연희(유호정)다. 외부에 단 한 점의 오점도 보이지 않기 위해 교양인으로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이들은 아기가 생긴 아들로 인해 그 실체가 벗겨질 위기에 놓인다. 아들 한인상(이준)과 간판집 딸 서봄(고아성) 사이에 아기가 태어난 것. 드라마는 속으로 눈물을 삼키면서도 겉으로는 계층을 뛰어넘어 ‘순수한 사랑’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연기하는 한정호와 최연희의 가식을 꼬집는다.

그런데 왜 이들 기득권층은 가면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것은 ‘기득권’이라는 말 속에 내포돼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언가를 더 갖고 있다는 의미는 어쩌면 무언가를 타인으로부터 더 빼앗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그들이 기득권을 갖고 유지하는 데는 그만한 비리와 편법들이 숨겨져 있다. 한정호는 대기업들의 대변인으로서 의뢰인을 위해서라면 상대방의 ‘빤스’까지 털어서라도 목적한 바를 얻어내는 위인이다. 그러니 그런 기득권의 어두운 그림자를 철저히 가리기 위해서라도 가면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모든 상류사회의 일원들이 한정호 같은 가면의 삶을 사는 건 아닐 것이다. 다만 이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기득권층은 그런 가면의 삶을 살 가능성이 더 높다는 얘기일 뿐이다. 물론 서민들은 이것과는 정반대다.

최근 들어 상류사회의 이른바 갑을 이슈가 터질 때마다 풍문이 일파만파 퍼져가는 건 그래서다. 우리 시대의 풍문 속에는 이런 서민들의 억눌린 정서가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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