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승룡이 이번엔 피리 부는 떠돌이 악사가 됐다. 영화 ‘손님’(감독 김광태)은 유명 동화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를 모티브로, 쥐떼가 들끓는 산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그린다. 류승룡이 맡은 ‘우룡’은 익살스럽고 순박한 인물이지만, 마을에서 끔찍한 사건을 겪은 뒤 차갑게 변한다. 흰 가루를 뒤집어쓴 채 피칠갑을 한 우룡의 얼굴은 극 중 기괴한 분위기의 정점을 찍는다. 김광태 감독은 ‘약속’의 무게감에 대한 원작의 교훈을 그대로 가져오는 대신, 익숙한 이야기를 한국적인 공포로 변주시키는 솜씨를 발휘했다.
“우룡이란 인물에 매료됐어요. 한 작품 안에서 분노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감정을 확장해서 담아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죠. 어떤 사람이든 충격적인 일을 겪으면 변하잖아요. 과하게 밝거나 어둡게 연기하려고 계산하지 않고, 그때그때 감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어요. 배우들마다 인물에 다가가는 방식이 달라요. 저 같은 경우엔 ‘시크릿’의 악역이나 ‘7번방의 선물’ 속 아이같이 순수한 인물을 제외하곤 대개는 저로부터 출발하는 편이예요. 내가 그 시대에 이런 상황이었으면 어땠을까 떠올리는 거죠.”

우룡은 아들과 함께 서울로 향하던 중, 낯선 마을을 발견하고 며칠 머무르기로 한다. 마침 주민들은 마을에 쥐가 들끓어 골치를 썩고 있었다. ‘귀때기 달린 짐승은 다 내 피리소리에 움직인다’는 우룡은 호언장담대로 쥐들을 쫓아내는 데 성공한다. 이 일을 계기로 마을 주민들은 우룡에 대한 경계심을 푸는가 싶었지만, 그를 눈엣가시처럼 보던 촌장(이성민 분)의 계략으로 뜻하지 않은 비극이 벌어진다.
사실 ‘손님’의 마을 뿐 아니라, 현실 공간에서도 이방인을 경계하고 타자화하는 분위기가 있다. 류승룡도 연극 무대에서 영화계로 넘어오며 비슷한 위화감을 느꼈을 법 했다. 다행히 그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편이었다. 영화 현장에서도 각자의 위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빠르게 파악해 녹아들었다. 그는 “땅덩이가 좁고 사람이 많다보니 우리나라 만의 풍토가 있지 않겠나. 이방인 객들을 타자화 시키는 그런 분위기는 있는 것 같다”면서도 “저는 생계를 위해 눈칫밥이 생긴 것 같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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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류승룡이 새 영화 ‘손님’에서 피리 부는 떠돌이 악사 역으로 돌아왔다. 역할을 위해 3개월 넘게 피리 연습에 매진했고, 촬영 현장에서도 피리를 놓지 않아 동료 배우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고. 그는 인터뷰 전 사진 촬영 시간에 직접 피리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사진=이상섭 기자 bobtong@heraldcorp.com |
실제로 그는 무명시절 온갖 아르바이트를 섭렵했다. 연기에 집중하느라 생계 활동을 소홀히 하는 것은 가장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형편이 나아진 뒤엔, 쉬는 날이면 여기저기 떠돌며 사람들을 관찰했다. 더 나은 연기를 위한 채찍질이었다. 그는 또 오랫동안 일기를 써왔을 뿐 아니라, 한 주, 한 달 계획이 다 잡혀 있을 만큼 스스로를 엄격하게 관리했다. 영화 ‘표적’의 출연 역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는 4년 전 극장에서 영화 ‘포인트 블랭크’(‘표적’의 원작)를 보고, ‘저 영화가 리메이크 되면 좋겠다’, ‘저 역할이 나한테 들어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영화가 만들어졌고,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흔쾌히 출연을 결심했다.
“약속에 관한 메시지를 담은 ‘손님’은 ‘피리부는 사나이’ 동화를 가져왔지만 현실의 어느 누구에게도 교훈이 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결혼할 때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서약부터 정치인들의 공약, 하다못해 ‘밥 한 번 먹자’는 공허한 약속까지 수 없이 많은 약속들을 남발하며 살아가잖아요. ‘손님’은 그런 것에 경종 울리는 작품일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환기하고 자기반성을 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해요.”
지금까지 류승룡의 흥행 행진을 보며, 이 배우가 작품을 고르는 ‘촉’과 ‘운’이 좋은 게 아닐까 막연히 생각했다. 실제로 만난 그는 작품에 뛰어든 뒤의 자세가 다른 배우들과 달랐다. 그는 감독을 건물을 짓고 마감하는 설계자로, 배우를 그 안에서 인테리어되는 가구로 비유했다. 배우가 어떤 자리에 어떻게 있어야 하는 지 스스로 알고, ‘활엽수가 많은 숲에서 나홀로 아름드리 소나무라고 뽐내고 있으면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작품도 늘 한 발짝 떨어져 관객의 입장에서 본다. 현장에서 자신이 참여한 작품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그는 자신이 관객석에 앉아 있다고 상상하며 영화를 본다. 천만 영화가 세 편이나 있는 그의 필모그래피가 우연의 결과가 아닐 지도 모른다.
“요즘 관객들은 지나친 설명도 싫어하지만 개연성 없이 넘어가는 것도 싫어해요. 그걸 잘 조율하는 것이 필요한데, 저는 현장에서 감독과 나누는 대화의 80%가 그런 이야기예요. 앞의 씬은 뭐고 그 다음 씬은 뭐고… 이렇게 관객 입장에서 머릿속에서 철저하게 세공해요. 그럼에도 놓치는 건 아쉬움으로 남죠. 어느 한 명의 작품이 아니라 공동 작품이라고 생각하니까 더 그런 것 같아요. 내 의견을 관철시키겠다는 게 아니라, 좋은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여우같은 감독님들은 아마 고맙다고 하실 거예요.(웃음)”
ham@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