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이유? 식구들끼리 해먹는게 집밥이지 뭐. 엄마, 아빠가 될 수도 있고, 여자친구가 될 수도 있고.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정성 들여 만든 음식으로 정을 나누는 거.” (백종원)
‘선생’이라는데 ‘권위’는 내려놨다. “그럴싸하쥬?”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에 담긴 은근한 잘난 척은 왠지 귀엽다. “요리의 기본은 간 맞추기”라며 설탕도, 간장도, 고추장도 ‘팍팍’ 넣는다. 엄마 같기도 하고, 삼촌 같기도 하고. “대충 만드는 것 같은데, 맛은 기가 막히고”(김승경 미술감독), “자기 노하우를 전부 내놓는”(고민구 PD)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쿡방’ 스타 백종원이다.
케이블 채널 tvN ‘집밥 백선생’의 세트는 ‘백종원의 이미지’와 ‘집밥’에 대한 정서를 품고 태어났다. 애초엔 “집밥의 컨셉트를 살리기 위해 실제 가정집을 찾아다녔으나 여건이 마땅치 않아”(고민구 PD), 경기도 파주 탄현에 세트장을 세웠다. 이 공간에 백종원을 주인으로 맞기 위해 8주의 시간을 들였다. “깨끗하게 정리된 주방, 현실성은 사라지고 환상만 남은 1세대 요리 프로그램의 세트” 대신 “요리를 하다 보니 설거지는 밀리고, 그걸 또 다시 씻어내야하는 수고로움까지 담아낸” 가정집 부엌이라고 고민구 PD는 설명했다.
=몇 해 전부터 인기라는 심플하고 세련된 ‘스칸디나비아’ 식의 인테리어는 찾아볼 수 없다. ‘집밥 백선생’의 주방은 시골집처럼 정겹고 따뜻하다. 프로그램의 기획의도에 걸맞은 제3의 주인공이다.
“강화마루보다 조금 더 값이 나간다”는 원목으로 굳이 바닥을 깔았다. 그 위로 ‘80cm 높이’의 조리대를 ‘디귿자’ 형태로 배치했다. 백종원의 유일한 ‘요구’였다. 유리창은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리고, 낡은 나무 선반엔 그릇과 도자기, 주방용품과 음식들이 빼곡히 쌓여있다. 일부러 “때구정물을 입혀 만든” 벽면의 타일엔 켜켜이 쌓인 주방의 시간이 담겼다. 주방 옆 창고엔 식재료가 어지러이 널려있고, 조리대 뒤편 창 너머엔 올리브 나무가 바람에 흔들린다. “선풍기를 틀어놓은 인공바람”(고민구 PD)인데, 벽돌을 쌓아올린 담벼락과 나무로 된 유리창이 어우러지니 “어릴적 뛰놀던 골목길”(김승경 감독)이 떠오른다. 그 옆에서 설거지를 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공간이다. “그만 놀고 들어와 저녁 먹어!”
“아파트 같은 현대 양식보다는 기둥을 중심으로 한 전통 한옥양식”을 구조로 가져와 “인위적이지 않은 손때 묻은 공간”을 표현했다고 한다. ‘집밥 백선생’의 세트를 만든 김승경(36) 미술감독의 설명이다.
주방 크기만 치면 15평, 창고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숨겨진 방까지 포함한 전체 크기는 50평이다. 이 공간은 창고에 드나들고, 개수대로 향하는 출연자들의 움직임 덕에 생동감이 스민다. 김승경 감독은 “출연자들의 동선을 효율적으로 살린 구조를 통해 인물간의 관계를 보여주고, 캐릭터를 부각시키고 싶었다”며 “공간이 새로운 스토리가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기본방향은 “믿음직하고 친근한 백종원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도 “친근하고 우리집 같은 느낌을 주는” 주방이었다.
세트의 컨셉트를 잡고 난 뒤 3주간 디자인 작업을 했고, 시공과 소품 배치까지 한 달이 걸렸다. 전체적인 틀을 잡은 뒤엔 3D 작업을 통해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총 10대의 카메라가 들어가는 촬영현장에서 김 감독은 “카메라 위치에서 인물을 찍을 때 주방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이는지 고민했다”고 한다. “보통 예능 프로그램은 인물 중심으로 전개되기에, 인물의 뒷배경이 중요했다. 이를 토대로 구조를 만들었다”며 “초반엔 윤상의 뒷배경은 창문, 백종원의 뒷배경은 문과 냉장고, 손호준의 뒷배경은 창고였다”고 말했다. 서있는 사람의 위치만 달라졌을 뿐, 보이는 것은 최초 기획과 같다.
‘친근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김 감독은 ‘살아있는 질감’에 공을 들였다. ‘서민들의 주방’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백선생의 주방을 완성한 목재들은 김 감독과 15명의 팀원이 달려들어 손수 모서리를 깎았고, 사포질로 오래된 질감을 표현했다. 불로 그을려 자연적인 미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의 색감을 잡아갔다. 분위기 세팅까지 마친 뒤엔 징그러울 만치 치밀한 ‘디테일’ 작업이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최저가 0원부터 최고가 30만원=‘집밥 백선생’의 주방에는 없는게 없다. 화면으로 보이는 것보다도 협소한 크기인데, 온갖 주방용품과 소품으로 빼곡히 채워졌다.
김 감독은 소품을 배치하기 위해 먼저 식재료, 식기, 조리도구 등의 카테고리를 나눠 수량을 파악했다. 애초의 생각보다 2배 이상의 소품이 이 공간에 채워졌다.
밥주걱과 국자, 쉐이킹 등 핸드 조리도구가 100여개, 항아리 등 전통식기가 50개, 접시ㆍ밥그릇ㆍ국그릇 등의 식기가 600개, 주방용품 이외의 것들이 300개에 달한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데 주방의 곳곳을 자리한 음식 종류는 무려 30개 이상이다. 엿, 누룽지, 대추는 물론 고추 말린 것부터 한약재까지 사다 놨다. “자연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피클은 김 감독이 손수 담갔다.
재미있는 요소가 많다. 주방의 필수품인 냉장고엔 김 감독이 직접 제작한 ‘집밥 백종원’의 기사와 요리 레시피가 붙어있다. “텍스트의 내용보다는 집집마다 냉장고에 붙어있는 신문 스크랩 등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주방 곳곳에 쌓아올린 음식재료(통조림, 기름, 양념)의 상표를 가리기 위해 스티커도 직접 제작했다. ‘경성식품’, ‘선데이식품’(김승경 감독이 대표로 있는 선데이 스튜디오에서 따왔다)이라는 가상의 상표로 “세밀한 리얼리티를 표현”했다.
주방엔 굳이 필요치 않은 소품들도 눈에 띈다. 믹싱은 물론 오래된 전화기, 김 감독이 좋아한다는 윤상의 2집 LP판도 있다. “주방용품이 공간의 중심을 잡아준다면 다른 소품은 재미를 주기 위한 장치”라고 김 감독은 설명했다. 거기에 더해 “건조해질 수 있는 세트의 특성에 꽃과 나무를 더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게 했다. ‘집밥 백선생’은 매회 촬영 때마다 생화 다섯 박스가 장식된다. 가을엔 단풍나무가 이 공간으로 들어올 예정이다.
주방을 벗어나 있어 노출이 적은 데도, 창고마저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이 창고는 “시골 할머니 집과 같은 분위기”를 살렸다. 항아리와 양념통, 생뚱맞은 내복 빨래와 스텐실 그림까지 걸려있다. 푸르스름한 옛날 모기장은 화룡정점이다.
주방과 창고를 통틀어 무려 1000여개 이상이 소품이 자리잡은 만큼 가격도 각양각색이다. 최저가 0원부터 최고가 30만원까지다. 김 감독은 “길을 가다 버린 것들을 구해서 리폼한 소품은 구입비용이 전혀 들지 않았고, 오래된 가전제품의 경우 시중에 팔지 않아 값이 비쌌다”고 말했다. 빨래판과 옛날 화분은 0원, 4인용 밥솥과 오븐은 30만원에 구입했다. “오븐은 지금도 10만원이면 살 수 있다”고 한다. 황학동 시장에서 발견한 스텐실 그림은 8만원을 깎아 12만원에 샀다.
김 감독은 “소품의 경우 발품을 팔았고, 없으면 만들었다. 소품 하나 하나가 모여 전체 세트를 만들게 됐다. ‘집밥 백선생’만의 고유성을 살리기 위해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썼다”며 “다양한 세대가 시청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요소 요소마다 각자의 시각으로 공감할 수 있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집밥 백선생’ 미술감독 김승경은 누구?=(주)선데이 스튜디오의 대표인 김승경 감독은 올해로 11년차에 접어든 미술감독 겸 세트 디자이너로, 그간 드라마와 영화 위주로 작업해왔다.
영화 ‘협녀’,, ‘광해’의 아트디렉터를 맡았고, 케이블 채널 tvN ‘잉여공주’, 영화 ‘우리 연예의 이력’ 등에선 미술감독으로 세트를 만들었다. ‘잉여공주’를 연출했고, 현재 ‘집밥 백선생’을 함께 하고 있는 백승룡 PD와의 인연으로 프로그램의 세트를 총괄하게 됐다.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뒤, 학창시절 영화 제작동아리에서 소품을 준비하고 배경을 만드는 작업을 접하며 세트의 매력에 빠졌다. 김승경 감독은 “어떤 미디어나, 드라마든 영화든 미술의 꽃은 세트라고 생각한다. 세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라며 “인물이 없는 세트는 없다. 한 인물의 캐릭터를 완성시켜주는 공간이 세트이며, 인물의 캐릭터에 맞는 세트를 창조하는 것이 세트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 ‘친근한 백선생’ 같은 주방…‘리얼리티’의 산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