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종원이 요리에 관심을 가지고, 외식사업을 하며 요리연구가로 불리게 된 데에는 아버지 덕이 컸다. 최근 경기도 파주 탄현에 위치한 ‘집밥 백선생’의 세트에서 만난 백종원은 “지금의 나를 만든 데엔 아버지의 공이 혁혁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반찬투정이 정말 심하셨다”는 백종원은 “국, 찌개가 다 있는데 꼭 없는 반찬을 찾는다. 그 밑에서 크다 보니 입맛이 달라졌고 개발됐다”고 한다.
아버지의 투정들을 몸소 겪으며 자란 백종원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음식에 관심을 가졌다. 학교에서 주는 건빵마저 그냥 먹는 법이 없었다. 버터에 볶아 설탕을 뿌려 먹고, 아버지가 사다준 휴게소 햄버거는 냉장고에 뒀다가 상추와 토마토를 신선한 것으로 바꾼 뒤 후라이팬에 구워먹었다고 한다. 백종원 요리세계의 시작이었다. 대학시절엔 요리에 병적으로 집착했다고 한다. 전국 방방곡곡을 어릴 때부터 돌아다녔고, 군대에선 2년간 간부식당에서 일하며 윗분들의 입맛을 책임졌다. 그게 계기가 돼 백종원은 식당을 하게 됐다.
지금은 현재 27개 브랜드와 국내 650여개점의 매장을 거느린 연매출 1000억원의 외식사업가(㈜더본코리아)이지만, 백종원 역시 IMF 외환위기 땐 “쫄딱 망했다”고 한다. “유복한 집안에 태어나 하는 일마다 실패한 적이 없었는데 어려움을 겪어본 적 없던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니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는 것이다.
“망하기 전까진 착한 척, 겸손한 척 가면을 쓰고 살았다”는 백종원은 그 이후 삶을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졌다. 특히 백종원은 “인생 이야기도 나누고 애정을 쏟았는데, 망하고 나니 월급을 내놓으라며 소송을 걸었던 직원들에 대한 배신감도 컸다”고 한다. 그 백종원은 “사람은 겉과 속이 똑같이 생활해야하는구나,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라도 깔끔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후 백종원은 있는 그대로, 말과 행동이 똑같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백종원은 “그건 음식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가진 걸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맛 보는 거쥬. 과장없이. 실수할 수도 있고. 그걸 또 좋아해주시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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